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괴물의 진짜 얼굴

이토 준지의 재해석으로 본 고전의 의미

by 김형범

프랑켄슈타인은 대중적으로 너무도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작품의 원작보다는 수많은 각색과 패러디로 접하게 됩니다. 초록색 피부에 볼트가 박힌 멍청한 괴물이라는 이미지가 고정관념처럼 자리 잡고 있지만, 사실 원작은 그런 단순한 공포 이야기가 아닙니다. 메리 셸리가 1818년에 발표한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오만과 창조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과학과 인간성 사이의 갈등을 탐구하는 명작입니다.


이 작품에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그를 창조한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입니다. 그는 생명의 비밀을 밝혀내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시체의 조각을 이어 붙여 생명을 창조하게 되지만, 자신이 만든 생물의 흉측한 모습에 질겁하여 버리고 맙니다. 창조주에게서도 외면받고, 인간 사회에서도 철저히 배척당한 괴물은 절망과 분노에 사로잡혀 자신을 만든 자를 찾아 복수를 다짐하게 됩니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단순한 호러 소설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과 윤리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메리 셸리의 원작은 상당히 철학적이고 서술이 복잡해서 많은 독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작품으로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토 준지의 『프랑켄슈타인』은 그런 원작의 매력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이토 준지는 공포 만화의 대가로서, 인간의 내면과 심리적 공포를 표현하는 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원작의 이야기 구조를 크게 변경하지 않고도 섬뜩하고 고독한 괴물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했습니다. 원작에서 전달되었던 괴물의 외로움과 절망감은 이토 준지의 독특한 그림체와 맞물려 더욱 강렬하게 독자들에게 다가옵니다. 또한, 괴물이 세상으로부터 배척받고 절망하는 장면들은 그의 표현력 덕분에 훨씬 더 생생하고 극적으로 다가옵니다.


이토 준지의 작품은 단순히 원작을 따라 그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의 특유의 스타일과 원작의 철학적 깊이를 절묘하게 조합해냈습니다. 특히 괴물의 고독감과 빅터 프랑켄슈타인과의 복잡한 관계를 비주얼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원작이 지닌 비극성과 윤리적 질문을 충실히 반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괴물의 감정 묘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오히려 그에게 연민을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토 준지의 『프랑켄슈타인』이야말로 원작에 가장 근접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한 재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토 준지의 그림체는 괴물의 고독감과 인간 사회로부터의 배척을 묘사하는 데 있어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원작의 내용을 따라가면서도 만화라는 매체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점에서, 원작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토 준지의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히 원작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닌, 원작이 가진 철학적 메시지와 비극성을 공포라는 장르의 특성을 이용해 극대화한 작품입니다. 메리 셸리의 원작을 지루하게 읽었던 사람이라면, 이토 준지의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원작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원작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만화는 훌륭한 시각적 보완을 제공하는 작품으로 평가될 만합니다.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히 괴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창조자와 피조물, 인간과 비인간, 책임과 윤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깊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토 준지는 그것을 그의 그림체로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만약 원작을 읽고 어렵게 느낀 사람이 있다면, 이토 준지의 『프랑켄슈타인』을 읽어 보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원작의 감동과 공포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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