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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남긴 아름다운 결말

by 김형범

세상에는 시작했지만 끝맺지 못한 이야기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어떤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기 전에 아이디어가 바닥나기도 하고, 또 다른 작가는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이야기를 포기하기도 하죠. 하지만 때로는 작가 자신이 의도치 않게 이야기를 완결짓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불운이나 비극 때문입니다.


일본의 라이트 노벨 작가 야마구치 노보루가 바로 그런 작가였습니다. 그의 대표작 『제로의 사역마』는 어느 날 평범한 소년이 이세계로 소환되어 벌어지는 마법과 모험의 이야기였습니다. 독특한 상상력과 속도감 있는 전개 덕분에 많은 팬들이 다음 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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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가는 어느 날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던 그날, 그는 상상도 못 했던 말을 듣고야 말았습니다.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에 이른 말기암 진단이었습니다. 그 충격 속에서도 그는 이야기를 끝내기 위한 노력을 놓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과 그것을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그는 미완성의 이야기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했고, 작가의 죽음과 함께 작품 또한 끝내 완성되지 못할 것으로 여겼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한 작가의 죽음과 미완의 이야기만을 기억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출판사는 뜻밖의 소식을 알렸습니다. 작가가 살아 있을 때 이미 결말까지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메모로 남겨두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병세가 악화될 때를 대비해 꼼꼼하게 결말의 흐름을 준비해 두었던 것이었습니다. 남겨진 원고와 메모를 바탕으로, 출판사는 다른 작가에게 마무리를 부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필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독자들이 선입견 없이 오로지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결정이었습니다.


작가가 떠난 지 4년이 되던 해, 마침내 이야기는 완결을 맞이했습니다. 팬들은 기대와 두려움을 품고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기다렸던 결말 앞에서 그들은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미 세상에 없지만, 마치 살아있는 듯이 독자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는 듯한 작가의 숨결이 그 안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대필 작가는 『정령사의 검무』라는 또 다른 인기 작품을 쓴 시미즈 유우였습니다. 그 또한 작품에 진심으로 애정을 갖고 원래의 작가와 작품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작가의 소망을, 그는 조용히 이뤄주었던 것이죠.


야마구치 노보루는 생전에 마지막 인터뷰를 통해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그러자 그는 망설임 없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다시 한 번 나로 태어나고 싶어요. 나는 정말 행복했으니까요."


비록 그의 삶은 짧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사랑해준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삶이었기에 그는 진심으로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작품을 끝까지 이어가고자 했던 그의 의지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결말로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이야기가 남기는 힘, 그리고 작가의 진심이란 이런 것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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