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실수-003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말실수를 수시로 저지르게 된다.
그중에서도 내 인생 가장 아찔했던 입방정의 기억은 20년도 더 된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내게 강의를 하던 한 교수님은 지각이 아주 일상인 분이셨다. 적게는 5분, 많게는 10분씩 늦는 것이 기본값(?)이었다. 사건이 터진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수업 시작 시간이 지나고 마지노선인 10분을 넘기자, 인내심이 바닥난 친구들은 '오늘 휴강인가 보다'라며 하나둘 강의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유독 행동이 굼떴다. 어저부저 가방을 싸고 짐을 챙기느라 텅 빈 강의실에 3분 정도 더 홀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강의실 앞문이 열리며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텅 빈 객석을 마주한 교수님의 표정은 황당함 그 자체였고, 교수님과 단둘이 남겨진 내 표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멋쩍은 침묵이 흐르던 중, 교수님이 허탈한 표정으로 혀를 차며 혼잣말을 툭 내뱉으셨다.
"이놈들 안되겠네."
보통의 상식을 가진 학생이라면, 아니 눈치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는 인간이라면 그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 찰나의 순간, 내 입은 뇌를 거치는 통제 과정을 생략한 채 독자적인 생명력을 얻어버렸다.
"교수님도 많이 늦으시잖아요."
순간 강의실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나의 당돌한 팩트 폭력에 교수님은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그리고 아주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돌려주셨다.
"너 안되겠구나."
그 짧은 문장이 귀에 꽂히는 순간,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서면서 직감했다. 아, 완벽하게 ㅈ됐구나.
그 직후 내가 다급하게 내뱉은 말들은 변명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그저 비겁하고 궁색한 아무말 대잔치였다. 어떻게든 그 위기를 모면해 보려 침을 튀겼지만, 이미 강을 건너버린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