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과 행복론으로 갈등을 덮으려는 위험한 수사
최근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성과급 논란과 관련해 “1700% 성과급에도 만족하지 않는다, 5000%가 돼도 행복하지 않다”라는 발언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보상에 집착하는 태도가 미래를 가로막는다고 주장했지만, 이러한 발언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며 책임을 회피하는 수사로 읽힙니다. 경영자가 노사 갈등을 철학적 행복론으로 덮으려는 태도는 단순한 견해를 넘어 사회적 퇴행에 가깝습니다.
최 회장은 과거에도 경영자로서의 자질에 의문을 불러일으킨 전력이 있습니다. 2013년 횡령과 배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구속되었고, 2015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던 사건은 재벌 총수의 책임 의식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2024년에는 1조 원이 넘는 이혼 합의금 판결로 사회적 관심을 끌었는데, 이는 그의 개인사가 단순한 사생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자산의 이동과도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런 인물이 직원들에게 돈과 행복의 관계를 가르치려는 장면은 모순적입니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훨씬 구체적입니다. SK하이닉스 노조는 더 많은 보상을 탐욕스럽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2021년에 합의된 규칙, 즉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기로 한 약속을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측은 1700% 성과급을 지급하겠다고 밝히며 충분한 보상이라고 주장했고, 최 회장은 이를 행복론과 연결 지으며 갈등을 단순히 근시안적 집착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는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이라는 부담을 직원들에게 떠넘기면서, 정작 합의된 약속은 지키지 않는 경영 방식의 문제를 드러냅니다.
사회학적 연구 역시 그의 발언을 반박합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일정 수준 이상의 금전은 분명히 행복을 증진시킵니다. 생활의 안정, 건강 관리, 교육 기회 확대, 미래 불안 감소는 모두 소득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물론 소득이 무한한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공정한 분배와 신뢰가 확보될 때 금전은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따라서 성과급 논란을 단순히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다”는 말로 축소하는 것은 학문적 근거에도 맞지 않습니다.
더욱 심각한 점은 그의 발언이 계약적 관계를 전근대적 신분적 관계로 되돌리려는 태도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회사와 직원은 계약을 기반으로 한 근대적 관계이며, 이는 합리적 규칙과 약속에 의해 유지됩니다. 그러나 최 회장의 발언은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훈계하는 듯한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합법·합리적 권위를 바탕으로 운영되어야 할 현대 기업을 가부장적 권위로 환원시키는 퇴행적 행동입니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지적한 ‘상징폭력’ 개념처럼, 구조적 불평등을 개인의 심리 문제로 전가해 자연스러운 질서인 것처럼 정당화하는 모습과 겹쳐집니다.
한편, 최 회장은 자신이 초래한 리스크와 회사가 떠안은 손실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SK온의 대규모 적자와 무리한 투자, 그리고 이어진 구조조정은 모두 직원들에게 부담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성과급 갈등을 철학적 행복론으로 덮으려 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책임을 회피하면서 권위를 유지하려는 것으로 보이며, 직원들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회적 설득력까지 잃게 만듭니다.
결국 최태원의 발언은 단순한 개인적 의견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지점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지금 우리는 계약과 합리성이 지탱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재벌 총수가 구성원들에게 훈계를 늘어놓는 시대에 머물러 있는가.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은 추상적인 행복론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고 책임을 공유하는 공정한 기업 문화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발언은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