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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 배틀 에프터 어나더]

1편_혁명의 실패와 부성애의 재구성

by 김형범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한 한 남자의 숨 막히는 추격극이지만, 그 깊은 곳에는 실패한 혁명이 어떻게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되는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독은 그 해답을 거창한 이념이나 거대한 조직의 부활이 아닌, 진정한 부성애라는 가장 사적이고 인간적인 관계에서 찾으라고 우리에게 조용히 권유하는 듯합니다.


영화가 그려내는 '프렌치 75'의 혁명은 철저한 실패로 끝이 납니다. 창립 멤버이자 윌라의 친모인 퍼피디아는 연방교도소에 가지 않으려고 동료들을 밀고(rat)했으며, 이 이기적인 행동은 조직을 궤멸적인 타격으로 이끌었습니다. 심지어 밥(팻 캘훈)마저 혁명가라는 정체성을 포기하고 마약 중독자의 모습으로 은둔하는 등, 혁명의 대의는 좌절되고 퇴색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밥이 딸 윌라를 구하기 위해 다시 세상으로 나서는 순간 새로운 방향을 찾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밥이 '능숙한 베테랑 요원'으로 화려하게 복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실수하고, 허둥대고, 심지어 경찰에게 쉽게 체포되기까지 합니다. 밥은 더 이상 '혁명가'의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대신 그는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역할에만 필사적으로 매달립니다.


감독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새로운 희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혁명의 대의가 조직원의 배신으로 무너졌다면, 그 대의를 이어나갈 새로운 희망은 생물학적 유대나 과거의 이념적 맹세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에서 태어납니다.


이 주제 의식은 영화의 클라이맥스, 윌라와 밥이 마주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납니다. 모든 악의 근원이었던 숙적 록조 경감(윌라의 생물학적 아버지)이 쓰러진 후, 윌라는 극도의 혼란 속에서 자신을 쫓아온 밥에게 총을 겨눕니다. 그녀는 밥에게 프렌치 75의 암구호를 외치며 "당신은 누구냐"고 소리쳐 묻습니다. 이 암구호는 한때 그들을 묶어주었던 혁명의 정체성, 그리고 배신으로 얼룩진 과거의 상징입니다.


이때 밥이 내뱉는 대답은 이 영화의 주제를 완성합니다.


이런 건 더는 중요하지 않아. 이제 집에 가자


밥은 암구호를 외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암구호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 대답을 거부합니다. 윌라가 묻는 "당신은 누구냐"는 질문은 '혁명 동지인가?'가 아니라 '진짜 아버지인가?'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밥의 그 한마디는 과거의 짐이었던 혁명의 이념을 내려놓고, 그저 윌라의 '아빠'로 서겠다는 그의 헌신을 선언합니다.


이 순간, 이 장면은 마치 두 대의 멜로디 기계장치가 비로소 공명을 일으키며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생물학적인 관계를 초월하여,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밥의 헌신적인 사랑과 그 진심을 깨달은 윌라의 고독한 영혼이 서로를 '아버지와 딸'로 확인하며 이어집니다. 퍼피디아의 밀고로 실패했던 '프렌치 75'의 이상은, 이제 '퍼거슨'이라는 새로운 이름 아래, 과거의 짐을 벗어던진 순수한 부성애라는 형태의 새로운 희망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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