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유실험

순간과 기다림

좋아하는 건 순간이고 잊는 것은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by PanDora

좋아한다는 건?

찰나의 시간에 나의 많은 에너지가 한 번에 흘러넘쳐 외부로 발산되는 감정.

그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지 얼만큼의 내 몸속의 에너지가 집중되고

그 대상을 향해서 표출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게 되는 건 나의 의지와 관계없고, 많은 시간을 또한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내 감정이 그것에 대한 생각과 느낌으로 충만한 순간 만들어지는

감정이다.

좋아한다는 건?

아주 긴 터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우연히 보이는 모습과

향기에 이끌려, 마음이 저절로 가게 되는 그런 현상인 것이다.

그건 그렇게 다가온다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나의 가슴에 바로 다가온다.

어떤 절차도 필요 없으며, 어떤 물리적 공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지 나의

몸안의 에너지가 압축되고, 더 이상 압축되지 못하고 밖으로 표출될 때의 감정

그게 그것인 것이다.

좋아한다는 건?

찰나 찰나의 순간이 맺어져 영원을 이루듯이, 그건 바로 넘치는 에너지들의 찰나

들이 맺어져 영원을 만들어 낸다. 그건 분출되는 에너지는 순간의 찰나 일지 모르지만

서로 그 찰나의 시간이 이어져 영원이라는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건 아주 짧은 시간을 이어낸 영원이라는 시간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건 순간인 것이다.


순간에 그건 생겨나고 그 순간이 이어져 영원으로 갈 것만 같다. 그러나 그건 단지 순간에

불과하다. 그 순간들이 계속되어 가면서 시간을 써내려 가고 공간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건 순간의 감정이다.


잊는다는 건?

기다림이다. 쌓아왔던 많은 순간들을 기다림이라는 지루함으로 덮여 쌓아 간다. 그 기억들을

지우는 게 아니라. 물감 위에 새로운 물감을 덧 씌우듯 다시 덮어간다. 그러나 그 순간의 기억들은

그대로 모양대로 존재한다. 단지 거기에 새로운 감정의 물감을 덧 씌운다. 그건 그렇게 지우는 게

아니라 변화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셀 수 없는 많은 물감을 덧 씌워야 한다.

순간 일어났던 감정들과, 그 존재감을 변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잊는다는 건?

무엇을 지우는 게 아니다. 끝없는 시간의 기다림 속에서 그 존재감을 나의 감정에서 밀어내는 것.

그건 끝나지 않을 지루한 작업과도 같다. 그러나 그 속에서 아픔이 존재한다. 그 순간을 밀어내기

위해 자신을 가변 해야 한다. 물감을 덧 씌울수록 스스로의 감정에 상처를 도려 내야 한다. 그래야

그 순간의 존재에 자신의 다른 색깔을 덧 씌우기 편하니까.

그건 어쩌면 순간의 기억과 감정을 의도적으로 변화시키고, 좋아하는 감정을 희미하게 만들어

스스로가 그 굴레에서 고통이라는 감정과, 미움이라는 감정을 생성해내기 위함일지 모른다.


잊는다는 건?

많은 찰나의 순간들을 하나하나 꿰맞춰 한 줄의 철 지나고 빛바랜 구슬 목걸이로 만드는 것과 같다.

구슬 목걸이 하나하나를 퇴색시키고, 그 아름다움을 없애서 더 이상 구슬 목걸이가 빛나지 않을 때

까지 만드는 것처럼, 그 좋은 감정들을 하나하나 뒤틀고 변형시켜 추하게 만들어 더 이상은 떠오르지

않게 만드는 것, 잊는다는 건 지우는 게 아니라 영원한 기다림 속에서 퇴색과 변화를 주는 것이다.


나는 끝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단지 그 순간들을 퇴색시켜 내 기억의 가공의 정보를 집어넣어 단지

꺼내지 않고, 지저분한 창고 한쪽에 아무도 찾아보지 않을 구석으로 밀어낼 것이다. 그렇게 잊는다는 건?

이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게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괴로워할 것이고, 점차 가공되어지고 빛바래지는 생각들 속에서

후회를 하며 살 것이다. 그래도 그 작업이 끝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기다림의 영겁 속에서 나올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하나의 순간과 기다림이 교차해 가면서 시간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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