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오해한 에피쿠로스의 고요한 철학
쾌락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은 종종 그것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무언가를 즐긴다는 행위는 때로 방종으로 비치고, 지나친 기쁨은 마치 금기의 선을 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오랜 시간 서구의 도덕적 전통은 쾌락을 경계했고, 특히 종교와 철학은 그것을 절제하거나 멀리해야 할 것으로 규정했다. 그 결과 쾌락은 쉽게 타락과 연결되고, 절제 없는 삶의 대명사처럼 오해받아 왔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쾌락을 바라보았다. 그는 쾌락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가 말한 쾌락은 흔히 생각하는 감각적 향락이 아니라, 고요하고 안정된 마음의 상태를 의미했다.
에피쿠로스에게 있어서 진정한 쾌락은 욕망을 무한히 추구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통제하고 줄임으로써 얻어지는 심신의 평온에서 비롯된다. 그는 욕망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욕망, 자연스럽지만 굳이 충족하지 않아도 되는 욕망, 그리고 인위적이며 끝없이 자극을 필요로 하는 헛된 욕망이다. 그중 마지막 욕망이야말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그는 보았다. 따라서 불필요한 것을 갈망하는 습관을 버리고,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선별해내는 일은 그에게 있어 쾌락을 추구하는 첫걸음이었다. 그것은 더 많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더 이상 부족하지 않다고 느끼는 삶이었다.
에피쿠로스는 사치와 향락을 멀리했고, 간결하고 소박한 일상을 즐겼다. 그는 “빵과 물만으로도 신의 식탁에 앉은 듯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할 만큼,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느끼는 법을 실천했다. 친구들과 함께 정원을 가꾸고 대화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기쁨이었고, 고통이 없는 몸과 불안이 없는 마음이야말로 최고의 쾌락이라고 여겼다. 그렇기에 그의 철학은 쾌락주의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절제와 자율에 가까운 철학이다. 그는 쾌락을 좇기보다는, 쾌락을 둘러싼 욕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피쿠로스는 오랫동안 오해받았다. 로마 시대의 향락주의자들이 그의 이름을 빌려 퇴폐적 삶을 정당화했고, 중세 기독교는 그를 육체의 쾌락을 찬양한 이교도로 단정지었다. 하지만 그의 본래 철학은 정반대에 있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도록 내면의 자율성을 기르는 데 집중했고, 고요함과 만족이라는 덕목을 통해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제안했다. 쾌락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의 고통과 불안을 다스리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쾌락은 더 가지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비로소 삶은 가벼워지고 고요해진다고 그는 믿었다. 그것은 감각의 자극이 아니라, 결핍이 없는 상태에서 오는 안정감이었고, 욕망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발견되는 자유였다. 쾌락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끝없이 확대하려는 마음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쾌락은 정말 나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문제였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