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으로 시작된 뉴질랜드 '브래드로나'의 기적
세상의 모든 위대한 명소가 치밀한 설계도 위에서 탄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이름 모를 장난, 혹은 설명하기 어려운 우발적인 행동 하나가 박제된 풍경에 생명력을 불어넣기도 합니다. 뉴질랜드 남섬의 한적한 도로변에 위치한 ‘카드로나 브래지어 울타리’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1998년 말, 크리스마스 연휴가 지난 어느 날 아침에 발견된 네 개의 브래지어는 그 시작이었습니다. 누가, 왜 그곳에 그것들을 걸어두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마도 새해를 맞이하는 해방감에 취한 누군가의 유쾌한 일탈이었을 그 작은 흔적은, 바람을 타고 펄럭이며 지나가던 여행객들의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이 기묘한 풍경은 마치 마법 같은 전염성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뒤에는 그 숫자가 두 배로 늘어났고, 몇 달이 지나자 수십 개의 색색깔 브래지어가 울타리를 수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차를 멈춰 세우고 자신의 소지품을 보태며 이 기이한 전시에 동참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당혹스러운 장난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곳을 지나는 이들에게는 통제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타인과 무언의 유대감을 나누는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미관을 해친다거나 운전자의 시야를 분산시킨다는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고, 당국에 의해 수천 개의 브래지어가 강제로 철거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울타리가 비워질 때마다 그 위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숫자의 브래지어가 보란 듯이 다시 걸렸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익명의 대중이 함께 만들어낸 이 유쾌한 풍경을 지키겠다는 의지에 가까웠습니다. 사람들은 정해진 규범보다 우연이 선물한 즐거움에 더 큰 가치를 두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며 이 가벼운 장난은 숭고한 의미라는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울타리에서 여성의 건강이라는 화두를 끌어냈고, 장소의 이름은 ‘브래드로나’라는 공식적인 명칭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이곳은 유방암 인식 제고를 위한 캠페인의 성지가 되어 매년 수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으는 생산적인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처음 울타리에 브래지어를 걸었던 익명의 주인공은 아마 상상도 못 했을 결과일 것입니다.
우리는 늘 모든 일에 명확한 이유와 거창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카드로나의 울타리는 우리에게 뜻밖의 교훈을 건넵니다. 때로는 계산되지 않은 순수한 장난이, 그리고 그 장난을 너그럽게 받아들인 대중의 마음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가장 따뜻한 풍경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