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그들도 속았습니다

한 대학생의 손에서 시작된 기억의 전환

by 김형범

2019년, 대구가톨릭대학교 중앙도서관 한쪽 게시판에 특별할 것 없는 구인 광고 하나가 붙었습니다. “경력 무관, 학력 무관, 나이 무관, 월급 300 이상, 가족 같은 분위기.” 누가 보더라도 의심스러운 문구였지만, 바로 그 점이 기획의도였습니다. 광고 하단에는 QR코드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지원서 작성 및 상세 요강은 QR코드를 확인하세요”라는 안내와 함께 말입니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한 사람들은 곧 낯선 장면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구직 정보 대신, 평화의 소녀상이 담긴 포스터가 화면에 떴고,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1930년, 그들도 속았습니다.”


이어지는 문장은 더욱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조선인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방식은 취업 사기, 유괴, 인신매매 등 명백한 강제징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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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고문은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었습니다. 1930년대 위안부 피해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속아 끌려갔는지를, 오늘날의 ‘취업 사기’라는 익숙한 언어로 재구성한 강력한 공익 캠페인이었습니다. 이 광고를 기획한 사람은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의 한 4학년 학생으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실, 과거는 기억하지 않으면 되풀이됩니다”라는 문구를 통해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했습니다.


당시 이 공고문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캠퍼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고, “이 기획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다”는 찬사와 함께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다”, “학생이 이런 기획을 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다”는 댓글들이 이어졌고, 결국 언론에도 소개되었습니다.


이 캠페인이 특히 인상 깊었던 이유는, 과거의 비극을 현재의 언어로 체험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거나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에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현실적 상황—구인 광고, QR코드, 구직 심리—를 활용해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 결과 QR코드를 찍는 단순한 ‘행동’ 자체가, 곧 기억의 통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위안부 문제를 주로 교과서에서 배워왔습니다. “강제로 끌려갔다”, “많은 피해자가 있었다”는 식의 문장은 익숙하지만, ‘어떻게’ 끌려갔는지를 생생하게 체감할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이 광고는 바로 그 공백을 채웠습니다. 피해자들은 납치나 감금뿐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속아 스스로 발걸음을 옮긴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처럼 구조적인 사기와 유인을 ‘오늘의 구직 문제’와 연결시킨 기획은, 단순한 광고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메시지로 기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제법 흘렀습니다. 하지만 이 캠페인은 여전히 기억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가 QR코드를 찍으며 느꼈던 불쾌함, 경계심, 놀라움은 그 자체로 역사의 한 장면과 연결된 감정이었습니다. 역사는 단지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몸으로, 마음으로 느낄 때 더 오래 남습니다.


2019년, 한 대학생이 만든 이 광고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전해줍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낡아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공고문을 다시 떠올려야 합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그 일은 다시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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