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가 낮선 경고로 느껴지는 이유는?

서양의 디스토피아는 두려움이지만, 한국에선 일상이다

by 김형범

조지 오웰의 『1984』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같은 서양의 디스토피아 소설들은 전체주의에 대한 두려움에서 태어났다. 자유로운 개인의 삶이 억압당하고, 모든 행동과 사상이 감시되는 세계를 그린 이 작품들은 당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자 미래를 향한 경고였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설정들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일상 속 시스템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서양인들에게는 공포의 상징이었던 것이, 한국인에게는 당연한 제도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


서양 사회는 오랜 시간에 걸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심으로 문명과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20세기 초중반의 파시즘, 나치즘, 공산 전체주의는 이 자유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존재였고, 그로 인해 전체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가 사회와 문화 전반에 스며들었다. 디스토피아 문학은 바로 그 공포의 연장선에서, 감시와 통제를 통해 개인이 무력화되는 세상을 그려내며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장르로 자리 잡았다.


또한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중앙집권 체계를 구축한 한국은, 식민지 경험과 한국전쟁, 군사 정권을 거치며 국가의 개입과 통제가 삶의 필수적인 조건처럼 여겨졌고, 집단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문화가 뿌리내렸다. 무질서와 혼란이 생존을 위협하던 시절, 강력한 국가 시스템은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이 만들어낸 감시와 규율은 오히려 사회의 안전장치로 작용했다. 그러다 보니 주민등록번호 제도, 모든 손가락의 지문 날인,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CCTV, 의무적인 병역 제도, 실명 인증을 통한 인터넷 사용 등이 통제나 억압보다는 ‘효율’과 ‘편리함’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기술 발전 속도와 이에 대한 수용성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는 감시와 데이터 수집이 더욱 정교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사람들이 이용하는 앱은 위치와 생체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디지털 인프라는 모든 움직임을 기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불편함보다 편리함을 먼저 느낀다. 이 시스템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보다는, 삶을 더 간편하게 만들어준다는 기능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디스토피아적 장치가 ‘사용자 친화적 기술’로 포장되며 그 본질이 흐려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디스토피아’라는 개념은 누구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것일까? 서양의 역사와 문화는 전체주의를 억압과 두려움으로 기억하고, 자유의 침해를 문학과 상상 속에서 경고한다. 그러나 한국은 전혀 다른 궤적을 따라왔다. 질서와 효율, 생존을 위해 구축된 시스템은 억압의 도구라기보다 안정과 회복의 조건이었다. 물론 통제와 감시에 대해 의심 없는 수용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서구적 시선으로만 재단하고, 그 문화를 일방적으로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하는 것 또한 또 다른 종류의 편견일 수 있다.


한국은 한국만의 방식으로 통제를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나름의 사회적 합의와 효용을 만들어냈다. 디스토피아라는 개념조차도 서구적 상상력의 산물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우리의 역사와 문맥 속에서 다시 해석하고 질문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라는 가치를 한국 사회의 맥락 속에서 다시 해석하려는 시도다. 낯선 경고 앞에서 멈춰 서기보다, 그 경고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차분히 되묻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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