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힌 진실을 세상에 꺼낸 여성, 박병선
1866년 병인양요. 프랑스는 천주교 선교사 9명의 처형을 빌미로 강화도에 쳐들어왔습니다. 1개월 가까운 전투 끝에 결국 수세에 몰린 프랑스 해군은 철수하면서 모든 관아에 불을 지르고, 은괴 19상자와 대리석판, 그리고 조선 왕실의 귀중한 필사본을 포함한 책들을 쓸어 담아 돌아갔습니다. 그 책들 가운데 297권이 외규장각 의궤였고, 이들은 이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시절 프랑스 병사들의 눈에는 귀한 은상자와 화려한 그림이 있는 책만이 약탈의 대상이었습니다. 글자를 알아보지 못했던 그들은 대부분의 책을 불태워버렸고, 오직 왕이 열람하던 어람용 의궤만이 그 아름다움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신문은 ‘은괴와 책들로 손해를 만회하고도 남았다’며 자국 군대의 전리품을 자랑스레 보도했습니다. 그렇게 외규장각의 존재는 역사 속에 사라졌고, 한국은 140여 년 동안 그 의궤들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단지 역사책 속 기록으로만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그 긴 침묵을 깬 사람은 박병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 여성이었습니다. 한국 최초로 프랑스 유학 비자를 받아 유럽으로 떠났고, 박사 학위를 딴 뒤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사서가 된 인물이었습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그녀에게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동양 고서들을 정리해줄 수 있겠습니까?” 마침 1972년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도서의 해’였고, 프랑스는 이 기회에 동양서적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양의 책은 프랑스인들에게는 읽기도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기에, 동양어에 능통하면서 프랑스어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박병선이었습니다.
박병선은 제안을 받는 순간, 이것이 오랫동안 찾고자 했던 외규장각 의궤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녀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동양 고서고를 하나하나 뒤지며 의궤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의궤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도서관뿐 아니라 해군박물관, 고문서관 등 프랑스 전역의 관련 기관을 모두 돌며 목차를 뒤지고 목록을 살폈지만, 원하는 기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그녀는 다른 뜻밖의 책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이었습니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이 책은 구텐베르크보다 78년 앞서 금속활자를 사용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였습니다. 그녀는 이 책을 바탕으로 직지가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입증했고, 이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기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직지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마음 속에는 외규장각 의궤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프랑스 해군성 고문서 도서대장에서 한 줄의 기록을 발견합니다. “1866년, 한국 강화도에서 책 345권을 기증받아 가져왔다.” 드디어 단서가 잡힌 것입니다. 하지만 책들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1977년, 어느 도서관 직원이 박병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베르사유 별관에 가보세요. 거기 고문서 파손 창고에 한자로 된 책들이 잔뜩 있어요.” 그녀는 당장 베르사유로 향했습니다. 먼지가 수북이 쌓이고,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폐기창고 한쪽에서 박병선은 묘한 빛을 머금은 책 더미를 발견합니다. 푸른빛 비단으로 감싸인 커다란 책들. 얼룩지고 좀이 슬었지만, 붓글씨는 또렷했고 그림은 살아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궁중의 풍경, 왕실의 행사, 조선의 옷차림과 건축물들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제본은 섬세했고, 글자 하나하나가 아름다웠습니다.
그 책들은 다름 아닌, 조선의 왕을 위해 단 한 권만 제작된 어람용 의궤였습니다. 프랑스군이 강화도에서 약탈해간 바로 그 책들이었습니다. 이 책들은 110년 동안 아무도 관심 두지 않던 어두운 창고에서, 도서 목록에도 오르지 않은 채 파기 직전의 폐기물로 분류돼 있었던 것입니다.
박병선은 이 책들을 지키고 알리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측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한국과 프랑스 간의 외교적 협상 끝에 2011년, 의궤 297권이 한국으로 반환됩니다. 비록 '영구 대여' 형식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그것은 분명 역사적 귀환이었습니다. 그 순간을 확인한 몇 달 뒤, 박병선은 조용히 세상을 떠납니다.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는 단지 책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록이고, 기억이며, 민족의 자존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지켜낸 사람은, 평생을 도서관의 조용한 서가에서 보낸 한 한국 여성이었습니다. 박병선이라는 이름은, 이제 그 누구보다 깊이 ‘기록의 어머니’라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잊힌 진실을 발견한 그녀 덕분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역사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