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다 강력한 이야기의 힘
새벽 하늘을 가르며 수백 대의 전투기가 이란 상공을 스쳐 지나간 그 순간, 세계는 또 한 번 “중동 위기”라는 익숙한 헤드라인을 마주했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드러난 진실은 단순한 폭격 작전을 훌쩍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라이징 라이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스라엘의 공습은, 사실상 군사·사이버·언어를 아우른 복합적 서사전(敍事戰)으로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실제 폭발음만큼이나 큰 울림을 낸 것은 전장을 수놓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신화’라는 단어는 고대 서사 속에나 어울릴 것처럼 보이지만, 현대 국제정치에서 그것은 전략 자원으로 기능합니다. 이스라엘이 “1981년 오시라크 원자로 폭격의 재림”을 내세운 까닭은, 대중에게 ‘선제적 자기방어’라는 낯익은 영웅 서사를 환기시켜 작전의 정당성을 선취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작전명부터가 강렬한 동물 이미지를 차용해 ‘위협적이지만 결연한 수호자’의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언론과 SNS는 이를 받아들여 “핵 개발 억제”라는 간명한 구도를 부각했고, 많은 독자가 사건을 그 틀 속에서 해석하도록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무너진 것은 이란의 핵심 전력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서방이 오래도록 그려 온 ‘표피적 이란’이라는 상(像)이 갈라져 내렸습니다. 공습 직후 이란 내부에서는 정부 비판 세력까지 포함해 “조국 수호”라는 단일한 구호가 울려 퍼졌습니다. 다년간의 제재와 내부 논쟁에도 불구하고, 외부 압박이 가해지는 순간 국가는 빠르게 전시 체계로 전환했고, 수시간 만에 방공망과 미사일 기지가 다시 가동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이 기대한 ‘분열된 상대’라는 서사는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초반 이스라엘이 과시한 ‘공중 우위’도 결국 하나의 연출이었습니다. 초기 타격 대다수가 유인용 더미에 집중됐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화려한 영상은 전략적 잔상만 남긴 채 실효성을 잃어 갔습니다. 그 사이 이란은 손실을 감수할 구형 설비를 미끼로 내주고, 핵심 시설과 최신 센터퓨지를 지켜 내며 반격 태세로 돌아섰습니다. 결국 ‘우위’라는 단어는 미디어 프레임 안에서만 온전히 존재했던 셈입니다.
전장이 교착 상태에 이르자, 전투 방식은 미사일에서 드론과 차량 폭탄으로 바뀌었습니다. 민간 병원과 기숙사까지 타격 대상이 되었지만, 서방 매체는 이를 계속 “정밀 공습”이라 불렀습니다. 표현이 달라지는 순간, 행위의 성격도 달라 보이기 마련입니다. 언어는 무기를 은폐하면서도 공격의 강도를 유지하는 방패이자 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테러의 서사적 세탁’은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의 도덕적 정당성을 약화시켰고, 더 많은 국가가 이란의 방어 논리에 귀 기울이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사태는 이란 내부에서 오랫동안 금기시되다시피 한 ‘핵 보유’ 담론을 공론장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대다수 시민이 “핵실험은 최후의 억제력”이라 외치는 지금, 이란 의회는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강력한 여론 변화를 촉발한 요인은, 물리적 피해보다 ‘일방적 폭력에 직면한 피해자’라는 집단적 자각이었습니다. 서사가 현실을 재편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번 충돌은 미사일과 폭탄보다 이야기와 이미지가 미래를 결정짓는 시대임을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래된 ‘억지력의 신화’를 토대로 상대를 굴복시키려 했으나, 그 서사가 균열되는 순간 전략도 흔들렸습니다. 반대로 이란은 ‘피해자이자 해방자’라는 새로운 서사를 구축하며 내부 결속과 국제적 동정여론을 동시에 얻었습니다.
사실을 넘어 이야기가 세력을 만드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고 확산할지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전쟁은 물리적 충돌로 끝나지 않습니다. 선명한 진실과 교묘한 서사가 뒤엉켜 만들어 낸 신화가 깨지는 그 순간, 비로소 다음 국면의 전쟁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