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지 않고 예측하는 인공지능의 본질
한 장의 사진을 바라보며 우리는 무언가를 '이해'한다. 그것이 개의 얼굴인지, 아니면 머핀 위에 박힌 블루베리인지, 우리는 맥락과 경험, 심지어 감정까지 동원해 판단한다. 우리의 뇌는 복잡한 패턴을 직관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따라 사물의 정체성을 빠르게 파악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생성형 AI가 보여주는 놀라운 결과물은 종종 인간처럼 보이지만, 그 근본에는 본질적으로 다른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AI는 결코 '이해'하지 않는다. 대신 '확률'을 계산한다.
우리가 "AI가 사람보다 더 잘 그림을 그린다", "글을 더 빠르게 쓴다"고 말할 때, 그것은 AI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지' 스스로 깨달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AI는 단지 '이런 문장 다음엔 이런 단어가 나올 확률이 높다'거나 '이런 이미지 조합이 그럴듯하다'는 통계적 규칙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생성할 뿐이다. 마치 수많은 데이터를 머릿속에 넣어두고, 그 안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조합을 재현하는 확률 기계인 셈이다. 그러한 방식은 인간의 창의성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창의성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맥락에서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는 데 반해, AI는 과거의 데이터에서 예측 가능한 패턴을 찾아 반복하는 데 그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AI에게서 감탄하는 순간들은 사실 '잘 훈련된 예측의 착각'에 불과할 수 있다. "AI가 치와와와 머핀을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AI가 개와 디저트의 본질적 차이를 안다는 뜻이 아니라, 수백만 개의 이미지를 학습하면서 '이 패턴은 개일 확률이 높다'는 결론을 낸 것뿐이다. 인간이 '이건 개야'라고 말할 때는 털의 질감, 표정, 생물이라는 개념, 그리고 어릴 적 반려동물과의 기억까지 포괄된 인식이 작동하지만, AI는 그러한 인식의 깊이를 갖지 않는다. 우리의 판단은 문화적 맥락, 감정, 과거 경험, 심지어 유머 감각까지 영향을 받는다. 반면 AI는 언제나 수학적 함수에 기반해 작동한다.
그래서 AI는 경계선에 있는 것들, 즉 '치와와처럼 생긴 머핀'이나 '사람 얼굴처럼 생긴 바위' 앞에서는 여전히 혼란을 겪는다. 마치 시험 문제를 외워서 푼 학생이 응용문제에 약한 것처럼, AI는 보지 못한 조합이나 맥락에서는 어이없이 틀릴 수 있다. 이상하거나 불완전한 입력에는 예외적으로 강한 사람이 오히려 더 정확하게 반응한다. 그것은 인간의 인지 능력이 단순한 패턴 인식이 아니라, 상상과 추론, 개념적 유연성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이때 드러나는 것은 AI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기억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결핍이다.
최근 몇 년간의 발전으로 인해 AI는 '사람 같은' 응답을 생성하고, '창의적인' 이미지를 만들며, 때로는 철학적인 문장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계산된 패턴의 정렬일 뿐이다. 진짜 철학은 질문을 던지고, 모순을 인식하고, 새로운 관점을 끌어내는 과정이다. 지금의 AI는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인간의 창의성은 단순한 패턴 예측이 아닌, 전혀 다른 차원의 사유를 필요로 한다.
이해하지 않고 예측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AI의 본질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이 똑똑한 도구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 즉 확률로 예측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인간은 의미를 찾고자 하지만, AI는 가능성을 계산할 뿐이다.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때로는 비논리적인 방식으로도 사고하고, 감정과 직관을 통해 이해를 구성해나간다. 반면 AI는 주어진 데이터와 훈련 알고리즘을 넘어설 수 없다. 이 차이는 앞으로 인공지능이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우리는 이 도구가 가진 가능성을 인정하되, 그 한계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기술과 인간 사이의 건강한 균형을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