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은 가능하지만, 책임은 없는 존재 AI
AI는 놀랍도록 빠르게 학습하고, 예측하고, 분류한다. 수많은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패턴을 찾고, 그 패턴을 바탕으로 가장 가능성 높은 출력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이런 AI에게 점점 더 많은 역할을 맡기고 있다. 콘텐츠 추천은 물론이고, 채용과 의료, 심지어 범죄 예측과 같은 민감한 영역까지도 AI의 판단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이처럼 "확률"로 작동하는 AI에게, 우리는 "윤리"를 기대할 수 있을까?
AI는 인간처럼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은 판단이 아니라 통계적 분류다. 어떤 행동이 사회적으로 수용될 가능성이 높은지, 어떤 표현이 혐오로 인식될 확률이 높은지를 계산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는 도덕적 의도나 공감, 반성 같은 인간적 요소는 개입하지 않는다. 예컨대 AI는 "이 발언은 혐오일 확률이 87%"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왜 상처가 되는지, 누구에게 아픔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다시 말해, AI는 '이해'하지 않고 '예측'할 뿐이다.
인간의 윤리 판단은 다르다. 그것은 단지 행위의 결과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동기와 맥락, 그리고 그 판단이 만들어낼 파장까지 고려하는 복합적인 행위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상상하고, 과거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고,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위험까지도 예감하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이때 윤리는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존재 간의 관계와 책임을 전제로 하는 사유의 형태다. 이 책임은 행위에 대한 자기 반성과 타인에 대한 응답 가능성을 포함한다.
반면 AI는 책임지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를 돌아볼 능력이 없고,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 대해 반성할 의무도 없다. 그저 알고리즘이 정한 절차를 따라 계산된 결과를 내보낼 뿐이다. 책임이 없기 때문에 도덕적 존재가 아니며, 그래서 우리가 AI에게 '판단권'을 넘길 때마다, 사실은 책임 없는 기계에게 도덕적 결정을 맡기는 위험한 선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AI는 법을 따를 수 있다. 일정한 규칙을 기반으로 동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리는 법과 다르다. 법은 최소한의 사회적 규율이라면, 윤리는 그 바깥을 상상하는 능력이다. 과거에는 당연했던 일들이 지금은 부도덕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예제, 성차별, 인종차별, 환경 파괴. 모두 한때는 합법이었지만, 지금은 비판받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새로운 윤리를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이 창조의 핵심에는 ‘상상력’이 있다.
AI는 상상하지 않는다. 훈련된 데이터의 범위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 그 데이터가 어떤 역사적 편향이나 차별을 내포하고 있어도, AI는 그것을 답습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AI가 점점 더 많은 사회적 결정을 내리는 시대에, 우리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윤리의 주체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인간만이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새로운 도덕을 ‘상상’하고, 선택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AI가 윤리적일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우리가 윤리적일 수 있는가?"라고. 윤리는 도구에 내장되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몫이다.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도, 그 결정이 미칠 파장을 이해하고 책임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확률로 움직이는 AI의 세계 속에서, 윤리는 여전히 인간이 붙잡아야 할 나침반이다. 우리는 기술의 정확성만큼이나, 그것이 다루는 세계의 복잡성과 고통, 그리고 희망을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해야 할 판단이며, AI가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의 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