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라는 거울: 결핍이 만들어낸 세 가지 판타지

답을 찾는 미국, 길을 묻는 일본, 품을 찾는 한국

by 김형범

미국 드라마에서는 의사가 수사를 하고,

일본 드라마에서는 의사가 교훈을 주고,

한국 드라마에서는 의사가 연애를 한다.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 우스갯소리는 단순한 장르적 차이를 넘어, 각 나라의 대중이 무엇에 목말라하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지표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현실의 모방이라고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대중문화는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은 결핍을 채워주는 판타지'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대중은 '확실한 답'을 원합니다.

다양한 인종과 가치관이 뒤섞이고, 총기 사고와 범죄가 일상이 된 미국 사회는 개인에게 끊임없는 불안을 안겨줍니다.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시스템이 나를 지켜줄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 현실은 모호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미국 드라마는 병원이든, 법정이든, 경찰서든 모든 공간을 '수사 현장'으로 만듭니다. 그곳의 주인공들은 셜록 홈즈처럼 명쾌합니다. DNA 한 방울로 30년 전의 범인을 찾아내고, 원인 모를 질병을 논리적 추론으로 고쳐냅니다. 혼란스러운 현실(Chaos) 속에서, 이성과 과학으로 질서(Order)를 회복해 주는 영웅. 미국인들은 드라마를 통해 '정의와 진실은 반드시 규명된다'는, 현실에서는 좀처럼 얻기 힘든 확신을 소비하는 것입니다.


반면, '메이와쿠(민폐)'와 '다테마에(겉마음)'의 나라 일본은 '길을 잃은' 사회입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과 집단의 공기를 읽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개인의 솔직한 목소리는 거세됩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속으로는 "도대체 무엇이 옳은 삶인가?"에 대한 갈증이 타들어 갑니다. 이때 일본 드라마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는 수술칼 대신 '설교'를 듭니다. 모두가 눈치만 보고 있을 때, 그는 책상을 치며 "그건 틀렸어!"라고 일갈합니다. 이는 과거 '교양주의' 시대부터 이어져 온, 올바른 삶으로 대중을 이끌어야 한다는 엘리트적 사명감의 잔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대 일본인들에게 이 훈계는 잔소리가 아니라, 답답한 속을 뚫어주는 사이다이자 '삶의 이정표'가 됩니다. 그들은 리더가 부재한 사회에서 나를 이끌어줄 강력한 멘토를 브라운관 속에서나마 만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우리는 왜 기승전-'연애'일까요?

한국 사회는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한 '무한 경쟁'의 장입니다. 효용 가치가 없으면 도태될 수 있다는 공포, 모두가 적이 될 수 있다는 각자도생의 현실 속에서 한국인은 지독하게 외롭습니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 속의 병원과 법정은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곳이어야만 합니다. 그 사랑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닙니다. 내가 실수해도, 내가 가진 것이 없어도, 세상 모두가 나를 등져도 "너는 내 사람이야"라고 말해주는 절대적인 내 편. 한국인에게 드라마 속 연애는 팍팍한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정서적 구원'입니다. 차가운 경쟁 사회에서 결핍된 '조건 없는 지지'를 채우기 위해, 우리는 드라마 속에서 그토록 뜨겁게 사랑을 갈구하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드라마 3국의 차이는 그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이 어디인지를 보여줍니다. 미국은 불안해서 '팩트(답)'를 찾고, 일본은 답답해서 '교훈(길)'을 찾으며, 한국은 외로워서 '사랑(품)'을 찾습니다.


우리가 켜는 TV 화면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 부족한 영양소를 공급받기 위해 매일 밤 삼키는 알록달록한 비타민 한 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당신이 고른 드라마는, 당신의 어떤 허기를 채워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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