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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범 Jul 21. 2024

이제는 사라진 TV소설

사라진 장르에 남은 감성의 흔적 

TV소설은 한국 대중문화에서 신파의 전통을 이어받아 독특한 형태로 발전시킨 장르였습니다. 1980년대부터 2018년까지 약 40년간 방영되며 많은 이들의 아침을 함께했던 이 드라마 시리즈는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았지만, 그 안에 깃든 신파적 요소들은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신파의 주요 특징인 '운명론적 세계관'은 TV소설에서도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주인공들은 대개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거나 예기치 못한 시련을 겪지만, 이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묵묵히 견뎌내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여로'의 주인공 분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캐릭터 설정입니다.


TV소설은 신파극의 또 다른 특징인 '과장된 감정 표현'을 일상적인 형태로 변형시켰습니다. 매일 아침 방영되는 드라마의 특성상, 지나치게 극적인 전개는 피하면서도 시청자들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섬세한 연출 방식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는 신파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일상성을 가미한 독특한 형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TV소설이 주로 다룬 20세기 중후반의 시대 배경 역시 신파적 요소를 강화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산업화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며, 이는 전통적인 신파극의 설정과 맥을 같이 합니다.


그러나 TV소설은 단순히 신파의 요소를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일상의 맥락에 녹여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극단적인 비극이나 과도한 감정 표현 대신, 소소한 일상 속 갈등과 화해를 통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2018년 '파도야 파도야'를 끝으로 TV소설이 막을 내린 것은 한국 대중문화에서 신파적 요소가 차지하는 위치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변화, 시청자들의 취향 변화, 그리고 무엇보다 신파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반영합니다.


현대의 한국인들은 운명론적 세계관이나 과장된 감정 표현보다는 현실적이고 다양한 서사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노력과 선택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자리 잡으면서, 주인공의 수동적인 인내와 희생을 미화하는 신파적 요소들은 점차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결국 TV소설의 사라짐은 한국 대중문화가 성숙해가는 과정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앞으로의 한국 대중문화는 과거의 신파적 요소에서 벗어나, 더욱 다양하고 깊이 있는 서사와 감정 표현을 추구해 나갈 것입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발전과 한국인의 정서적 성숙을 반영하는 긍정적인 변화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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