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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의 진짜 주인공은 시스템이다

기훈, 자본의 논리, 그리고 무력한 개인 서사에 관하여

by 김형범

서론: 오징어게임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인가: 자본의 논리와 시스템 서사 사이에서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절대적이다.


대부분의 관객은 주인공을 통해 사건을 보고, 그의 감정선에 몰입하며 이야기를 해석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흔들리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면, 작품 전체를 실패작으로 치부한다. 주인공은 서사의 중심이며, 관객이 세계를 바라보는 창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득 질문을 던져본다. “혹시 우리가 주인공이라고 믿었던 인물이, 사실은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오징어게임》은 시즌1에서 성기훈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카메라는 그의 시선을 좇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즌2와 3로 넘어오자 그의 행동은 관객의 기대를 배반했다. 성기훈은 우유부단하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반복했고, 급기야 작품 전체가 흔들린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중은 감독을 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거꾸로 묻고 싶다. “혹시 성기훈은 애초에 주인공이 아니었던 게 아닐까?” 만약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이 성기훈이 아니라면, 《오징어게임》의 철학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1. 카메라 시점의 함정: 왜 성기훈이 주인공으로 보였는가


관객이 성기훈을 주인공으로 착각한 이유는 단순하다. 카메라가 그의 시선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여주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성기훈은 서사의 축이 아니다. 이야기를 지배한 것은 성기훈이 아니라 ‘오징어게임’이라는 시스템이다. 성기훈은 단지 그 안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참가자일 뿐이다.

우리는 카메라가 따라가는 인물을 주인공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 믿음은 언제나 옳은가?


2. 관객의 착각: 왜 우리는 주인공을 약한 개인으로 설정하려 하는가


대중은 본능적으로 한 개인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그가 비틀거리고, 무력하고, 비일관적인 행동을 해도 “그래도 그는 주인공이니까”라며 끝까지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이야기는 약한 개인이 고난을 극복하고 세상을 바꾸는 영웅 서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은 이런 기대를 무참히 배신했다. 성기훈은 영웅이 아니다. 그는 소시민이며, 시스템의 기계 속에서 소모될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시즌2와 3에서 성기훈의 무력한 모습은 그의 캐릭터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 시스템의 강고함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관객은 자신도 언젠가 약한 개인의 자리에서 기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은 냉정하게 말한다. “너도 성기훈처럼 무력할 뿐이다.”


3. 성기훈과 상우의 대비: 왜 성기훈은 영웅이 될 수 없는가


성기훈은 시즌1에서 상우와 대비되는 인물이다. 상우는 철저한 계산과 냉철한 이성으로 시스템에 적응하려 했다. 반면 성기훈은 감정적이고, 오지랖이 넓으며, 우유부단하다. 상우의 대사는 이를 압축한다.


“기훈이형, 형 인생이 왜 그 모양 그꼴인지 알아? 오지랖은 존나 넓은데 머리는 존나 나빠서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하는 인간이니까!"


시즌1에서 주인공인 줄 알았던 성기훈. 시즌2와 3에서 관객이 영웅적 활약을 기대했던 성기훈은 결국 그 기대를 저버린다. 그러나 이 우유부단함이야말로 시스템 안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준다. 그는 마지막까지 버틴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4. 개인의 무력함과 시스템의 불멸성


《오징어게임》이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건 시스템의 강고함이다. 성기훈이 시즌2와 3에서 시스템을 무너뜨리려 발버둥치지만, 그 시도들은 모두 무의미해 보인다. 이것은 서사의 실패가 아니라,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드러내는 장치다. 시스템은 개인의 의지를 소비하며 더욱 공고해진다.


성기훈은 《메트릭스》의 네오가 아니다. 그는 시스템에 맞서 싸우다 결국 소모되는 소시민일 뿐이다.


5. 서사와 번외: 자본의 논리와 원작자의 철학


《오징어게임》을 단순한 서사로만 보지 않고, 넷플릭스의 거대한 IP 전략 속에 위치시켜 보자. 넷플릭스 입장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글로벌 흥행을 기반으로 한 수익 모델이다. 당연히 그들은 성기훈을 영웅화해 이야기를 지속시키고, 앞으로 이어지는 시리즈화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자본의 논리로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영웅은 상품화가 쉽고, 팬덤을 끌어모으며, 반복 소비되는 이야기 구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작자인 황동혁 감독의 관점은 달랐다. 그는 단순한 영웅 서사를 통해 시리즈를 이어가기보다, 이 작품이 처음부터 품고 있던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철학적 문제제기”를 더 깊이 탐구하고자 했다. 시즌2와 3에서 성기훈이 무력한 개인으로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감독은 시스템을 주인공으로 삼는 서사를 끝까지 지키려 했다. 하지만 이 선택은 넷플릭스의 자본 논리와 충돌했고, 대중의 영웅서사적 기대와도 어긋났다.


물론, 3년이라는 짧은 제작 기간으로 인해 이 철학적 실험은 충분히 숙성되지 못한 채 나왔다. 더 깊이 있는 이야기로 발전시킬 여지를 남겼지만, 자본의 속도전과 맞물리며 오히려 서사의 힘이 약해진 측면도 있다.


이러한 관계는 성기훈과 오징어게임과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기훈의 캐릭터성 때문에 작품을 비판하는 것에는 조금 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 시스템을 주인공으로 본다는 것


《오징어게임》의 진짜 공포는 죽음의 잔혹성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시스템과 닮아 있는 자본주의적 게임판의 불멸성이다. 성기훈의 무력한 행동과 관객의 불만은 이 드라마가 결국 “개인 서사가 아닌 시스템 비판”임을 증명한다. 시즌2와 3의 악평은 단순한 각본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와 창작자의 철학이 충돌한 결과다.


우리가 성기훈을 주인공으로 착각한 순간, 이미 시스템의 함정에 빠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현실을 보자.


우리 세상에서 진짜 주인공은 우리 인간이 아니라, 이 자본주의라는 게임판 그 자체가 주인공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즌1을 지나 2와 3이 되어도 여전히 《오징어게임》은 여전히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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