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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멕시코 축제를 만들었다

007 스펙터의 화려한 오프닝이 수백만 명의 현실로 이어진 이야기

by 김형범

죽음을 슬픔이 아닌 축제로 기리는 나라, 멕시코의 ‘망자의 날’(Día de Muertos)은 이미 애니메이션 《코코》 등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합니다. 해골 분장을 하고 금잔화 꽃길을 따라 행진하는 화려한 퍼레이드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이 대규모 축제가 사실은 불과 몇 년 전, 스크린 속에서 탄생한 가짜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이야기는 2015년 개봉한 제임스 본드 영화 《007 스펙터》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멕시코시티의 망자의 날 대규모 퍼레이드 인파 속을 헤치며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숨 막히는 긴장감과 압도적인 비주얼로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았습니다. 제작진은 이 웅장한 장면을 위해 무려 6개월을 투자했고, 1,500명이 넘는 엑스트라와 예술가를 동원해 이 세상에 없던 축제를 스크린 위에 완벽하게 구현해냈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 멕시코시티에는 영화처럼 대규모로 진행되는 공식적인 망자의 날 퍼레이드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망자의 날은 본래 가족들이 집이나 묘지에 제단(오프렌다)을 차려놓고 조용하고 엄숙하게 고인을 추모하는 개인적이고 성스러운 명절이었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ZRSk1ytV6vw?si=XNiqF6hxXzbwapc1


아이러니는 바로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멕시코시티를 찾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스크린에서 본 그 화려한 퍼레이드를 실제로 기대하고 요청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관광객들은 멕시코의 수도에서 제임스 본드 영화 속 그 장관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 했고, 도시는 이 거대한 문화적, 경제적 요구에 직면했습니다. 결국, 멕시코시티 당국은 영화 속 허구의 아이디어를 현실로 끌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영화 개봉 이듬해인 2016년, 멕시코시티는 《007 스펙터》의 콘셉트를 차용하여 최초의 '망자의 날 그랜드 퍼레이드'를 개최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창조된 요소들—화려한 카트리나 해골 분장, 거대한 알레브리헤 조형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이 이벤트는 첫해부터 수십만 명의 인파를 끌어모으며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결국 영화 제작진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가짜 축제’는 이제 매년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멕시코시티의 대표적인 실제 축제이자 중요한 관광 동력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이 과정은 현대 문화의 힘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현실의 경제와 문화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국가의 오랜 전통에 새로운 대중적 형식을 덧입히는 창조적인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물론 일부 전통주의자들은 관광객을 위한 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이 퍼레이드는 죽음과 삶을 유쾌하게 연결하는 멕시코 특유의 정신을 전 세계에 가장 역동적으로 알리는 창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영화 속 한 장면은 멕시코시티의 역사를 바꾸고, 현실을 재정의하며, 상상이 현실이 되는 놀라운 문화적 전환을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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