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비둘기
피카소에게 라인화는 단지 시각적인 표현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언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감정과 기억, 그리고 바람을 표현하는 그의 방식이었습니다. 그가 평화의 상징으로 그렸던 비둘기 드로잉은 바로 그런 감정의 선들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 중 하나입니다. 단순한 외곽선으로만 이루어진 이 새는, 어쩌면 피카소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날아오른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1949년, 피카소는 프랑스 공산당의 요청으로 제1차 세계평화회의 홍보 포스터를 그리게 됩니다. 그는 어떤 이미지가 평화의 보편적인 상징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결국 떠올린 것이 성경 속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 등장하는 올리브 가지를 문 비둘기였습니다. 피카소는 이 상징을 빌려 단순한 선 몇 개로 구성된 ‘평화의 비둘기’를 그려냈고, 이 그림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에서 평화의 이미지로 널리 사용되게 됩니다.
하지만 피카소가 비둘기를 그리게 된 이유는 단지 상징성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년 시절, 아버지가 키우던 비둘기를 보며 자랐습니다. 어린 피카소가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바로 그 비둘기의 발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연필로 착각했고, 아버지는 그에게 그림 도구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그림이 피카소 인생의 첫 작품이 되었고, 그의 예술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억 속의 비둘기는 온순한 상징만은 아니었습니다. 피카소는 한 번은 아버지가 새끼 비둘기를 집에 데려왔을 때, 기존에 있던 비둘기들이 그 새끼를 공격해 죽이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때 그는 “우리 모두는 잔인해질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평화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다짐을 품게 되었던 것이죠. 그의 비둘기 라인화에는 그런 복잡한 기억과 감정이 뒤섞여 있습니다.
1949년은 피카소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해였습니다. 그 해 그는 프랑수아즈 질로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고, 이름을 팔로마(Paloma)라고 지었습니다. 스페인어로 ‘비둘기’라는 뜻이죠. 전쟁과 정치적 긴장이 가득하던 시절, 그는 자신의 가정에도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평화회의 포스터에 비둘기를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딸에게 그 이름을 부여한 것은, 예술과 삶이 분리되지 않았던 피카소다운 선택이었습니다.
피카소가 그린 비둘기는 누구든 쉽게 따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유년의 기억, 전쟁에 대한 저항,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향한 바람까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기술로 그려낸 선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을 따라 손끝에서 태어난 선입니다.
https://youtu.be/8tK3IxZG80k?si=P4_pmOaXLjxaeBiO
예술이란 때때로 진실을 말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피카소는 선 몇 개의 단순함 속에 수많은 감정을 숨겼고, 그 선을 통해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들, 지켜야 할 것들, 그리고 여전히 바라는 세계에 대해서 말이지요.
세상은 점점 더 빠르고 복잡해지지만, 피카소는 선 하나로도 충분히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가 그린 선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였고, 세상을 읽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선 위에는 권리의 경계가 있었고, 본질을 향한 탐색이 있었으며, 기억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다시 그 선 앞에 섭니다.
무엇이 예술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