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름은 잃었으나 마음을 얻은 초코파이

상표 등록 실수와 '情' 마케팅,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간식이 되기까지

by 김형범

길을 걷다가 문득, 혹은 군대에서, 혹은 해외 여행지 낯선 마트에서 발견하게 되는 과자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초코파이입니다. 이 단순한 초콜릿 코팅 파이 하나에는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이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와, 그 실수를 역전시킨 천재적인 마케팅 전략, 그리고 한국인의 가장 깊은 정서인 '정(情)'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초코파이를 떠올릴 때, 유독 오리온 초코파이의 그 잔잔한 CM송,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를 함께 떠올리실 것입니다. 이 노래 한 줄이, 사실은 한 기업의 존망을 가를 뻔했던 위기에서 탄생한 구원투수였다는 이야기를 아시는지요.


https://youtu.be/cCslvOewDHE?si=ckCgIfu5U1Q36nQe


이야기는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오리온 개발팀이 미국 출장 중 우연히 접한 문파이(Moon Pie)에서 영감을 얻어, 2년여의 개발 끝에 1974년 마침내 한국형 초콜릿 파이를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그 이름은 바로 '오리온 초코파이'였고, 짜장면 한 그릇에 100원이 넘던 시절, 50원이라는 다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첫해 매출 10억 원을 달성하는 대성공을 거두며 이 과자의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원조의 힘은 실로 대단했지만, 바로 이 성공의 초기에 오리온은 기업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바로 상표 등록 과정에서 '초코파이'라는 보통명사 자체를 독점하지 못하고, 오직 '오리온 초코파이'라는 이름으로만 등록한 것입니다.


오리온이 주춤하는 사이, 이 실수를 놓치지 않은 경쟁사들은 너도나도 '초코파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유사 제품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원조인 오리온의 시장 점유율은 급격히 흔들렸고, 무려 20년 가까이 이 상황을 두고 보았던 오리온은 뒤늦게 법적 대응에 나섰으나, 대법원은 이미 '초코파이'가 하나의 보통명사로 굳어졌다고 판단하여 경쟁사들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습니다. 결국 오리온은 수십 년간 공들여 키운 과자의 '이름'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법적으로 잃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합니다. 바로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오리온을 기사회생시킨 전설적인 광고 전략이 탄생합니다.


오리온이 꺼내 든 카드는 바로 '정(情)'이라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감정이었습니다. 더 이상 '초코파이'라는 이름으로는 경쟁사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오리온은, 제품을 단순한 과자가 아닌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포지셔닝했습니다. 초코파이를 조용히 건네는 행위는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을 안다"는 뜻으로 해석되었고, 제품 포장지에 한자로 '情'을 크게 새겨 넣으며 아예 제품명을 '초코파이 정(情)'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 감성적인 광고와 전략은 한국인의 마음을 깊이 파고들었고, 소비자들에게 '초코파이' 하면 곧 '정'이 떠오르게 만들면서 오리온 초코파이를 다른 미투 제품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브랜드로 격상시켰습니다.


이 '정'의 가치는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에서도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오리온은 중국에서 '정' 대신 '어진 마음'을 뜻하는 '인(仁)'을, 베트남에서는 가족 사랑과 존중의 의미를 담아 현지 문화에 깊숙이 침투하는 현지화 전략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오리온 초코파이는 러시아와 베트남 등지에서 국민 간식의 반열에 올랐으며, 명절이나 제사상에 오르는 귀한 음식이 될 정도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비록 법적으로 '초코파이'라는 이름을 독점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오리온은 '정'이라는 핵심 가치를 성공적으로 독점함으로써, 결국 글로벌 연매출 3조 원을 돌파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화가 멕시코 축제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