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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ka GG Apr 29. 2020

직장을 관뒀다, 몽골에 갔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아, 홉스골에 있지

| 직장을 관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면 좋겠어"


모든 걸 잠시 내려놓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쉼 없이 일한 나에게도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온 것이다.


사회생활 시작 후, 공식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숙박업에 뛰어든 적이 있다.

당시 공유경제의 혁신 혹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에어비앤비라는 플랫폼에서 무려 10개의 방을 운영했다. 그것도 혼자서. 그렇게 열 달 동안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삶을 살았다.


멀쩡한 회사를 다니다 웬 숙박업인가..?

지금 생각해 보면 과연 멀쩡한 회사였는지 의문이 들지만, 뜬금없이 직장생활을 하다 숙박업을 시작하게 된 건 아니다.


이전에 숙박업과 관련한 스타트업에서 스타팅 멤버로 잠시 몸담은 적이 있었다. 잠시나마 그 일을 하며 몰입의 희열이 어떤 것인지 느껴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쓰디쓴 실패를 안겨줬다.

그럼에도 그 경험이 다시 숙박업을 시작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운영하던 객실. 사진은 모두 직접 촬영했다.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예약 관리와 청소에 매여있어야 하니 지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위치가 좋았던 덕인지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며 자리를 잡았고, 성수기가 아닌 때에도 모든 방이 쉴 틈 없이 손님들로 가득했다.


돈이 벌리는 걸 보며 잠시 동안은 즐거웠다. 그리고 한 달, 열 달이 되면서 점점 심신이 지쳐갔다.

휴일도 없이, 사람들과의 만남도 없이 기계처럼 일하다 보니 몸과 마음의 상태는 극에 달하고 만다. 보다 못한 부모님도 "이제 이 일은 그만두는 게 좋겠다."라고 말씀하신다.


결국 1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된다. 시작과 맺음의 기준이 꼭 1년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고, 앞으로 또 어떤 일을 찾아 나서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바닥을 치면 다시 올라가는 게 삶의 순리라지만, 굳이 나를 바닥까지 떨어지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모든 걸 멈추고 쉼표를 찍기로 했다. 여행.

홉스골 호수의 텅 빈 풍경

일을 그만 두기로 결심하고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럴 에너지도 없었다.

그야말로 힐링, 치유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저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조용한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터닝포인트를 만들기 위해 꼭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건지 스스로에 대한 물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결국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이름도 생소한 몽골의 호수 홉스골로.



| 홉스골에 갔다

몽골이라는 나라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는데, 그중 사막도 초원도 아닌 북쪽의 호수로 떠나게 된 건 친구 때문이었다.

대학교 4년을 꼬박 같이 보낸 친구. 같은 전공 그리고 전공 동아리까지 같이 하며 지겹도록 보고 지낸 사이다. 사실 이 친구와 이렇게 둘이 여행을 가게 될 줄은 몰랐다. 가까웠던 만큼 부딪힘도 있었던 터라 혹시나 둘이 떠나는 여행이 어색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잠시 했으니까.

이 친구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보통 대학교 때 미주나 유럽으로 어학연수를 가는 편인데, 어떻게 찾았는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에 있는 대학교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그리고 그때 사귄 현지 친구들과 지금도 연이 이어지고 있어 여행중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낯선 여행지를 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결국 이 친구가 아니었으면 가보지 않았을 곳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친구와 둘이 비자를 따로 받아야 하는 수고를 감수하고 태고의 자연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세계에서 손꼽는 청정지역이라는 홉스골로 떠났다.  


먼지마저도 깨끗할 것 같은 이곳에서 잠시 지내다 보면 내 몸도 마음도 조금은 맑아지지 않을까 했다.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치유의 시간을 선사한 홉스골에서의 일주일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되었다.


홉스골로 가는 길


홉스골 까지는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도착할 수 있다.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비행기로 2시간 이동하여 몽골 북부 도시 무릉에 도착하면, 다시 차로 허허벌판을 3시간 정도 달려야 한다. 그러면 겨우 홉스골 호수 초입 하트갈이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또다시 차로 1시간을 가야 호수 중심부에 닿을 수 있다.


이미 반나절을 이동하는데 시간을 보내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어 하트갈에서 하루 머물기로 했다. 중심부인 장하이에는 다음날 출발하기로 하고, 자동차 대신 말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몽골 현지인의 방식대로 한 번!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 때는 육체노동이 답이라 했던가.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도 편한 길을 놔두고 말을 타기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홉스골로 가는 길
우리를 인도한 바야르 아저씨가 실제로 살고 있던 게르에 잠시 들렀다


다음날 아침 짐을 꾸리고 홉스골 중심부로 향했다.

비현실적으로 푸르른 들판과 붓으로 칠해놓은 듯한 파란 하늘. 그곳을 지나치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들썩들썩 움직이는 안장 위에서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나가는 기분이랄까.     

헤어 나올 수 없는 풍경 감상도 잠시, 5시간 말을 타고 이동하는 건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딱딱한 안장에 앉아가야 해서 장시간 이동에 가장 편안해야 할 몸이 불편했고, 중간에 예상치 못한 비를 만나 온몸이 흠뻑 젖으며 두 배는 더 힘들었다. 그렇게 홉스골에 도착해 말에서 내렸을 때는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욱신욱신했다.

 

 

드디어 5시간의 대장정 끝에 홉스골 호수 중심부에 도착했다. 궂은 날씨에 호수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몰려오는 피곤함에 불평할 시간도 없이 잠들어버렸다.

자고 일어나 다음날 게르 문을 열고 나가니 상상하던 그 이상의 은빛 호수가 눈앞에 펼쳐졌다.


"드디어 홉스골에 왔구나!" 


호수 뒤로는 8월에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인 산봉우리가 계절을 초월하는 풍경을 선사했다. 

여기까지 찾아오는 데 드는 수고스러움을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을 풍경이었다. 

 

가는 길이 고되긴 했어도 오롯이 쉼을 위해 찾아간 홉스골 호수는 정령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애써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포토존을 찾아 나설 필요도, 패셔니스타가 돼야 할 일도 없다.

호숫가에서 바로 씻어 쪄먹는 감자의 맛은 비할 것이 없고,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이 담긴다. 옷은 8월에도 쌀쌀한 추위를 버틸 외투면 충분하다.

왜냐하면 여긴 예쁜옷을 입은 나를 뽐내는 곳도, 식도락이 있는 곳도 그 어디도 아닌 자연이 품고 있는 쉼터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 좋았다.


풍경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고는 없다. 길가엔 가로등 조차 없으니까. 덕분에 밤이면 반짝이는 모든 행성이 빼곡하게 채운 밤하늘이 펼쳐진다. '이게 우주구나!' 그리고 그중에 아주 작은 점일 뿐인 나를 생각하니 너무 애쓰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스친다.  


모든 반짝이는 것이 별이다

    

홉스골에서의 하루는 그저 한량처럼 거닐다 때가 되면 끼니를 챙겨 먹고, 호숫가에 잠시 발도 담근다. 그리고 추워지지 않게 게르 안 화로에 불을 지피다 보면 어느새 저녁 무렵이다. 그러다 깜깜한 밤이 찾아오면 고개를 들어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가 마무리된다.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 게르 안 장작을 때는 화로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수시로 살피는 것!

 

별것 없이 지나가는 하루가 주는 힐링. 이런게 행복이구나!


인터넷이 안 되는 세상이 상상이나 가능할까 했지만, 와이파이는 고사하고 전기마저도 발전기를 돌려 2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곳에서 신기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느린듯 빠르게 하루가 지나가고, 해질 무렵이면 하루가 끝나가는 게 아쉽기까지 했다.


10개월 동안 고된 노동으로 지새우고 찾아온 홉스골은 그야말로 힐링캠프였다.

물질적 풍요 속에도 마음의 빈곤을 앉고 살아가는 팍팍한 요즘 세상. 그곳과 정 반대인 곳이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홉스골에서의 일주일이라 말할 것 같다.

 


'지금까지 쉼을 찾아 떠난 여행이 있었나?'

여행은 하루를 바쁘게 돌아다니며 적어둔 버킷리스트를 지워나가는 게 답이라 생각했다.

홉스골에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홉스골에서 보낸 일주일은 나의 여행에 대한 정의를 완전히 바꾸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쉬엄쉬엄 하루를 보내며 지쳐있던 몸과 무거웠던 마음을 내려놓고 일상을 보내는 법을 알려줬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멍 때리는 시간도 아깝지 않은 곳.

밤이면 셀 수 없는 밤하늘의 별을 눈에 담고, 다음날 다시 일나 잠자리에 들기까지 별것 없는 하루의 움직임이 오롯이 힐링이 되는 곳.


자연의 색체에 함께 물들어 가는 여행은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긴 여운과 잔상을 남긴다.

요즘도 지치고 힘든 날이면 하늘과 구름, 호수가 전부였던 홉스골의 텅 빈 풍경이 생각난다.

그리고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온 그 풍경들이 문득 찾아오는 삶의 공허함을 버티는 힘이 되기도 한다.


지금이 버거 모든 이들에게 홉스골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살면서 한 번쯤은 홉스골에 가보라고. 그리고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비우면 또 채워지는 시간이 될 거라고.  


다시 한 번 일상에 쉼표를 찍어야 할 때가 온다면 홉스골에 가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 아닌 약속을 했다.

그리고 지금 3년 하고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 어딘가 홉스골을 닮아 있는 제주에서 살고 있다.     

예상치도 못한 바이러스 창궐의 시대를 맞이하며 지금 하는 일에 직격타를 맞았다. 상당수의 인력이 정리되고, 남은 인력은 일당백 이상을 하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홉스골에 다시 갈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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