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잣대: 법과 도덕의 경계에 서서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교수의 출판공로상 수상 취소 논란이고, 다른 하나는 웹툰 작가 주호민 씨의 특수교사 고소 사건입니다. 이 두 사건은 단순히 특정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을 넘어,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과연 모든 논란은 법정에서만 해결되어야 할까요? 법의 판단이 사회의 모든 진실과 정의를 담아낼 수 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박유하 교수의 수상 취소 논란을 살펴보겠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과 배치되는 주장을 담고 있어 큰 논란을 낳았습니다. 책의 내용에 대해 법정 공방이 이어졌고, 결국 대법원은 저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런데도 대한출판문화협회는 박 교수가 받을 예정이었던 특별공로상을 취소했습니다. 협회는 처음에는 '무죄'라는 법적 판단만을 근거로 상을 주려 했지만, 이 논리는 치명적인 허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로상은 단순히 법적 혐의가 없음을 확인하는 증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개인이 특정 분야에 이바지한 긍정적이고 모범적인 공적을 기리는 사회적 행위입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은 책은 결코 '공로'로 인정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협회의 판단은 '무죄'와 '옳음'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법적으로 무죄라는 것은 '유죄가 아님'을 뜻할 뿐, 해당 행위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법은 최소한의 사회적 기준을 정하는 것이고, 도덕과 윤리는 그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다룹니다. 출판협회가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이유만으로 상을 주려 했던 것은, 법의 좁은 잣대로 도덕과 윤리의 넓은 영역을 모두 판단하려는 오만한 태도였습니다. 이는 결국 사회적 공분을 샀고, 협회 스스로 논리적 허점을 인정하며 결정을 번복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출판협회는 '무죄이므로 상을 준다'는 단순하고 허술한 논리에 갇혀, 자신들이 속한 출판계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이 사건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줍니다. 공로상을 수여하는 단체라면, 해당 출판물이 사회에 어떤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례인 주호민 씨의 특수교사 고소 사건도 이와 맥을 같이합니다. 주호민 씨는 자폐 성향의 아들을 위해 몰래 녹음기를 가방에 넣어 보냈고, 녹음된 내용을 바탕으로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이 사건은 1심에서 유죄, 2심에서 무죄라는 엇갈린 판결을 받았습니다. 1심은 자폐 아동의 특수성을 고려해 녹취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며 교사의 일부 발언을 유죄로 보았지만, 2심은 몰래 녹음이 위법수집증거이므로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법의 판단이 달라지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사건의 엇갈린 판결은 법이 모든 상황의 진실을 완벽하게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심 재판부는 녹취가 아니면 진실을 밝히기 어려웠다는 긴급성과 상당성에 무게를 두었지만, 2심 재판부는 불법적인 녹음이 법의 원칙을 훼손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법적 잣대가 달라지면서, 장애 아동을 둔 부모의 절박함, 교육 현장의 교권 보호 문제, 그리고 불법 녹음의 정당성 등 여러 쟁점이 복합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누구의 잘못인지 단정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회적 딜레마가 그대로 법정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 사건은 법적 유무죄가 진실 공방의 끝이 아닐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법의 영역을 넘어, 우리 사회가 장애 아동의 교육 환경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교사들이 무분별한 민원과 고소로부터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법적 판단이 내려진 후에도, 당사자들과 사회 구성원들의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법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복잡한 사회적 문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두가지 사건을 보면서 나는 법의 한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법은 최소한의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약속이지만, 모든 인간의 감정과 도덕, 그리고 윤리적 가치를 완벽하게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사례에서 보듯, 법정의 무죄 판결이 사회적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으며, 주호민 사건에서처럼 법적 유무죄가 진실 공방의 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 법의 잣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복잡한 사회적 딜레마를 던져주었고, 그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가진 양심과 도덕이라는 잣대를 함께 사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법이 놓치는 빈틈을 메우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