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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위에서 날아오르는 치마

볼리비아 촐리타스 레슬링에 담긴 삶의 투쟁과 해방

by 김형범

빛이 쏟아지는 링 위, 고막을 찢을 듯한 함성 속에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 있습니다. 한 명은 근육질의 남성 레슬러이고, 다른 한 명은 풍성한 주름이 잡힌 화려한 색깔의 전통 치마를 입은 여성입니다. 레슬러의 주먹이 날아들자, 치마를 입은 여성은 능숙하게 몸을 돌리며 상대를 링 바닥에 내리꽂습니다. 치마의 주름이 공중에서 활짝 펼쳐졌다 오므라들기를 반복하는 동안, 관중들은 열광하고 환호합니다. 이 격렬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닙니다. 바로 볼리비아의 '촐리타스' 여성들이 펼치는 레슬링, 즉 '루차 리브레 데 촐리타스(Lucha Libre de Cholitas)'의 한 장면입니다. 이는 삶의 무게를 짊어졌던 여성들이 세상의 편견과 폭력에 맞서 싸우는 해방의 몸짓입니다.


촐리타스 여성들은 수세기 동안 볼리비아 사회에서 인종적, 계급적 차별을 겪어왔습니다. '촐리타(Cholita)'라는 단어는 본래 원주민 혈통을 가진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그들의 전통 복장인 폴레라 역시 낮은 신분을 상징하는 낙인처럼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 속에서 그들은 불평등과 폭력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몇몇 여성들이 자신들의 삶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억눌렀던 사회적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으로 부딪히는 투쟁의 길을 택했습니다. 이들의 레슬링은 단순히 운동 기술을 익히는 것을 넘어, 내면의 분노와 슬픔을 해소하고 스스로를 지킬 힘을 기르기 위한 몸부림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레슬링 링은 이들에게 단순한 경기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억압받던 감정을 폭발시키고, 한때 자신들을 비웃었던 이들의 시선 앞에서 당당히 자존감을 회복하는 성스러운 무대였습니다. 레슬링 경기는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명확한 서사를 지니고 있으며, 주로 남성 레슬러들이 악역(루도)을 맡아 여성 레슬러를 괴롭히다가 결국 패배하는 구도를 보여줍니다. 이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불평등을 상징적으로 뒤집어 보여주는 통쾌한 승리이자, 오랜 시간 억눌려 왔던 감정을 폭발시키는 해방의 퍼포먼스입니다. 그들의 레슬링은 단순히 쇼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통 의상을 입고 링 위에 서는 것 자체가 곧 자신들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행위가 된 것입니다. 날아오르는 치마는 그들이 짓밟혔던 과거를 떨쳐내고, 자유를 향해 도약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처럼 투쟁의 상징으로 시작된 촐리타스 레슬링은 현재 볼리비아의 중요한 문화적 콘텐츠이자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들의 경기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촐리타스 여성들에게 경제적 자립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그들의 용기와 자부심은 볼리비아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촐리타스 레슬링은 단순히 링 위에서 몸을 부딪치는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폭력이라는 무형의 적에 맞서 싸우며 자신들의 존엄성을 되찾고, 나아가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살아있는 예술인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이야기는 억압적인 환경이 개인의 잠재력을 억누르기도 하지만, 그에 맞서는 작은 몸짓 하나가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궁극적으로는 한 사회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촐리타스 레슬링은 단순한 경기를 넘어선 삶의 가장 역동적인 투쟁의 기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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