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이야기꾼이 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것을 엮는 능력, 인간만의 특권

by 김형범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사건의 흐름을 쫓으며 인물의 감정을 느끼고, 보이지 않는 의도를 상상하며, 맥락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야기는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고, 관련 없는 것을 엮어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내는 고유한 인간의 능력이다. 이 능력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공동체로서 연결되어 살아가는 데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공감하고,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누군가의 삶을 내 안에 받아들인다.


AI도 이야기처럼 보이는 글을 쓸 수 있다. 주인공이 등장하고, 갈등이 생기고, 결말이 찾아오는 구조를 갖춘 텍스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 때로는 아주 감동적인 글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것은 이야기라기보다 이야기의 흉내에 가깝다. 생성형 AI는 수많은 이야기 패턴을 학습한 결과로 예측 가능한 조합을 만들어내는 데에 능숙하다. 하지만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유'는 갖고 있지 않다. 이야기의 핵심은 동기다. 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왜 지금 이 말을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다. 이 동기 없이는 이야기에는 생명력이 없고,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힘도 생기지 않는다.


인간은 감정, 경험, 기억, 그리고 문화적 맥락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로를 연결시키는 깊은 층위의 사고다. 예를 들어, 어릴 적 들었던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는 단순한 옛날 사건의 복원이 아니라, 그 시절의 감정, 삶의 태도, 공동체의 가치관이 함께 전달되는 종합적인 ‘맥락’의 전달이었다. 이야기 속의 문장은 단지 수단일 뿐,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살아 숨 쉬는 인간의 경험이 녹아 있다. AI가 그것을 흉내낼 수는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살아 있는 의도’를 담아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AI는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또 하나의 특징은 '상상력'이다. 인간은 직접 본 적도 없는 세계를 그려낼 수 있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정을 엮어 미래를 상상하고,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창조하며, 심지어 죽음 이후의 세계나 우주의 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상상은 단지 비현실적인 환상이 아니라,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상상력은 기존 질서를 넘어서 새로운 질서를 꿈꾸게 하고, 지금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든다. 반면 AI는 주어진 데이터를 넘어서지 못한다. 훈련된 범위 안에서만 예측하고 조합할 뿐,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에는 본질적인 한계를 가진다. 그것은 정보의 틀 안에서만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야기는 관계를 만든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정서적 유대를 쌓는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의 반응을 고려하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상호작용 속에서 맥락은 살아 움직이고,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이렇듯 이야기는 단방향의 전달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교감의 과정이다. 그러나 AI는 이 관계성을 갖지 않는다. 정서적 상호작용도, 존재의 맥락도 없다. 그저 가장 가능성 높은 출력을 선택할 뿐이다. 듣는 이의 얼굴을 보고 말의 온도를 조절할 수 없고, 반응을 통해 이야기를 바꾸는 능력도 없다. 그래서 AI의 이야기는 균일하고, 차가우며, 관계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장 구조를 갖추고 인물과 사건을 배열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그 안에 담긴 의도, 감정, 관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만 '이야기'라 부를 수 있는가? AI는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깊이 있는 층위까지 건드릴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만의 고유한 인지 능력과 정서적 공감능력, 그리고 살아온 시간의 무게에서 비롯된다.


AI는 이야기처럼 보이는 글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AI는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의 껍데기를 재구성하는 데 그친다. 그것은 '무엇'이 아니라 '왜'를 말하지 못한다. 이 차이는 바로, 인간만이 가진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능력을 통해, 존재하지 않던 세계를 상상하고, 보이지 않던 진실을 꺼내며,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과정을 이어가고 있다.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결국 '나'라는 존재를 세상과 연결짓는 작업이며, 그 과정에서 타인과 만나고, 변화하며, 다시 자기 자신을 재정의하는 행위다.


AI는 빠르고 정확하지만, 이야기는 느리고 인간적이다. 그 속에 깃든 모순과 질문,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까지도 함께 품고 있다. 이야기는 때로 완성되지 않고, 오히려 열린 결말로 독자의 상상을 자극한다. 그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서사의 힘이며, 그 안에 담긴 감정의 진폭은 단지 문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그리고 어쩌면 언제까지나, 진짜 이야기를 하는 존재는 인간일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를 남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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