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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왕 루이 14세의 숨겨진 고통

화려함 뒤에 감춰진 중세 의료의 어두운 이면

by 김형범

루이 14세는 역사 속에서 ‘태양왕’이라는 찬란한 별칭으로 기억됩니다. 그는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과 웅장한 군사적 업적을 통해 절대왕정의 정점을 이루었지만, 그의 인생에는 감추고 싶은 고통스러운 순간들도 존재했습니다. 특히, 현대인들에게는 생소한 중세 의료 기술로 인해 겪어야 했던 고난들은 오늘날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루이 14세는 어린 시절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가 겪었던 질병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 중 하나는 치아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단 음식을 즐기던 그는 심각한 치아 부식을 겪었고, 결국 모든 치아를 발치해야 했습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당시의 의료 지식 부족으로 인해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치아까지 모두 발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마취나 항생제가 없었기 때문에 발치 과정은 극심한 고통을 동반했습니다. 심지어 발치 이후에는 입천장에 구멍이 생겨 음식을 삼킬 때마다 액체가 코로 넘어가는 불편함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뜨겁게 달군 쇠막대로 지지는 시술이 시행되었지만,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시술은 왕에게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심리적 트라우마까지 남기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고난은 항문 질환으로 인한 치루 수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수술 역시 마취 없이 진행되었으며, 많은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당시의 외과 수술은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위생적이고 원시적이었습니다. 수술 도구는 제대로 소독되지 않았고, 환자는 감염에 매우 취약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를프랑수아 펠릭스는 이 고통스러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며, 이 사건은 외과의사의 지위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루이 14세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남겼습니다. 수술 이후에도 왕은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고, 그의 건강은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이처럼 루이 14세가 겪었던 고통은 단순히 개인적인 불행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경험은 중세 유럽의 열악한 의료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당시에는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부족했고, 치료보다는 고통을 참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였습니다. 의료 행위는 종종 종교적 신념과 결합되어 있었으며, 병의 원인을 신의 벌이나 악령의 장난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의료 기술의 발전을 더디게 했으며, 환자들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수술 도구는 원시적이고 비위생적이었으며, 환자는 감염이나 과다 출혈로 인해 사망에 이를 위험이 매우 높았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의료진조차 질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치료법은 대부분 실험적이거나 전통적 신념에 의존했습니다. 당시의 의료 기술 부족은 왕실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도 동일한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은 역설적으로 현대 의료의 발전에 기여한 측면도 있습니다. 루이 14세의 치루 수술을 계기로 외과적 치료의 필요성이 더욱 주목받았고, 이발사와 외과의사의 역할이 분리되는 등 의료 체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당시의 외과 수술이 비록 미숙했지만, 그것이 후대 의료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발사와 외과의사가 분리되면서 전문화된 의료 분야가 형성되었고, 이후 점차 발전된 소독법과 마취 기술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의료 기술의 진보뿐만 아니라, 환자들이 고통을 덜 겪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루이 14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현재의 의료 기술과 혜택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고통이 지금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완화되거나 완전히 치유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단지 역사적 사실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 의학 발전의 중요한 교훈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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