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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배달하는 보이지 않는 손

19세기 파리의 공기 파이프

by 김형범

1910년 1월, 파리에는 그 어떤 기록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홍수가 덮쳤습니다. 며칠 밤낮으로 쏟아진 폭우로 센 강이 범람하며 도시의 절반이 물에 잠기는 전례 없는 재앙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절망적인 순간, 파리 시민들은 한 가지 기이한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도시 곳곳의 공공 시계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정확히 10시 50분에 멈춰 섰던 것입니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이 신비로운 광경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1880년부터 1927년까지 무려 47년간 파리 전체의 시간을 통제하고 동기화했던 놀라운 기술, 바로 공압식 시계 시스템 덕분이었습니다.


당시 파리는 제각기 다른 시간을 가리키는 수많은 시계들 때문에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약속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고, 기차역의 스케줄은 엉망이 되기 일쑤였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리는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채택했습니다. 바로 '공기'의 힘을 빌려 도시 전체에 시간을 배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시스템의 심장은 파리 중심부의 천문대에 설치된 '이중 마스터 시계'였습니다. 이 시계는 그야말로 파리 시간의 기준점이자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습니다. 마스터 시계는 매분마다 정확히 20초간 강력한 압축 공기를 폭발시켰고, 이 압력파는 파리 지하에 거미줄처럼 얽힌 수백 킬로미터의 파이프를 통해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압력파가 도달하면 각 가정과 공공장소에 설치된 수천 개의 종속 시계 내부에 있는 '벨로우즈'라는 특별한 장치가 팽창했습니다. 이 벨로우즈가 팽창하면서 정확히 60개의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기어를 1분만큼 밀어내는 정교한 기계적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시계 바늘을 움직였습니다. 심지어 마스터 시계는 압축 공기 일부를 되돌려 받아 자동으로 추를 다시 올리면서 스스로 재시동되는 완벽한 순환 구조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공기의 힘을 빌려 기계적으로 시간을 동기화하는 방식은, 당시 막 상용화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비싸고 불안정했던 전기 신호를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해결책이었습니다.


https://youtu.be/gol_p2aWrJg?si=2UzKlpPSsuyYcTDy

이 시스템 덕분에 파리 시민들은 하루 30만 내면 집에서도 도시 전체와 정확히 같은 시간을 볼 수 있었고, 도시가 거대한 하나의 심장 박동처럼 움직이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1910년 대홍수 당시 모든 시계가 동시에 멈췄던 것도, 압축 공기를 보내는 마스터 시계의 작동이 침수 때문에 중단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물에 잠기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고 제 역할을 다해 파리 시민들에게 혼란 속에서도 유일한 질서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파이프를 통해 시간을 배달했던 19세기 파리의 이야기는 기술이 단순히 편의를 넘어, 공동체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연결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공압식 시계 시스템은 1927년 전기의 보급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파리 시민들의 삶을 질서 있게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현대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GPS나 네트워크 시간 동기화 기술의 선구자이자 할아버지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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