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만든 언어와 사회가 만든 언어의 차이
“표준어를 써야 합니다.” 우리는 학교에서도, 방송에서도, 공공기관에서도 이렇게 배웁니다. ‘표준어’라는 단어는 어쩐지 단정하고 교양 있는 말처럼 느껴지지만, 그 말 속에는 언어가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사회의 질서를 반영하고 때로는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 모두 표준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만, 그 탄생 배경과 작동 방식은 크게 다릅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표준어는 ‘국가에 의해 정해진 언어’라는 점에서 영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대한민국의 표준어는 20세기 초,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에 이르기까지 근대국가 형성 과정에서 등장합니다. 한반도 전체에 언어를 통일할 필요가 있었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중앙 집권 체제는 표준어를 도구로 삼았습니다. 서울 중심의 언어를 기준으로 ‘정해진 말’을 표준으로 삼고, 그 외의 지역어는 사투리라는 이름으로 구분지었습니다. 이는 당시의 행정, 교육, 방송 등 전국 단위의 소통을 위한 필요에서도 비롯되었지만, 동시에 언어를 통해 국민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던 시대적 흐름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반면 영어에는 이처럼 ‘국가가 정한 표준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프랑스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라는 국립 언어기관이 있고, 중국에는 한어병음 체계처럼 정부 주도의 표준화 시도가 있었지만, 영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호주 등 영어권 국가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영어’를 중심으로 표준이 형성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General American English’, 영국에서는 ‘Received Pronunciation’이 방송, 교육, 문서 등에서 널리 쓰이지만, 이것이 법적이거나 강제적인 표준은 아닙니다.
이처럼 영어의 표준은 공식적이기보다는 ‘사회적’입니다. 방송을 통해 널리 퍼진 억양, 학교에서 가르치는 문장 구조, 언론과 논문에서 사용하는 표현들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교양 있고 정확한 영어’로 인식된 것이죠. 다시 말해 영어의 표준은 권력자가 정해준 것이 아니라, 사회가 시간 속에서 합의해온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특정 계층의 언어가 더 많이 반영되었다는 점은 이후 인종과 계층 문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두 언어의 차이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우, 표준어는 교육 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사투리를 쓰는 학생은 종종 교정 대상이 됩니다. 반면 영어권에서는 억양이나 단어 선택이 다르더라도, 지역 차이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언어 차별이 존재하긴 하지만, 제도적으로 교정의 대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표준어를 대하는 방식은 단지 언어 정책의 차이를 넘어서, 한 사회가 언어를 통해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표준어는 분명 사회적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기능적 목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표준어는 근대 국가 건설이라는 목표 속에서 만들어졌고, 영어의 표준은 방송과 교육이 주도한 사회적 합의의 산물입니다. 같은 '표준'이라 해도, 그 바탕이 되는 구조는 매우 다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표준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이 어떤 목적 아래 생겨났는지, 그리고 지금도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언어는 단순히 말이 아니라, 권력의 흔적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