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밝혀낸 고대 문자, 그리고 약재의 비밀
기침을 오래 앓아본 사람이라면 ‘용각산’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가루약처럼 생긴 이 약은 목에 착 달라붙는 특유의 질감으로 기침을 멈추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약의 이름을 곱씹어 보면 조금은 신비로운 상상에 빠지게 됩니다. 용의 뼈?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전설 속의 동물인 용이 왜 약재 이름에 붙어 있을까요?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용의 뼈'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의 질병을 고치는 데 쓰였고, 그것이 어느 날 문명의 비밀을 밝혀내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청나라 말기 중국에서는 기침이나 천식 같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동물의 뼈를 가루로 빻아 사용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용골’이라 부르며, 대개는 오래된 동물의 척추뼈나 견갑골을 약재로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뼈는 약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손님이 직접 갈아 쓰거나 혹은 식객으로 머무는 가난한 선비들이 약방의 일을 도우며 약재를 다듬곤 했습니다. 이 뼈들이 진열되어 있던 약방의 한켠, 어느 날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학자가 약재를 살펴보다가, 그 표면에 뭔가가 새겨져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입니다.
왕의영이라는 금석학자는 평소 고문자와 고대 유물을 연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약방에서 구입한 용골에서 불가사의한 글자들을 발견했습니다. 뼈에 새겨진 그 문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어떤 체계적인 기록처럼 보였고, 그는 그것을 ‘문자’로 판단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그 발견은 단순한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동아시아 문명사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가져온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연구자들이 이 뼈가 출토된 곳을 추적한 결과, 중국 허난성 안양의 ‘은허’ 유적에서 상나라 시기의 왕실 무덤과 함께 다량의 유사한 뼈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뼈들은 대부분 거북이 배딱지나 소의 견갑골이었으며, 점을 치는 데 사용되었고, 왕의 명령이나 국가적 사건들이 기록된 '갑골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문자가 무려 3천 년 가까이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현대 한자와 매우 유사하여 부분적인 해독이 가능했다는 사실입니다. 즉, 갑골문은 단순한 그림이나 상형이 아니라, 이미 체계화된 문자였으며, 고대 중국의 통치 시스템과 사회구조, 종교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사료였습니다. 이 문자들 덕분에 사람들은 그동안 존재 여부조차 불확실했던 상나라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고, 중국 고대사의 지평이 완전히 새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출발점이 한약방이라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약재로 쓰이던 뼈가 역사의 증거가 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속에 수천 년 전 사람들의 언어와 사유 체계가 담겨 있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당시에는 아무도 그것이 약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걸 몰랐지만, 왕의영이라는 한 사람의 관심과 집요함이 역사를 다시 쓰는 열쇠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야기의 끝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물건, 낡고 버려진 것들 속에도 어떤 역사적 진실이나 의미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 용각산 한 봉지를 입에 털어 넣으면서도, 그 이름 속에 담긴 이야기와 우연한 발견의 힘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보면 약은 단지 병을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인류의 기억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다리가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