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유실험

2. 대한민국 진보와 보수의 이념화

진보와 보수는 시대의 색깔로 다가온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이념 주

by PanDora

1) 지금 우리는 진보 보수를 가장한 극단의 이념 주의자들에게 포위되어있다.

지금 나는 진보와 보수가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와 보수라는 철학적 가치를 자신들의 권력과 이념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사회는 엉뚱하게도 이념전쟁이라는 틀속으로 빠져 들었고 그들은 진보와 보수에 이념의 껍데기를 씌우고 정쟁의 도구로, 선악의 대결로 만들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했다. 나는 민중과 대중을 우롱한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 나에게 '네가 잘났니?' 물어보면 그렇지는 않다. 나도 살아오면서 많은 잘못을 했고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삶을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피해나 문제에 대해서 최소화하려고 노력을 해왔다. 내가 이야기하는 자들은 구성원과 사회의 안녕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써의 위임된 권력을, 수단이 아닌 권력의 쟁취를 목적으로 삼는 자 들이다. 그들은 권력을 활용해 주변의 사람과 대중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데도, 반대로 대중을 이용해 권력을 지키고 권력의 사용은 개인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만 사용한다. 특히 현재 정권을 잡은 세력인 진보는 정도가 심하기에 그들에 대한 비난의 글을 쓴다. 그리고 2017년 이후 대한민국 사회가 진보와 보수라는 틀속에 갇혀서 헤매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의 자한당이나 대한 애국당 그 외 태극기 등의 극우적인 색깔을 가진 자들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비난이나 평가조차 필요치 않은 사람들이다. 사회에 있어서 악한 존재로 평가될 뿐 그들에게는 평가자체가 낭비이다. 그들에게는 비난이나 평가를 통한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한 줌의 가치도 없는 그들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가치를 부여하고 사회에서 위치를 부여하는 것과 같다. 지금 대한민국 내에서 극우의 세력들을 보수로 만들고 유지시키는 집단은 오히려 지금의 집권세력이다. 그들을 변화시키고 올바르게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집권세력들의 전략인 진보 보수 대결을 타파해야 한다. 지금의 집권세력들은 그들을 보수로 규정하고 그들의 과거 행위를 대결구도로 삼아 자신들의 이익과 우의를 점하는 형태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현재 사회 형태를 진보와 보수의 이념 전쟁처럼 보이게 하는 현정권과, 흐름에 발맞추고 있는 보수라고 자칭하는 자들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누구도 과거 이명박근혜 시절과 전두환 노태우 및 박정희 정권을 보수라고 지칭하지 않는다. 그건 단지 색깔을 가지고 싶었던 과거의 권력자들이 자신들을 보수라는 색깔로 치장을 했을 뿐, 그들을 진정한 보수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진보 또한 과거 독재의 그늘 속에서 그나마 고등교육을 받고 지식을 습득했던 민중들 중, 일부의 엘리트들이 오랜 세월 동안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 지금의 권력을 형성하고 정권을 차지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진보라는 타이틀을 만들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가 본래 가지고 있는 역할을 잃어버렸다. 특히 진보라고 자신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이념의 선긋기로 인해, 진보와 보수는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을 유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지금의 정권을 만들어낸 과거의 민주세력이라고 불리는 그룹들과, 처음에는 국민을 행복하게 그리고 사회를 평등하게 더 이상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써 활용되었던 권력을, 이제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단지 손에쥔 정권을 놓기 싫어하는 세력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방법은 사회에 진보와 보수라는 선악을 만들어 놓고 마치 게임하듯 이념을 대리로 내세워 싸움을 벌이면서, 진보가 보수의 과거 악행을 심판하는 적페 청산을 무기로 하고 있다. 오래된 권선징악을 이용해 사회에서 우의를 차지하고 정권을 유지하는 원동력으로 진보 보수 대결을 부추겨 이용한다.


2) 진보와 보수는 무엇인가?

진보와 보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가동된 두 개의 큰 기둥이다. 즉 인간사회에서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원동력이 되는 두 가지의 축이다. 그 축은 지금처럼 이념화되고 고정화되어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와 시대의 가치에 따라 그 역할과 기능이 변해왔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는 철학적 가치로서 사회유지와 발전을 위한 방법을 변증법적 형태로 작동한다. 상대적 개념으로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보충하는 역할을 하고, 적대적이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시너지를 창출해낸다. 진보와 보수는 사회 속에서 하나의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유동적이며 보다 나은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한 철학적 가치이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는 시대의 변화와 시기에 따라 하나의 이념이 어떤 경우는 보수가 되고 어떤 경우는 진보가 된다. 진보는 이것 보수는 이것이라고 명제를 내리기는 힘들다. 단 그 시기에 진보적 역할을 하는 이념과 보수적 역할을 하는 이념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는 양면의 동전과 같은 것이다. 서로 맞붙어 있지 않으면 존재의 가치가 떨어지고 동전으로서의 가치는 없어진다. 진보와 보수를 구분 짓는 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사물과 현상을 보는 방법의 차이와 그중에서 어떤 가치를 중시하느냐에 달려 있다. 무엇을 생각하느냐,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사고의 방법과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사물과 현상에 대해 우선적인 가치를 지키는 쪽의 가치에 충실하며, 그 시대 사회에 존재하는 이념과 방법들 중에서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 그것을 지켜나간다. 옛 명정승이던 황희 정승은 그런 보수적 가치를 충실히 이행하고 지켰던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그는 최대한 당시의 좋은 룰을 따르는 것이 자신의 최대한의 선택이었고, 좋은 것을 지켜나가는 것이 자신과 사회를 위한 올바른 선택이라고 여겼다. 만약 제도나 법의 변화가 필요해서 개정을 할 경우 그는 <자신은 임기응변에 약하니 알지 못한다.>라고 왕에게 아뢰었다. 그렇다고 아무 기준 없이 그가 지키는 것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다. 보다 더 나은 제도나 방법에 대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접고 그대로 따르기도 했다. 단지 두 개의 옳은 길이 있다면 두 갈래 중 그는 지키는 쪽의 현재의 길을 택하는 보수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30년이 넘는 정승의 생활을 했고 90살이 될 때까지 왕의 충실한 조언자로서 역할을 했다. 보수주의자의 보수라는 것은 그 시대의 명제가 자유라면 자유를 지키는 것, 그 시대의 가치가 봉건귀족이라면 계급사회를 지키는 것, 그리고 당시 시대의 가치가 자본주의라면 자본주의를 지키는 것이다. 보수란 사회에 있어서 지켜야 할 올바른 가치를 잘 판단하고 아직 시대에 남아있어야 할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와 이념을 보호하고 지켜나가는 것을 보수라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진보주의자는 사물과 현상에 대해서 당시의 방법이나 가치, 제도들이 사회의 변화에 뒤떨어졌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하게 발생하는 이념과 발달해가는 사회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올바른 방법과 제도를 찾아 변화의 가치를 행하는 것이다. 고려말 조선조의 정도전과 조선 중기의 조광조 등이 시대의 진보주의자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진보나 보수냐를 현재의 시각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당시의 시각으로 판단해야 한다. 만약 과거 사건의 내용이나 결과 그리고 역사적 판단 등을 당시의 눈이 아닌 지금의 시각으로 보는 것은 10살 때의 어릴 때의 옷을 지금 입어보고 작다고 하는 것과 같다. 즉 판단의 오류를 범하게 되고, 당시의 행동과 결과가 무엇을 말하는진 진리를 알 수 없게 된다. 과거의 옷은 과거의 나에 맞고, 지금의 나에게는 지금의 옷이 맞다는 것을 잊지 말자. 특히 진보주의자들의 가장 큰 오류는 과거의 사건들을 현재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려는 행동이다. 과거의 지난 역사적 사건이나 행동을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전혀 진보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철학적 가치와 맞지 않고 많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에 와서 사회에 형성된 유형의 계급제도란 건 있을 수 없는 사회구조이고 구 시대적 유물이지만, 과거에는 계급사회의 작은 변화가 커다란 사회변화이고 진보였다.// 당시의 정도전은 고려말 호족 사회의 페단과 문신 세력들의 향락과 부패를 보고,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구현하려는 시도를 했다. 지금의 표현으로는 이원집정부제 또는 의원내각제 형태의 정치구조이다. 왕은 대외적인 역할을 하고 모든 국내 정치는 승상이 최종 결정하고 집행하는 형태의 정치적 변화를 꾀했으나, 시대가 가지고 있던 상황보다 너무 빠르고 급진적인 형태였고, 당시 최대 권력자였던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고려를 패망시키고 호족 세력과 지방정치를 무너뜨리고 중앙집권제를 형성한 시대의 진보주의자라 할 수 있다. 특히 사회 주류 출신도 아닌 그였기에 진보의 성향이 더욱 강했을 수도 있다. 조광조는 중종반정 이후 중종이 가장 좋아했던 신하중 하나로,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하려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위훈 삭제 사건으로 공신들의 지탄을 받게 되고, 너무 빠른 정치 변화를 이끌기 위해 중종을 너무 몰아붙인 결과 중종이 이 사건을 계기로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를 사사했다. 진보는 이렇듯 사회에서 페단이 되는 이념과 제도들을 과감하게 바꾸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변화를 주는 가치이다. 사회에 주류가 되는 이념과 제도에 변화를 주어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면, 그 이념과 사상과 제도에 변화를 준다. 봉건귀족계급사회에서는 계급의 타파와 자유를 진보의 가치로, 사회주의 체제 및 왕정체제 경제 하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도입과 자유경제체제의 도입,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및 개인주의 시대에는 거꾸로 복지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중시한다. 진보라는 건 그시대 주류의 잘못된 점이나 발전이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 시대와 타협하고 더 나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찾아내서 변화를 주도해 가는 것을 진보라 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는 하나의 이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대중이나 민중이 지키는 가치를 선택하는가 아니면 변화의 가치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보수냐 진보냐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대의 이념은 진보로 시작해 보수화 되고 사회 주류로서 선택되며, 선택된 진보적 이념이나 제도는 새로운 보수로 자리 잡는다. 새로운 진보는 보수화된 과거의 진보에 대항하여 새로운 이념과 제도로 나타난다. 진보와 보수는 그 안에 선이냐 악이냐를 내포하고 있지 않다. 선과 악은 진보냐 보수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진보와 보수는 사회의 철학으로서 선악으로 표현될 수 있는 내용물을 가지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는 사물과 현상에 대해 선택과 결정의 행동 방법 중에 어떤 가치를 중시하느냐에 따라 정리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번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찾았다는 낙태 중지 법에 헌법불합치의 경우, 나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도 중요하지만 그에 반해 타인의 생명에 대해 훼손하지 않고 존중할 의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의 낙태 중지에 대한 헌법불합치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찬성하는 쪽을 내가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반대로 찬성 쪽에서 나를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반대의 이유가 단순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미워서 그래선 안되라고 반대하거나, 태아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반대하거나 단순한 나의 이기에 의해 반대한다면, 그건 선악의 문제로 나는 악한 사람이 되고 사회에서 말하는 쓰레기가 된다. 그러나 보수의 가치로서 지키는 생명 존중이 나는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정당하게 보수적 관점에서 옳은 행동을 했다고 본다.

지금까지 사회적 관점에서 철학적 의미의 진보와 보수가 가지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런 흐름과 변화가 변증법적 논리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진보와 보수는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 선악이라는 구분을 지을 수 없다. 단지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어떤 가치에 중심을 두고 생각을 하며, 그에 따라 자신이 선택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다.


3) 대한민국의 진보와 보수의 이념화 과정.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당시는 2차 대전이 끝나고 세계는 두 개의 거대 세력이 주도하는 시기이다. 두 개의 세력은 경제 분야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 형태로 양분화되는 과정에 있었고, 대한민국이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는 과정에 두 세력의 영향을 받았다. 남쪽은 미국 및 서유럽의 영향으로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경제적으로 자본주의를 받아들였으며, 북쪽은 구소련 연방과 중국 및 동유럽권의 영향으로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를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작은 이 땅에는, 땅의 주인인 국민들과 민중들의 의지와는 반대로 두 개의 체계가 들어서 분단 이라는 최악의 형태로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두 세력간의 대리전쟁이 1950년 6월 25일 발발했으며, 돌이킬 수 없는 동족간의 대결이후 지금까지 서로 다른 체제로서 유지되고 발전해왔다. 결과적으로 남쪽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1980년 이후 급성장하게 되어 세계 11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했다. 반대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1980년 페레스트로이카를 기점으로, 종주국인 구소련 연방이 붕괴 하면서 러시아와 민족 중심의 소국가로 분열 되었고, 이후 서독중심의 독일 통일 등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의 정치제도는 급속도로 몰락 하였다. 그러나 북은 아직까지 꾸준히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단, 북한은 완전한 사회주의가 아닌 독재세습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제도이다.> 현재는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과 세계에서 몇 안남은 사회주의 제도를 유지하는 국가중 하나이다. 그러나 베트남 및 중국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도 경제제도는 경제발전과 국가 유지를 위해 자본주의 경제제도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북은 경제제도에서도 유일하게 공산주의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 몇년사이에는 정부주도의 경제발전에서 민간및 자본중심의 경제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나, 여전히 경제중심에서 발전을위한 견인 역할은 국가가 담당하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제도를 받아들여 사회구조화 했고, 두 국가는 대칭 구조의 경제와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다. 현 상황에서 남쪽은 경제적으로는 외형상 만족할 만한 형태를 갖추었으며, 2018년을 기점으로 선진국의 지표가 되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0,000$를 넘어서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됐다.

남쪽인 대한민국이 지금의 경제발전과 실질적인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갖춘고 시행하게된 시점은, 실상 1987년 6월 10일 항쟁이후 30년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의 패망후 광복을 맞이하고 남쪽에는 미국을 중심으로한 연합군 및 서방 세력의 지원으로 민주주의 정치가 시작됐으며,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제1대 국회의원이 선출되고, 이후 당해 7월 17일 헌법이 제정되고 공포되었다. 최초 제정헌법에는 3권분립과 단원제국회 그리고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조항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후 6.25사변이 끝나고 1952년 1차 개헌을 통해 대통령직선제와 의원내각제 및 국회양원제도가 실행 되었다. 그러나 부정선거를 기점으로 4.19민주항쟁이 일어나고 이승만의 하야와 윤보선대통령의 당선 후, 군사쿠데타인 5.16이 발생하면서 군부정권인 박정희 정권의 독재 장기집권시작 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로 16년간의 독재가 막을 내렸다. 10.26사태 이후 최규화 부통령이 대통령 대행을 했는데, 이듬해 1980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비상계엄 및 특별조치등을 통해 당시 최규화 대통령을 하야 시키고 신군부정권을 부활 시켰다. 박정희 독재정권 이후의 전두환 신군부정권에 맞서 민주진영의 지속적인 저항과 투쟁으로, 1987년 6.10항쟁이 발생하고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하고 국회의원 또한 정당한 지역구 투표를 통해서 선출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역사를 보면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사회에 안착되고 진행된 것은 1987년 이후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전의 이승만 정권 이후는 민주주의 형태를 띈 정치구조이기는 했으나, 해방이후 급하게 재편된 국내 정치는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들과 당시 해방에 관여했던 미국 및 구소련의 지원을 받은 국내 일부 이념주의자들이 주도했다. 5.16군사 쿠데타이후에는 박정희 군부정권이 독재를 했고 10.26사태이후 12.12를 거치면서 신군부인 전두환 정권이 국내 정치의 권력을 가져갔다. 6.29선언이후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실현이 가능해 졌으나, 당시 민주 저항세력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두 지도자의 분열로 그 시기는 5년이라는 유예기간이 발생했다. 그러나 87년 이후의 정치는 국내역사상 해방이후 처음 맞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가동이었다. 그 동안의 민주주의를 가장한 국내정치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되는 선거제도의 파행과 권력자들의 부정부패 및 암울한 흑역사로 얼룩져 있다. 6.10항쟁을 통해 군부정권의 퇴진과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시작되었고, 이때를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한 정치제도의 시작과 정치기능이 가능해졌다. 정당은 정치를 위해 조직개편되었고 정당정치를 통해 대의 정치가 시작되었으며, 주권자인 국민들의 선택에 의해 국가의 지도자를 뽑을 수 있는 제도가 시작되었다. 오늘날의 국회와 행정부 사법부의 독립적인 기능과 역할은, 87년 범국민적인 저항을 통해 이루어낸 성과이다.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대한민국에 사회에 적용되고 시행된 기간은 불과 30년으로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이런 특수했던 해방이후 정치지형과 사회환경이 대한민국 사회 이념의 기본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내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중요한 사회 철학은 민주주의 시행이 오래된 다른 국가와는 다른 형태와 색깔을 가진다.

긴 세월 독재의 기간과 정치지형의 기형으로 인한 결과로, 사회속에서 건전하게 형성 되어야 할 진보와 보수 세력또한 다른 국가와는 다르게 발달하고 형성되었다. 독재는 결국 독재에 대항하하는 세력을 양산했다. 그리고 독재정권은 자신들을 독재정권이라 이야기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야 말로 진정한 민주정권이고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권이라고 홍보하고 말한다. 결국 사회의 주류세력인 독재정권이 주류세력으로 있으면서 보수라는 형태로 불리게 됐다. 그러나 독재는 어떤 이념이나 철학도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독재정권의 이념이나 철학은 독재자의 개인 성향이고 독재자가 가지는 생각일 뿐이지, 그가 권력을 잡고 사회를 흔든다고 보수라 불러서는 안된다. 당시의 정치구조는 독재를 위한 정치형태와 독재지원을 위한 조직구조이다. 보수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보수는 이런 배경을 가지고 탄생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보수적 철학을 가진 정치이념도 아니며, 사회의 대다수가 원해서 형성된 정치 조직도 아니다. 단지 권력을 목적으로 정치를 이용하고 활용했던 일부 이념주의자에 의해 사회의 주류로 형성이 되었을 뿐이다. 즉, 그들의 목적은 권력을 이용한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일뿐 그들의 결정 과정과 결과에는 보수적 가치나 진보적 가치의 철학적 기반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방이후의 민중은 삶이 고단했고 정치나 사회의 중심으로 나아가서, 정치활동과 민중을 위해 민족주의를 실현 할 수 있는 지도자가 부족했다. 특히 존경받던 김구선생님의 암살이후, 대한민국 전체를 이끌어갈 만한 민족중심의 지도자는 없었다. 해방이후 대한민국 초기 정치사회 및 경제사회의 지도층 대 다수는 일부의 지식층과 독립운동 세력들이 장악을 했다. 급조된 초기정부에는 인재 부족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일부 권력욕심을 가진 위정자들의 권력장악을 위해서, 일제강점기 시절에 지역 정치와 행정을 집행했으며, 경제력과 정치 권력을 가졌던 청산대상이던 친일파 일부의 세혁과,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던 임시정부 구성원들중 일부의 지도자들이 영합과 야합을 통해 지도층으로 올라 섰고, 해방이후 대한민국 사회 초기정부를 수립하게 되었다. 정부수립 과정에서 각 진영의 지원을 받던 세력들이 남쪽과 북쪽의 친일파와 영합하고 사회를 이끌었는데, 그들에게는 정치권력을 얻기위한 최우선 제거 대상자들로 민족의 화합을 주장했던 민족자의자들 이었으며, 초기 정부수립과정에서 우선적으로 민족주의자를 배제했다. 민족주의지도자를 제거한 두 세력은 미국을 중심으로한 친미세력과, 구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한 좌익 세력들이었으며, 서로 각자 진영의 지원을 받아 남쪽과 북쪽을 나누어 지배했다. 남쪽은 이승만 세력을 중심으로한 친미세력이 존재했으며, 북쪽은 김일성을 중시으로한 좌익 공산주의 세력이 지배했다. 당시에는 세계가 극한의 이념대립을 하고 있던 상황이다. 두 개의 거대 이념집단은 자신들의 이념과 체제의 당위성과 우수성을 홍보하면서 2차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질서 재편과정에 선두로 나서기 위한 총칼없는 전쟁을 했다. 대한민국은 남과 북이 각각의 영향을 받아 두 개의 이념집단의 대리전장으로써 이용되고 있었으며, 두 집단은 남한과 북한을 이념 경쟁을 위한 장소로 사용하였다. 그런 영향으로 남한과 북한은 다른 지역보다도 더 강한 이념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결과로 자신들의 반대되는 이념세력에 대해서는 배척하고 배제되어야할 악한 이념과 집단으로 규정하였다. 각 진영의 대립되는 이념에 대한 평가는 결국 선 악의 기준으로 상대를 악한 존재로 몰아 붙였으며, 자신들의 제도와 이념의 당위성과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거짓된 자료와 근거없는 논리로 사회에 그리고 민중에게 각인 시켰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과거의 일제강점기 기간의 역사적 단절과 해방이후의 급격한 사회변화로 남쪽과 북쪽으로 분리되고, 동족상잔의 아픔을 껶는 과정을 거치면서 각각의 사회는 서로간의 불신과 상대의 이념과 제도를 악의적으로 평가절하하고 철저한 집단 이기주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특히 남쪽은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정치사회적으로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여 시행하고 있었으나, 해방이후 초기의 정부 수립과정의 문제점과 곧바로 발생한 내전 그 이후 군사정권과 신군부를 거치면서 진정한 제도의 정착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해방이후 40년간의 불안정한 사회와 불완전한 제도가 독재라는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사회에는 많은 지식층과 고등교육을 받은 집단과 개인들이 성장하게 되었다. 성숙해진 시민사회는 독재를 민주주의의 페단으로 규정하면서 진정한 민주주의 제도와 정치시스템 구축을 위한 저항을 시작하게 됐고, 이들은 70년대 유신 정권이후 당시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여, 시민을 중심으로한 사회시스템 과 정치 제도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안착시키기 위한 운동을 주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치지형에서도 김영삼 전대통령과, 김대중 전대통령이 당시 독재정권에 맞서 조직화하고 대항하던 민주세력들이 결성되었으며, 이는 10.26사태이후 전두환 신군부정권이 들어섰을때,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일어나게 하는 사회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1987년 당시의 386세대(30대 80년대학번 60년생)들을 중심으로 한 6.10항쟁이 발생하게되고, 오랜 저항세력이었던 당시의 민주세력은 해방이후 대통령 직선제와 군부정권 청산이라는 정치적 결과를 얻게 되었다. 그 이후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근혜 를 거쳐 현 문재인 정부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과정을 보면 대한민국에 정치사에는 보수냐? 진보냐?를 가를만한 이념적 형성의 바탕이 되는 큰기둥과 역사적 사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랜 독재에 대항한 민주세력과 그것을 지키려는 정치권력이 존재할 뿐이다.

6.10 항쟁을 통한 민주세력의 승리이후 대한민국 정치사회에는 두번째의 정치적 변화가 찾아온다. 김대중 대통령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정치사에는 또하나의 변혁의 시작이 이루어 졌는데, 그것은 노동자를 중심으로한 민노당의 창설과 그외 다양한 이념을 기반으로한 정치세력들의 등장과 정치참여이다. 이 시점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치조직과 정치사회의 기본이념이 형성되는 시기이다. 노동자들과 다양한 이념과 정치세력들의 정치 참여의 원인으로는 하나로 묶여있던 반독재세력인 민주세력의 분열이 원인이 된다. 김영삼대통령 이전까지의 사회내내부의 정치세력과 재야세력들은, 군부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독재타도를위한 민주주의를 향한 하나의 가치로 뭉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구호가 <독재타도 호헌철페> 이다. 87년 이전의 정치지형의 싸움은 독재와 반독재의 형태로 진행이 되었고, 사회 기반이 되는 철학은 간단하게 군부 정권을 중심으로한 정치권력세력과 그외 재야 및 노동 통일등을 중심으로한 반독재세력인 민주세력의 대항으로 형성된 반독재 저항주의였다. 결국 두세력의 싸움은 신군부정권의 마지막인 노태우의 6.29선언으로 87개헌을 통해 막이 내렸으며, 민주세력은 새로운 정치지형에서 새로운 권력구조를 통해 정치싸움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의 문재인 정부를 만든 당시의 386세대들 또한 자신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기본이념에 충실하게 되었고, 노동운동을 중심으로한 PD세력과 민족주의 및 통일운동을 중심으로 한 NL세력으로 양분되고, 그 안에서도 주사파 및 다양한 사상을 바탕으로한 작은 집단으로 나눠지거나 재탄생 하게 되었다.

현재의 우리가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정치사회 이념의 기반은 위의 내용에 기반하여 형성되었다. 독재및 정치사회의 파행이 40년 그리고 이후 정상적인 정치 사회가 유지된것은 30년정도이다. 현재의 진보세력들은 이 역사적 사실 전체를 보고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데, 박정희 독재 40년과 신군부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보수라는 세력으로 규정지어 놓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과거 40년속에서는 독재와 저항세력이 존재할 뿐 보수의 가치는 없다. 만약 이들이 이런 논리를 편다면 독재저항세력 속에는 보수주의자난 민족주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과연 독재저항세력 중에는 진보주의자만 존재하는가? 세계의 어떤역사와 민족의 과거를 보더라도, 독재가 보수라고 볼만한 사건이나 과거는 없으며 보수주의자또한 독재에 저항한 사례들은 많다. 오직 진보주의자들만이 역사속에서 과거의 불합리한 정권과 맞서싸웠다는 논리를 펴는것이 지금 대한민국 진보세력들에게 중요하게 작용한다. 물론 지금의 자유한국당이나 과거 한나라당 새누리당의 계보가, 박정희 이후 의 신 군부정권과 그리고 당시 3당 야합을 통한 정권을 창출했던 김영삼 전대통령까지를 자신들의 정치 역사적 사실로 규정하고는 있다. 여기서 김영삼 정권은 과거 독재 세력에 저항했던 세력으로서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나머지 세력들에 대한 정치이념및 사회 철학의 계승은 그들이 정치적 우의를 차지하기위한 방법의 하나로 전략적 선택을 한것이다. 특히 박정희 독재정권 권력자들과 당시의 추종세력들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을 했다. 정치공학적 관계에서 현재의 진보가 김영삼 대통령이후 나머지 세력들의 총합을 이야기 한다면, 보수는 자연스레 그 나머지 세력들이 된다. 그리고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서 진보는 사회의 보수 세력력들에게 역으로 색깔론을 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보수세력을 독재정권세력과 그리고 신군부 정치세력을 묶어서 악한 존재로 만들어 냈다. 그것이 진보세력들이 정치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고, 이후 장기적으로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 안보중심의 사회에서는 지금의 진보를 주사파 및 좌익등 빨간색의 색깔론으로 사회의 불안한 세력으로 규정하고 배제하였다. 그러나 과거 정치세력들 특히 독재정권과 신군부 세력들이 역사적오류을 범했고, 정당한 정치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 이상 그런논리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재정권과 신 군부에 저항했던 세력들중 일부는 분명히 사회 보수세력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87년 이후에 민주세력들의 분화로 주류를 차지하던 진보주의 정권의 주류들은 진보정권의 창출과 자리매김을 위해 보수저항세력을 과거의 독재정권과 묶어서 양분화 했다. 그리고 이후 김대중 전대통령과 노무현 전대통령을 통해 진보정권을 창출했으나, 대한민국 내부의 경제악화와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그들이 보수라고 규정지어 놓은 세력들에게 정권을 빼앗겼다. 이명박근혜정권이 다시 대한민국 정치 권력을 장악하게 됐다. 그러나 그 과정은 대외적인 요인도 있었으나 집권세력이었던 진보정권의 내부 분열 사태와 실정등이 사회에 불안요소로서 민중과 대중의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실정이 사회에서는 과거의 독재자인 박정희 향수를 불러들였으며, 박근혜정권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보수와 진보가 존재하는 정치 사회구조가 아니다. 진보라고 자칭하는 세력들이 오히려 보수적 관점과 오래된 정치이념을 가지고 사회를 지탱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보수라 지칭하는 세력들 대부분은 보수의 가치보다는 과거 독재의 향수에 젖어있거나, 진보세력들의 실정에 의해 중간에서 분리해 나온 세력들이다. 지키는 가치를 선택하는 보수와 변화를 통한 사회발전을 꾀하는 진보는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격동과 변동의 시기가 지나면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정치세력과 변화의 가치를 중시하는 진보세력이 만들어 질 것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가 보수와 진보라 칭하는 세력들의 본질은 독재와 독재저항세력의 중심으로 봐야할 것이다. 여기서 잘못된 이념과 가치를 규정함으로써 누군가는 정치 사회에서 이익을 얻기 위하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라고 나누어 놓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보다 더 진보와 보수의 중요한 가치들을 이해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우리 사회는 편향된 가치를 중심으로 작동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는 서로의 보완적인 관계이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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