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보다 감동? 소피스트가 본 예술의 힘
설득과 공감을 예술의 본질로 본 고대 수사학자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한 곡, 혹은 광고 속 짧은 장면이 마음을 흔들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지기보다, 먼저 가슴이 움직이는 것을 느낍니다. 고대 그리스의 한 부류 철학자들, 소피스트는 바로 이 ‘마음을 움직이는 힘’에 주목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현하거나 진리를 보여주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설득과 감동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수단이었습니다.
소피스트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활동한 수사학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진리가 절대적으로 하나만 존재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짜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더 설득력 있게 말하는가’였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그들이 예술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깊게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소피스트에게 예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보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고, 생각을 변화시키며, 때로는 행동까지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 무대가 단순한 오락의 공간이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치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관점이 이해됩니다. 소피스트들은 연극, 시, 음악을 하나의 수사학적 장치로 바라보았습니다. 관객이 어떤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를 느낀다면, 그것은 이미 설득이 이루어진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예술이 단순히 미적 만족을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여론과 가치관을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한 편의 연극이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한 편의 시가 정치적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오늘날 미디어의 영향력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소피스트는 예술가를 설득의 장인으로 간주했고, 그들의 작품을 일종의 ‘대중 설득 전략’으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오늘날에도 쉽게 발견됩니다. 정치 연설, 마케팅, 광고, 영화는 모두 감정을 움직이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사도록 만드는 과정에서, 그 상품이 객관적으로 얼마나 좋은지보다 ‘그것을 갖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가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영화 속 허구의 이야기가 관객을 울리고 웃게 만들며, 때로는 실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힘도 같은 원리에서 나옵니다. 이는 소피스트의 예술관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감정이 움직이면 사람의 판단과 행동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물론 이런 관점에는 위험성도 따릅니다. 감동이 진실을 가릴 수도 있고, 잘못된 방향으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선동적인 연설이나 편향된 메시지도 강한 감정을 자극해 사람들의 선택을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피스트는 그것을 부정하기보다, 오히려 인정하고 그 힘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 했습니다. 예술이란 본래 설득의 언어이며, 그 언어를 잘 다루는 것이 곧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결국 소피스트의 예술관은 단순한 미학 이론이 아니라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이었습니다. 예술이 반드시 진실만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감동과 설득이라는 효과에 가치를 두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예술이 진실을 말하는가, 아니면 감정을 자극하는가 하는 문제 앞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소피스트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둘은 대립하기보다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일 수 있습니다. 감동 속에서 진실이 빛날 수도 있고, 진실이 감동을 더욱 깊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의 역할을 진실과 감동 중 어느 한쪽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소피스트의 시선은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상기시킵니다. 예술이 가진 가장 본질적인 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언제나 설득과 감정의 힘이 함께 작동할 때, 가장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예술가들이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