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에서 배우는 고정관념의 파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단 한 번의 승리를 거둔 이세돌. 그는 경기 직후 “AI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계산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선뜻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수를 주저 없이 두는 AI의 과감함 때문입니다. 그 수는 오랫동안 ‘두면 안 된다’는 낙인이 찍혀 있던 자리, 바로 바둑판 모서리의 (3,3) 지점이었습니다.
바둑에서 ‘삼삼’이라 불리는 (3,3) 자리는 귀를 단번에 차지할 수 있지만 중앙 진출이 어렵고 발전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기피되었습니다. 고전 바둑에서 귀 첫 수로 삼삼을 두는 일은 거의 없었고, 심지어 ‘그렇게 두면 손해’라는 불문율이 존재했습니다. 이 자리는 전통과 경험이 쌓아올린 금기 영역이었고, 고수일수록 그 고정관념은 더 단단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의 등장은 이 오래된 금기를 무너뜨렸습니다. 알파고가 보여준 삼삼 침입은 전통적인 정석을 뒤흔들었고, 안정적인 실리 확보와 다양한 응수타진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인간의 시각에서 불리해 보이던 자리가 AI의 계산에선 언제나 최적의 수로 드러났습니다. 이세돌 9단은 “쉬운 삼삼 하나 못 둘 만큼 고정관념 속에 갇혀 있었다”고 고백하며, 자신이 지나쳐버린 가능성을 돌아보았습니다.
AI의 강점은 단순한 연산 능력 이상에 있습니다. 과거의 평가나 편견에 얽매이지 않고,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다시 검토하며 상황에 맞는 최선의 선택을 찾습니다. 반면 인간은 경험과 직관을 무기로 삼지만, 그 무기가 때로는 스스로를 가두는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과거의 승패 기록, 선배들의 조언, 기존의 정석이 만들어낸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안주합니다.
삼삼의 부활은 바둑이라는 한 분야를 넘어 삶의 태도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고정관념은 때로 안전을 보장하지만, 동시에 가능성을 차단하는 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AI가 삼삼을 새롭게 정의했듯, 우리 역시 익숙한 틀을 의심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당연히 안 된다’고 믿어왔던 선택지가 오히려 최선의 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세돌이 말한 “AI에게 고정관념이 없다”는 메시지는 기술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이 더 유연하고 열린 사고를 지녀야 한다는 조언입니다. 바둑판의 작은 한 점에서 출발한 변화는 인생의 커다란 판에서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새로운 ‘삼삼’을 둘 수 있는 자유를 가질 수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AI로부터 배워야 할 가장 값진 태도일 것입니다. 작은 수 한 점이 판 전체를 바꾸듯, 사고의 한 걸음이 우리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