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에게도 덕이 있다고요?
밤늦은 시간, 정적이 감도는 집 안에 낯선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발소리는 아니었고, 문이 열린 것도 아니었지만 뭔가가 집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불길한 기운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그 존재는 뜻밖에도, 집 안 천장 위 대들보 위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는 도둑이었습니다. 그는 주인의 움직임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고, 아무도 그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집의 주인은 달랐습니다. 당시 이름 높은 관리였던 그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고, 손님과의 대화 도중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들보 위에 계신 군자께서도 이 이야기를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도둑은 그 말에 충격을 받았고, 그 날 이후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 바로 ‘양상군자’입니다. 한자로는 ‘梁上君子’, 즉 ‘대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입니다. 얼핏 들으면 고상한 표현 같지만, 실제로는 도둑을 비꼬는 말입니다. 겉보기에는 점잖고 고결한 듯하지만, 속으로는 나쁜 의도를 품고 있는 사람을 풍자하는 표현이지요. 요즘 시대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론 앞에서는 정직과 신뢰를 외치며 정의로운 척하지만, 뒤로는 부정한 거래를 일삼는 이들. 그런 사람을 ‘양상군자’라고 부른다면 이보다 더 절묘한 표현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과연 도둑은 무조건 나쁜 존재이기만 할까요? 옛 철학자 중에는 도둑에게도 덕이 있다고 말한 이가 있습니다. 바로 장자입니다. 그는 『장자』라는 책에서 ‘도척’이라는 악명 높은 도둑에 대해 언급하면서 도둑에게는 다섯 가지 덕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다소 역설적이지만, 이 이야기를 곱씹다 보면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선을 얻게 됩니다.
장자는 도둑이 지녀야 할 첫 번째 덕으로 지혜를 들었습니다. 한밤중에 남의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경로를 파악하고, 소리를 최소화하며, 들어갈 때와 나올 때를 계산해야 하니 치밀한 전략과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용기입니다. 들키면 처벌은 물론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공포를 이겨내는 담대함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세 번째는 인정, 곧 인입니다. 도둑들끼리는 전리품을 나누고 서로 도우며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에서 장자는 ‘어질다’는 성품을 본 것입니다. 네 번째는 의로움입니다. 듣기에 우스울 수 있지만, 어떤 도둑은 약자보다는 부유한 자를 겨냥한다거나, 불의한 자에게서만 훔친다는 식의 기준을 세우기도 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신의입니다. 도둑질은 철저한 팀워크가 있어야 가능하기에, 서로의 약속을 지키는 신뢰가 필수입니다. 약속을 어기면 조직 자체가 무너지니까요.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도둑에게 덕이 있다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장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단순히 도둑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기존의 도덕과 질서를 상대화하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정의의 기준을 되묻는 철학적 장난을 쳤던 것이지요. 실제로 그의 글은 도덕과 제도가 사람을 구속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도둑에게조차 이런 덕이 있다면,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은 과연 어떤 덕을 갖추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독자 스스로 던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양상군자와 도적의 오덕은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가 진짜 군자인지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겉으로 점잖다고 해서 모두가 정의롭지는 않으며, 반대로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에게도 나름의 가치와 논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이 이야기를 통해 도둑을 미화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와 같은 역설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판단하는 우리의 눈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편협할 수 있는지를 돌아보자는 제안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양상군자가 존재합니다. 겉으론 번듯하고 말은 그럴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저 이익을 노리는 이들이지요. 그리고 때때로, 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이들이 오히려 더 단순하고 명확한 기준으로 움직이는 것을 볼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진짜 군자는 대들보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