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의 금욕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을까

욕망을 억제하는 자가 도덕적으로 우월한 이유

by 김형범

신기한 현상이 있다. 고통을 견디는 사람이 존경을 받는 경우다. 어떤 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쾌락을 거부하고 일부러 불편한 길을 택할 때, 사람들은 그에게 고개를 숙이곤 한다. 특히 성직자들에게 그러하다. 그들은 결혼하지 않고, 고기를 끊고, 맑은 물 한 잔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단순히 종교적 규율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엔, 그들이 내뿜는 도덕적 권위는 너무도 강력하다. 그들은 왜 욕망을 억제하는 삶을 택했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런 이들을 존경하는 걸까.


금욕은 겉보기에 굉장히 고결해 보인다. 욕망을 거세하고 세속적 유혹에서 벗어나는 모습은 마치 인간을 인간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니체는 이 금욕을 정면으로 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금욕주의는 단순한 고귀함의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성직자의 금욕은 '삶의 힘'을 거세한 결과이며, 도덕적 권위를 쌓기 위한 전략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욕망을 억제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시위다. 나는 너희처럼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나의 고통은 너희의 향락보다 더 고귀하다는 주장이다. 그 속에는 은근한 우월감이 숨어 있다. 세속의 욕망을 좇는 자들과 거리를 두고, 자신이 더 순수하고 정결하다는 이미지를 세우는 것. 이때 고통은 단순한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사회적 자산이 된다. 고통을 견디는 자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메시지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성직자는 이 구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금욕을 통해 자신을 차별화시키고, 공동체의 중심에 선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성직자들은 왕보다 높은 권위를 지닌 존재로 군림해왔다. 고통은 때때로 권력이 된다. 사람들은 욕망을 따라 사는 사람보다, 그것을 거부하고 초월하는 사람에게 더 쉽게 무릎을 꿇는다. 그것이 금욕주의가 권력화된 메커니즘이다.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금욕이 단지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니체는 말한다. 금욕주의는 억눌린 본능이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 결과라고. 욕망을 억누르는 대신, 그 억제가 오히려 또 다른 욕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도덕적 우월감, 영향력, 존경, 그리고 통제. 성직자의 금욕은 단지 육체의 부정을 넘어서, 정신적 권위를 독점하기 위한 문화적 장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금욕은 정말 고귀한 것일까? 그것은 단순히 욕망을 거부하는 행위가 아니라, 고통을 통해 권위를 얻고, 세속적 질서 위에 도덕적 질서를 세우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 성직자의 금욕주의는 그 자체로 도덕의 연극이며,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도덕과 권위를 연결 짓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열쇠다. 금욕은 힘없는 자가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선택한 가장 정교한 무기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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