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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의 어머니, 제인 구달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을 깬 과학자의 60년 여정

by 김형범

2025년 10월 1일,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자이자 환경 운동의 거목이었던 제인 구달 박사가 향년 91세로 영원히 잠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녀는 90세가 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일 년 중 300일 가까이 전 세계를 여행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하던 중,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진행 중이던 연설 투어 도중 자연사했습니다. 이 소식은 단순한 한 과학자의 부고를 넘어, 인류가 자연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던 한 시대의 종언을 시사합니다. 한 세기 가까이 이어진 그녀의 삶은, 과학적 호기심이 어떻게 전 지구적 연민과 행동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서사입니다.


구달 박사의 여정은 사실 비전통적인 출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국 출신인 그녀가 26세의 젊은 나이에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곰베 국립공원으로 향했을 때, 그녀는 정식 학위가 없는 '고졸 출신의 비전문가 여성'이라는 당시 학계의 차가운 시선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이 비전문가라는 꼬리표는 역설적으로 그녀에게 기존 학문의 경계를 깰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녀는 침팬지들에게 번호 대신 '플로(Flo)',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와 같은 고유한 이름을 붙여주며 , 동물행동학자들이 금기시했던 '의인화'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구달 박사는 침팬지들이 개성 있는 존재이며, 인간과 마찬가지로 애정, 질투, 분노 같은 복잡한 감정적 깊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 이는 먼 관찰자가 아닌 이웃으로서 그들의 복잡한 사회에 깊이 몰입하려 했던 그녀의 비정통적인 연구 방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깊은 몰입은 곧 인류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1960년대 초, 구달 박사는 야생 침팬지가 나뭇가지의 잎을 떼어낸 뒤(도구 제작) 흰개미 굴에 넣어 먹이를 잡는(도구 사용) 행위를 최초로 관찰했습니다. 이 발견은 당시 서구 철학에서 '인간만이 도구를 만드는 존재(Homo Faber)'라며 인류의 고유한 특성으로 여겨졌던 경계를 산산이 부쉈고 , 인간과 영장류 사이의 경계가 생각보다 훨씬 모호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그녀의 장기 연구를 통해 침팬지가 잡식성이고 , 어미와 새끼 간의 강한 유대 관계는 물론, 복잡한 사회적 서열과 행동 양식이 세대에 걸쳐 전승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녀의 연구는 침팬지가 사랑과 그리움을 아는 고귀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1974년부터 4년간 지속된 '곰베 전쟁'과 같은 동족 살해 행위를 통해 잔혹함까지 갖춘 복잡한 존재임을 드러내며 , 침팬지 사회가 인간 사회의 복잡한 도덕적 스펙트럼을 투영하는 거울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러나 구달 박사의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변곡점은 1986년 시카고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서식지 파괴와 의료 연구소의 비인도적인 침팬지 실험 실태를 목격하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현장의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못했다"고 고백하며, 이때 학술적인 지식 축적이 멸종 위기 앞에서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윤리적 명령을 깨달았습니다. 구달 박사는 "과학자로 갔지만, 활동가로 떠났다"고 선언한 뒤 , 60년간의 현장 연구라는 학술적 안락함을 뒤로하고 일 년에 거의 300일을 세계를 여행하는 글로벌 옹호자로서의 제2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이 전환을 "되갚아야 할 시간"이라 표현하며, 자신의 과학적 명성을 인류와 자연의 공존을 위한 시스템 변화에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러한 헌신은 단순한 연설을 넘어 전 세계적인 제도적 유산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1977년에 설립된 제인 구달 연구소(JGI)는 침팬지 서식지 보호와 과학 연구 지원을 넘어, 비인도적 동물 실험 관행을 비판하고 생태계 파괴(ecocide)를 국제 범죄로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등 강력한 정책적 옹호 활동을 펼쳤습니다. 특히 그녀가 개척한 타카레(Tacare) 모델은 보존 패러다임 자체를 혁신했습니다. 타카레는 환경 보호를 지역 주민들의 생계 및 인간 개발과 분리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지역 주민이야말로 환경의 가장 효과적인 수호자라는 원칙에 기반합니다. 이 모델은 마이크로 크레디트(소액 대출)를 통해 여성들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소규모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거나, 학교와 의료 시설을 개선하는 등 지역 사회의 생존 문제를 먼저 해결함으로써 , 환경 보호를 자발적인 목표로 끌어올리는 총체적 접근법의 국제적 표준이 되었습니다. 또한 1991년 탄자니아 젊은이 16명과 시작했던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 운동은 현재 전 세계 약 100개국, 9,000개가 넘는 모임을 가진 거대한 청소년 네트워크로 성장하여 , 젊은 세대들이 사람, 동물, 환경 세 가지 영역 모두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연민적인 리더로 성장하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제인 구달 박사는 평생에 걸쳐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의 오만을 해체하고, 대신 모든 생명체의 복잡한 인격과 상호 연결성을 인류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녀의 삶은 '침팬지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넘어, 인류에게 희망의 전도사로 기억될 것입니다. 구달 박사가 생전에 전했던 강력한 메시지처럼, "오직 우리가 이해해야만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오직 관심을 가져야 도울 것이며, 오직 우리가 도와야 모두가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녀가 남긴 유산은 우리 각자에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굳건한 신념을 고취시키며, 우리가 받은 삶이라는 이 귀한 선물을 사용하여 이 행성 위의 모든 생명체를 위해 행동하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곰베 연구가 지속되는 한, 그리고 그녀의 가르침을 받은 젊은이들이 전 세계에서 행동하는 한, 제인 구달 박사의 위대한 유산은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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