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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과거시험, 한 줄에 담긴 국가의 미래

천재 선비들의 지식과 논리가 빚어낸 역사적 시험

by 김형범

과거시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한복을 입은 선비들이 붓을 들고, 촛불 아래에서 밤을 지새우며 책을 읽는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과거시험은 단순히 책을 읽고 암기한 지식을 뽐내는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이 시험은 당시 조선 사회에서 가장 높은 지식과 논리적 사고력을 가진 사람을 선발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현대의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과 비교해도 그 난이도와 요구하는 능력은 차원이 다릅니다. 조선의 과거시험은 한 줄로 출제된 문제에 수많은 경전을 바탕으로 답을 작성해야 했으며, 이 답은 단순히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시험에 응시한 선비들은 자신만의 논리를 펼치며,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정조 임금이 출제한 문제를 보면, 과거시험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사고를 요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호남 지역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라는 문제는 단순히 지역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반의 문제 해결 능력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전을 암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실제 상황에 적용할 줄 알아야 했습니다. 장원급제자의 답안지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의 답안은 가로 88cm, 세로 1m 64cm에 이르는 두루마리 형태로 작성되었으며, 답안에는 당시 호남 지역의 일곱 가지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논리적으로 풀어냈습니다. 이처럼 방대한 답안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공부만으로는 부족했을 것입니다. 다양한 사회적 경험과 학문적 깊이가 필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과거시험은 매우 높은 수준의 글쓰기 능력을 요구했습니다. 시험 문제는 단 한 줄로 주어졌지만, 응시자는 그 한 줄에 자신의 지식과 논리를 모두 담아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는 새해가 오는 것을 매우 기뻐했지만,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는 광해군의 문제는 얼핏 보면 감상적인 질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풀어내고, 더 나아가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담아야 했습니다. 과거시험은 단순히 논술시험이 아니었습니다. 유교 경전의 내용을 철저히 외우고, 이를 바탕으로 논리적 사고를 펼쳐야 했던 시험이었습니다.


이러한 과거시험의 사례를 통해 당시 조선 사회의 지적 수준과 선비들의 학문적 깊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시험의 난이도와 범위는 오늘날의 어떤 시험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했습니다. 과거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은 단순히 학문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이끌어갈 지혜와 통찰력을 갖춘 인재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과거시험은 조선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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