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패밀리 작가 논란, 김성모 작가를 빗대어 생각해보다
스파이 패밀리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품입니다. 스파이인 아버지, 초능력자 딸, 암살자인 어머니라는 독특한 설정 위에 귀엽고 유쾌한 분위기를 얹은 이 만화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굿즈와 콜라보, 애니메이션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냐를 좋아하지 않는 팬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캐릭터 하나하나가 사랑받았고, 작가 엔도 타츠야는 시대를 대표하는 인기 만화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작가의 SNS에 “찾지 말아주세요”라는 짧은 글이 올라왔습니다. 팬들은 충격을 받았고, 이내 작가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가 퍼졌습니다. 출판사는 휴재를 알렸고, 팬들은 그의 안위를 걱정했습니다. 몇 달 뒤, 엔도는 별다른 설명 없이 조용히 복귀했지만,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엔도 타츠야는 평소에도 작품에 대해 다소 거리감 있는 발언을 해왔습니다. 팬북에서는 “작품에 대한 애정이 제로다”라거나, “아이도, 개도 싫어했었다”고 말하며 지금 그리는 캐릭터들에 정서적으로 크게 애착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태도를 드러냈습니다. 그는 주인공 가족을 정의롭고 착하게 그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고, 그저 독자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집어넣은 결과로 지금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쯤 되면 의문이 생깁니다. 왜 이렇게 인기 있는 작품을 만든 작가는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을까? 사람들이 열광하는 그 캐릭터들과 세계를, 정작 창조한 사람은 애정 없이 바라보고 있다면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이 상황을 조금 쉽게 이해해보려면, 상상력을 동원해 김성모 작가에게 빗대어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김성모 작가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건 ‘대털’ 같은 작품입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철학이 담긴 이야기죠. 하지만 그런 작품들은 대부분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시장 트렌드에 맞춰 아무 생각 없이 귀엽고 달달한 이야기 하나 그렸더니, 그게 터져버렸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결과, 본인이 별 애정도 없었던 그 작품 하나로 전국적인 인기를 끌게 되고, 캐릭터 콜라보 요청은 쏟아지며, 팬덤은 열광하고, 매일 수십 개씩 2차 창작물이 올라옵니다. 정작 본인이 그토록 애썼던 작품들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데 말이죠.
그럴 때 작가는 어떤 감정을 느낄까요? 사랑받는 게 싫은 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사랑받지 못하는 걸까?"라는 질문은 누구에게나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만든 캐릭터가 자기 인생의 대표작이 되었을 때, 그 아이러니가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만들 수 있는지 우리는 상상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엔도 타츠야의 발언이나 실종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창작자로서 느끼는 피로와 갈등, 그리고 대중의 사랑과 작가 개인의 정체성 사이에서 생긴 간극이 녹아 있습니다. 그가 의도적으로 대중의 취향을 겨냥해 만든 이 작품이 지금의 성공을 가져다주었지만, 그것이 곧 작가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한 지점입니다.
이 상황은 어처구니없고 기묘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콘텐츠가 항상 작가의 진심과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작가의 진심은 외면당한 채, 가장 의도치 않았던 것이 사랑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간극은 때때로 한 사람의 마음을 멀리 떠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스파이 패밀리는 지금도 연재 중이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진짜 작가의 마음까지 닿고 있는지, 우리는 묻게 됩니다. 사랑이 지나치면 부담이 되기도 하듯, 우리는 콘텐츠를 사랑하면서도 그 뒤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함께 존중하는 태도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