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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목소리가 만든 예고편의 시대

돈 라폰테인과 영화 홍보의 황금기

by 김형범

세상은 그의 목소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적어도 예고편의 세계는 그랬습니다. 스크린이 어두워지고 첫 장면이 나타나기 전, 낮고 깊은 울림이 스피커를 타고 퍼져 나오는 순간, 관객은 이미 이야기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단 몇 초의 목소리만으로도 장면의 무게를 배가시키고, 아직 보지 않은 영화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힘. 그 주인공이 바로 돈 라폰테인이었습니다.


1965년, 뉴욕의 한 영화 광고 전문 회사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는 뜻밖의 기회를 맞습니다. MGM 영화의 라디오 광고를 제작하던 중, 전문 성우가 스케줄 착오로 녹음에 불참하는 돌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마감은 다가오고, 대타를 구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직접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웅장하고 울림 있는 목소리가 녹음기를 통해 흘러나왔고, 결과를 받은 MGM은 곧바로 기존 성우를 교체했습니다. 이 우연한 대타 녹음은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었습니다.


그 후 라폰테인은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를 세우고, 대부 2 같은 대작 예고편을 작업하며 업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1978년에는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예고편 부서 책임자로 스카웃되어 ‘파라마운트의 목소리’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부사장 자리까지 오른 그는 1981년 전업 성우로 전향했고, 자택에 녹음 스튜디오를 설치한 뒤 하루 최대 35개, 일주일 60개의 작업을 소화하며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2008년까지 남긴 기록은 영화 예고편 5,000편 이상, TV 광고 15만 개 이상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서사를 여는 문이었습니다. 짧은 한 문장만으로도 관객을 사로잡았고, 영화의 기대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신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만큼의 울림을 전해줄 목소리를 찾지 못한 업계는 점차 보이스 중심의 예고편에서 벗어나 웅장한 사운드 디자인과 강렬한 시각적 편집에 무게를 두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의 흥미로운 개념이 나옵니다. 바로 ‘돈 라폰테인 효과’입니다. 이 용어는 원래 광고·마케팅 분야에서, 검증된 인물이나 방식에 대한 선호를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라폰테인의 목소리는 한 번 효과를 입증하자, 업계는 더 이상 실험하지 않고 그에게만 의존했습니다. 새로운 성우를 발굴하는 모험보다 이미 성공이 보장된 목소리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부재가 드러나자, 그 빈자리를 채울 만한 대체자가 없었고, 결국 예고편의 스타일 자체가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이 효과는 영화 업계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전반에서도 종종 발견됩니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선택이 단기적으로는 성공을 보장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변화와 혁신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교훈을 남깁니다.


돈 라폰테인의 시대는 한 사람의 재능이 미디어의 형식을 어떻게 바꾸고, 그 부재가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울림과 ‘라폰테인 효과’라는 개념은 여전히 업계와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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