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유실험

3. 좌파/우파 진보/보수 기준 없는 구분

어떤 이념이나 가치를 구분하는 기준은 그 가치가 가지는 본질에 있다.

by PanDora

1) 대한민국 사회에서 구분되는 이념과 가치들은 어떤 것이 있으며, 기준은 무엇일까?

좌파/우파 아직도 신문이나 정치권에서 많이 오르내리는 단어들이다. 대한민국에선 좌파/우파에 대한 분류를 진보/보수로 나누어 바라본다. 명칭 또한 진보좌파, 우파보수라고 붙이고 당연하듯 부른다. 대한민국 내부에서는 진보는 전부 좌파 그리고 보수는 전부 우파로 치부하고 있다. 이런 구분이나 호칭은 맞는 것일까? 우선 좌파와 우파로 부르게 된 계기와 좌파 우파의 시초가 된 사건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면,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 내부 정치구조의 형태와 관련이 있다. 프랑스혁명 이후 국민의회에서 의장의 왼쪽에는 급진 개혁을 주장하는 공화파, 오른쪽에는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고 왕정체제를 지키자는 왕당파가 앉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사회에서 급진 개혁이나 변화를 주장하는 세력을 좌파,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고 현재의 질서를 지키자고 주장하는 세력을 우파라 부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19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왕정과 귀족 중심의 계급주의 사회 내부에 계급제도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을 통한 자본의 변화가 기존 귀족 중심의 계급 구조로부터 변화를 이끌었으며, 귀족 중심의 계급주의 사회는 1차 2차 산업혁명에 의한 자본세력의 등장과, 경제성장을 중심으로 발달한 국가 간 지역 간의 무역 및 상거래업을 했던 상업가들의 약진으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귀족 중심 계급사회가 붕괴하고,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의 식민시대의 종말 등과 함께 세계에는 다양한 이념과 사상 철학이 발생하게 되었다. 시대의 다양한 이데올로기는 당시 지역 경제의 중심이 되었던 자본가들과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및 새로운 신진세력들과의 결합을 통해 사회내부로 침투하였으며, 정치참여를 통해 새로운 사회와 구조를 만들어 냈다. 특히 신진 자본가들은 산업혁명과 전쟁을 거치면서 거대 자본으로 변화하였고,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상류계급으로서 사회 내부의 중심세력으로 자라났다. 산업혁명과 전쟁이라는 두 가지 요인은 왕정 귀족 중심 사회구조를 가졌던 유럽의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면서, 다양한 이념과 이데올로기들이 등장하게 되는 바탕이 되었다. 특히 산업혁명으로 인한 공급 과잉으로 세계는 경제대공황에 빠져들었고, 국제사회는 고도의 인플레이 현상으로 국가와 사회 내부에서는 빈부 격차가 심화되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경제 문제가 정치의 변화를 주도하게 되었다.


기존 사회구조의 변화는 산업혁명을 통한 새로운 자본가들의 등장으로 인해, 극단적인 계급주의 형태인 무산계급(프로레타리아)과 유산계급(부르주아)으로 분리가 되었다. 이들 자본계급의 주체는 산업혁명을 통한 신진 세력과, 기존에 토지 및 영토를 가지고 있던 귀족들이었다. 과거 왕정과 귀족중심의 신분제도는 붕괴 되었으나 과거 귀족들은 지배의 형태를 지주에서 자본으로 변화시키고 사회의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진입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태동의 배경에는 자본가들의 경제에 대한 독점으로 인한 경제 불균형에 대항하기 위한 조직으로, 노동자들의 연합을 중심으로 한 급진 혁명세력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들은 무산계급혁명을(공산주의 혁명) 통해 반자본주의 경제를 지향하고, 자본의 공동소유 및 공동생산을 기반으로 사회구성원 전체가 국가라는 시스템을 공유하는 이상적인 국가시스템인 공산주의 국가 시스템을 추구했다. 당시의 유럽은 산업혁명과 식민지개발을 통해 자본을 활용한 사회 시스템을 움직이는 시장경졔를 추구했다. 자본의 집중과 생산의 독점은 자본을 독점한 유산계급(부르조아)과 노동력만을 제공할 수 있는 무산계급(프로레타리아)으로 나누어지면서, 사회내부에서는 새로운 계급구조가 만들어졌다. 자본가들은 자본 독점과 생산품의 독점을 통해 시장과 유통을 장악하고 부를 축적하였으며, 노동자들은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노동자간의 가격경쟁 속에서 끝없는 빈곤의 수레바퀴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자본주의 시장에 대해 주류경제학자들은 생산이 스스로 소비를 만든다고 역설했으며, 대책없는 과잉생산은 고도의 인플레이와 사회경제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의 일방적인 무한한 부의 축적은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라고 진단했으며, 자본의 무한축적은 곧 무산계급의 혁명을 불러올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무산계급의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는 막을 내릴것이라고 예측했고 이를 위해서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다. 산업혁명과 전쟁을 거치고 유럽의 각 국가들 내부에서는 기존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위한 혁명과 투쟁이 활발해졌다. 이는 곧 세계전체에 산업혁명을 통한 자본가들의 등장에대한 그들의 부의축적에 대항하는 반자본주의 혁명이 주를 이루었다. 혁명은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만이 아닌 파시스트및 나치즘 등의 다양한 형태의 이념과 결합하면서 이루어졌다. 자본의 대단위 집중은 대부분 노동자였던 시민들을 반자본주의 이념에 모이게 하는 모티브를 제공하였으며, 그 형태는 각 국가별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당시에는 반 자본주의 이념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만을 표방하지는 않았다. 2차 대전의 원인인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과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즘 또한, 자본의 패악을 이용한 포퓰리즘 정책과 노동자들의 분노를 이용한 무력을 통해 사회시스템을 바꾸었고, 이 분노를 그대로 다른 국가로 전이시켜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결과를 낳았다. 결과적으로 전쟁은 그동안 축적된 자본을 소실시키는 역할과 과거 노동자로서 자본의 지배를 받았던 시민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제외한 나머지 이념과 시스템은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기능과 역할을 다했다.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기존 자본주의 시장과 자본과 생산및 시스템을 공유하는 공산주의 시스템을 추구하는 세력으로 나누어졌다. 기존 시장질서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중심 국가에서는 급진 반자본주의 세력을 좌파라 부르게 되었고, 냉전시대에 좌파는 곧 사회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로 대표되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기존의 자본주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이를 위해 기존의 정치사회 시스템을 고수하고자 하는 자본세력에 대해서는 우파라 부르게 되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전쟁과 산업혁명으로 인해 프로레타리아(무산계급)와 부르주아(유산계급) 간의 경쟁과 대결이 심화되고,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과 레닌주의를 받아들이는 공산당원들이 급증하게 되었다. 이를 기회로 프로레타리아 혁명이 구소련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구 소련연방 공산당의 지원을 받고 프로레타리아 혁명을 일으겼으며,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를 공산주의 체제로 경제시스템과 정치구조를 변화시켰다.

2차 대전 이후 구 소련연방의 붕괴 및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할 때까지, 좌파는 미국, 영국 등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국가들로부터 자유진영의 절대적인 대항세력으로 악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다. 우파는 미국 및 서유럽을 중심으로 아시아에서는 대한민국과 일본까지를 병합한 세력으로써, 냉전시대에서 경제시스템은 자본주의를 정치 사회 시스템은 다당제 시스템의 민주주의를 선택한 국가들의 연합을 지칭하게 되었다. 80년대 냉전이 종식되기 이전까지의 좌파라는 개념은 공산당 일당체제를 가지고 있는 국가나 사회를 부르는 대명사가 되었으며, 특히 대한민국은 6.25 내전을 거치면서 남북 간의 이념적 괴리가 심해졌고, 남한에서는 북한을 악의 대명사로 홍보하고 이에 조금이라도 동조하거나 관련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를 좌파 빨갱이라고 부르면서 좌파는 사회를 분열시키는 악의 세력으로 치부되었다. 대한민국은 1990년 이전까지 대학생이나 젊은이 그리고 지식층 및 사회 엘리트들의 자유로운 사상을 억제하는 정책을 써왔으며, 조금이라도 기존의 질서에 위배되는 사상이나 생각을 비치면 국가보안법 및 다양한 법을 활용하거나, 아니면 법의 테두리 밖에서 권력을 이용하여 탄압하고 억압하여왔다.

대한민국 내에서의 좌파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반사회 집단으로써, 안정된 사회에 위협을 가하는 위험 세력으로 취급되었다. 6.25 이후 반공이라는 이념을 기반으로 한 반공산주의 및 반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관과, 자유경제를 표방한 자본주의와 무늬뿐인 민주주의를 시행하고 있었던 대한민국은, 차츰 경제의 성장과 국민들 의식 수준의 향상으로 노동운동이 시작되었고, 노동운동은 젊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자본가와 그 바탕이 되는 정치 시스템인 독재세력에 저항하는 민주주의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 후 제2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대한민국의 정치는 새로운 군부 독재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5.18 및 다양한 민주항쟁이 일어났고, 새로운 쿠데타를 통한 군의 집권은 과거와는 다르게 지식층과 엘리트층 그리고 사회 중심인 화이트 칼라들의 거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결국 1987년 6월 29일 쿠데타 세력이었던 전두환 정권의 임기말 차기 군정권의 대표였던 노태우 씨의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 다양한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는 선언으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좌파의 스펙트럼은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체제를 찬양하고 지지했던 세력부터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세력들 모두를 지칭했으며, 과거 독재정권 시대에는 좌파라고 불리는 것 자체로 사회의 이단이고 악을 전파하는 바이러스 취급을 받았다. 과거 좌파라는 의미는 지금의 좌파 진보의 의미와는 다른 내용과 이념을 가진다. 직선제 이전 좌파에는 다양한 존재들이 존재했다. 결국 사회에 중심이 되었던 독재정권 세력을 제외한 모두를 하나의 이념화 속에 집어넣고, 가장 악의적인 프레임을 활용해 좌파라고 불렀다. 물론 그중에는 주사파 및 북한의 정치시스템과 경제시스템을 동경하는 세력들도 존재했다. 그리고 이세력들 또한 당시의 민주 저항세력과 마찬가지로 독재에 저항하는 하나의 단체로서 존재했다.

87년 이전의 좌파는 대한민국 내에서 반독재체제를 지향하는 세력을 대변함과 동시에, 사회를 전복하고 정치 시스템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반사회적인 세력 또한 대변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87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시작됨과 동시에 과거 좌파의 세력은 자신들의 이념에 맞는 새로운 단체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우선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학생중심의 세력들(현재의 민주당 및 정권 중심), 경제와 노동문제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찾아가는 노조 중심의 세력(민주노총 및 정의당), 그리고 재야에서 여전히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세력으로 NGO나 다양한 사회문제를 이끌어가는 세력으로 뭉치고 다시 변화하였다. 이런 좌파의 변화는 사회에서 기존의 반사회 세력의 이미지를 점차 씻겨가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 부분에서는 기존의 정치세력을 넘을만한 힘이나 세력이 부족하였으며, 정치는 과정과 시스템이 민주화가 되었지만 정작 민주화된 시스템에서 정치를 하는 정치인은 과거의 독재정권 및 신군부 시절의 정치인들이었다. 87년 이후 독재정권과 군부정권의 퇴진 그리고 민주적 절차인 투표권의 회수 및 그동안 통제받았던 언론의 자유 확보 등은 대한민국 사회를 빠른 시간에 민주적이고 보다 높은 사회를 지향할 수 있도록 변화시켰다. 노동의 문제는 노조를 중심으로 조직화되고 다양한 권리를 찾아가기 시작했으며, 언론의 자유와 독재정권 시절 있었던 각종 규제 및 악법의 청산을 통해 시민들은 다양한 문화와 이념들을 사회 속에서 받아들이고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가장 먼저 변화하고 진보해야 할 정치만은 시스템이 변화하고 민주적 절차가 도입되었어도, 기존의 정치인들을 벗어나지 못하는 낙후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87년 이후 대선에서 김영삼, 김대중 두 명의 반독재세력의 중추들은 연합하지 못하고 각자 대선에 출마하게 되었고, 이는 결국 신군부의 후임인 노태우 정권을 탄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1992년 대선을 통해 민주정권의 하나인 문민정부가 들어섰으나, 그것은 반쪽짜리 민주정부였다. 당시 진보는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두 걸쭉한 정치인을 중심으로 양분되었으며, 이는 두 정치인의 출신지에 따라 지역주의 정치로 나누어졌다. 정권을 잡기 위한 과정에서 김영삼 정권은 당시 군부세력의 후신인 노태우 대통령 시절 여당과 통합하는 3당 합당을 결행하고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이를 두고 당시의 학생운동세력은 3당 야합이라는 비판을 했으며, 김영삼 정권의 정통성에 대해서 민주정권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우파라는 표현을 함으로써 자신들과는 다른 노선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이 되면서 당시의 70/80세대들은 민주정권 1기로서 인정하게 되었고, 이후 노무현 대통령까지를 자신들의 정통 정권으로 인정을 하고 있다.

87년 이후의 대한민국은 사회 경제 문화에서 급속도록 발전을 했으나, 정치만은 기존 정치인들의 변화와 정치세력의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며 이후에도 10년간은 민주 세력이 정권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정권을 잡으면서 정치계 또한 다양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기존의 반독재정권에 항거하던 다양한 운동가 출신들을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기회가 되었고, 이들을 차기 정치세력으로 키우는 기반을 만들어 냈다. 그들이 현재 정권을 잡은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여당인 민주당의 정치인들이다. 당시의 좌파는 결국에 현재 대한민국의 주류 정치세력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위에서 설명했듯 우리는 좌파를 진보로 분류하고, 우파를 보수로 분류한다. 진보와 보수에 대한 개념을 사회 속에서 의미를 찾아보면, 변화를 주도하고 다양성과 개인을 중시하며 최선의 가치를 찾아가는 이념을 진보라 할 수 있고, 보수는 기존의 정치 및 사회 시스템의 유지와 보호를 통해 사회안정을 추구하고 개인의 개별성보다는 사회 전체의 안정을 중시하는 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의 세계사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세력은 자본주의 세력과 기존의 계급사회에서 귀족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관점에서는 좌파는 이념상 공산주의라는 전체주의를 표방하지만 기존 사회질서에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으로써 진보라는 시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 지금의 좌파라고 해서 사회 내에서 무조건적인 진보로 받아들여야 하는가는 새로운 의문이다. 특히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시스템이나 사회 시스템은 많은 변화와 다양한 개혁을 통해 역동적인 상태가 되어있다. 그리고 지금의 정권 또한 현재의 상황을 탈피하고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기존의 시도한 변화의 안정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물론 당선되기 전에는 포퓰리즘 성격의 공약을 많이 내세웠다.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철폐 그리고 현재 시스템에서 감당하기 힘든 의료보험 보장 확대 제도 등 다양한 진보적 시각의 정책과 제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그들 또한 자신들의 정책의 한계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지금 대한민국은 새로운 변화를 통한 발전보다는 기존 변화된 시스템에 안정을 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모색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근거로는 다양하게 진행될 것 같던 사회 전반의 변화와 개혁보다는 현재 적폐 청산을 중심으로 한 사회 안정 작업에 몰두하고 있고, 경제 및 사회 분야에 대해서도 약자를 위한 정책이 나오지만, 정책의 한계는 기존의 정책을 이름만 바꿔서 나오거나 아니면 오히려 변화를 시도하다 후퇴하는 정책을 만들고 마는 실정이다. 오히려 지금 가진 능력의 한계로 인해 변화는 마이너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은 87년 이후 사회 경제 정치 분야가 많은 변화에 직면하였으나, 그동안 변화된 시스템을 안정화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변화는 국민과 국가가 원하는 결과를 낳기 힘들다. 그 이유는 기존의 변화를 주도했던 변수들이 사회 속에서 상수로서 역할을 하고, 사회유지를 한 후에 새로운 진단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기존의 다양한 변화와 개혁들이 사회 속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면 기존의 시스템에 대한 판단 착오와 변수의 변화가 예측이 안돼 예상된 결과를 낳기 힘들다. 그 예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사회 전체에 가져온 근 3년간의 결과를 보면, 최저임금의 인상이 노동자의 삶을 좋아지게 한다는 단순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에 소비를 진작시켜 전체 생산의 증가를 가져온다는 예측 또한 맞지 않고 있다. 기존의 변화가 안정되고 최저임금제도가 사회 속에서 실제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으로서 작용할 수 있는 사회적 적응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최저수입 노동자의 수입 증가를 위한 시스템으로 활용돼야 하는데, 그 순기능은 대한민국의 특이한 월급 시스템으로 인해 오히려 중위 소득 이상의 노동자들의 수입 증가 형태로 나왔다. 물론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수입 또한 증가는 했다. 그러나 단순논리로도 노동자들의 수입이 증가한다면 국가 전체 생산이 증가해야 한다. 즉 GDP는 최저임금 상승분만큼 전체가 커져야 실질적인 소득 증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GDP는 예상 성장률에 못 미치고 최저임금은 상승했다. 그것은 결국 분배 부분에서 일정의 계층이 손해를 보는 것인데, 그것이 중상위 이상의 수입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면 하위계층 수입을 가진 노동자들이 분배 부분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시간당 수입은 올랐으나 노동시간의 감소로 전체 소득이 감소하거나, 또는 노동의 강도 증가로 기존의 3인의 노동을 2인이 감당하거나 아니라면 실제 노동투입을 중지하거나 사업을 폐업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시간당 수입의 증가가 전체 수입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노동의 질의 향상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한 예로만 보아도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새로이 변화를 시도하기에는 기존의 사회 시스템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이다. 지금의 정치계에서 말하는 선거제도 개혁인 비례대표제 또한 기존 진행하고 있는 비례대표제가 안정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시도되고 있다. 특히 정치는 변화에 민감하고 그리고 정치의 변화는 사회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 그것은 곧 긍정적인 부분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 예로 현재의 미국 대통령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던 트럼프이다. 이결과는 미국이 자신들의 정치 시스템 발전을 위해 내놓은 오픈프라이머리 경선의 결과이다. 만약 미국 정당에서 대통령 후보를 오래전 과거의 정당 대의원들의 지명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일어나지 않을 결과이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소수민족과 다양성을 위한 정치 시스템의 변화는 미국 정당정치의 밀실정치를 배제하게 하였고, 그 결과로 대통령 후보 또한 정당의 대의원들의 지명 방식이 아닌 일반당원과 대중을 통한 선출이라는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게 되었다. 결과는 정당이 대통령 후보를 컨트롤하고 극단주의자 또는 위험 주의자를 배제할 수 있는 필터의 기능이 사라졌다. 트럼프는 정당의 필터 기능이 약화된 시스템을 이용하여 공화당의 후보가 되었고, 미국의 전통인 각주의 선거인단 제도를 활용하여 전체 지지가 아닌 간접선거의 특성을 이용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또한 변화가 꼭 좋은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결과이다. 즉 진보가 꼭 좌파의 상징이 아니다. 진보가 변화를 추구한다면 그 변화는 우파든 좌파든 어느 누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변화의 관점과 시각을 어디로 두냐에 따라 그 결과와 원인이 달라진다. 이는 좌파는 진보, 우파는 보수라는 수식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 또한 당연하게 적용된다.


2) 대한민국에서 진보의 의미는? 그리고 그 결과는?

대한민국에서 진보는 세계사에서 바라보는 진보와는 조금 다른 선을 달린다. 대략 해방 이후 40년을 넘게 사회는 독재정권과 군부정권에 의해 폐쇄된 환경 속에 있었고, 이념 전쟁의 최전선에서 남과 북이 대치하는 상황으로 항상 전쟁 위험에 노출되어 왔다. 이는 필연적으로 정치가들이 민족주의를 통한 우익적 시각을 통해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계기와 기회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특수성에 의해 가치의 판단과 기준이 편향되었고, 시민들은 정부의 통제하에 있는 정보의 편향성에 의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념전쟁이라는 커다란 세계적 이슈는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시민들은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행동할 수 있는 동기가 없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독재정권의 야욕이 드러남과 동시에 일부 엘리트층과 시민들은 이에 대항하고 조직과 맞서 싸우기 위한 사상과 이념을 받아들이고 활용하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에 맞서는 사람들에 대해 당시 독재정권은 좌파 빨갱이라는 사상을 가진 불온 불순 분자로 낙인찍고 사회에서 배제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을 사회 반혁과 국가 전복을 꾀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주구로 전락시켰다. 그러나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은 비단 학생운동권 및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만이 아니었다. 이에 대한 저항은 예술 및 재외 동포들 또한 가세하게 되었으며, 점차 대한민국 내부의 주류인 화이트칼라들이 가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79년 박정희 암살을 통해 독재정권이 막을 내리고 계엄령을 통한 신군부인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신군부의 탄압과 악행이 국민들에게 알려지면서 과거부터 이어져온 군부 독재가 막을 내렸다.

우리는 진보라면 당연히 좌파라는 시각을 갖는다. 이는 독재정권 이후 신군부 그리고 지금까지 사회 주류를 차지한 정치인들을 주류로 본다면, 이에 대항 했던 세력은 과거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신군부 학생운동을 이끌던 86세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 주류에 저항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세대인 86세대들의 욕구가 지금에는 다 채워지고 넘쳐남에도 아직도 변화를 주도하는 진보적 시각을 그들에게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바꿔야 할 때다. 우리 스스로 과거에 얽매이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회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변화와 개혁이 이루어졌다. 지금 정권을 가진 좌파라는 칭호를 받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이나 사회 지도자들은 그들이 생각하고 바라던 사회변화와 개혁은 거의 다 이루어졌다. 특히 정치나 경제면에서는 그들이 바라던 변화 이상의 결과가 나온 상태이다. 오죽하면 그들이 말하는 변화는 오히려 보수적 시각에서도 거꾸로 가는 그런 변화가 나오겠는가? 최저임금의 금액을 올린 후 임금 산입범위를 넓히는 짓을 하거나, 미래 4차 산업을 준비한다면서 개인정보시스템 제공 규제를 풀어준다거나, 기존 시스템에 예약시스템 하나 얹히는걸 플랫폼 사업자로 보는 등 지금 좌파라 불리는 그들은 이념상 좌파일 뿐이다. 좌파가 진보적 입장에서 변화와 사회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은 마르크스가 말하듯 자본이 무한 축적의 원리에 의해 움직일 때다. 그러나 세상은 경제 또한 많이 변화하고 있다. 부의 축적을 위해서는 소비가 필요하며, 소비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안정된 수입과 증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본가는 알고 있다. 단 그들은 정확히 자신들이 벌기 위해 필요한 경비를 지출할 뿐이지, 노동자와 시민들의 복지와 미래를 위해 지출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과거의 그리고 지금 좌파라 불리는 정치세력과 사회 지도자들은 지금의 사회와 경제 정치 시스템 속에서 더 이상 변화를 주도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추구하던 최종의 목적지를 사회가 이미 지나쳤거나, 그 방향성 자체가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화된 주류의 중심에서 이익을 보는 것이 바로 지금 좌파라 불리는 세력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이 변화의 대상이 된다.

이제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진보와 보수에 대한 새로운 이념과 개념의 정립이 필요할 때다. 좌파란 과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지칭하는 이념집단의 하나이다. 그들의 이념과 사고방식은 낡았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향 또한 이미 철 지난 과일과 같다. 그리고 우파를 보수로 지칭하는 것 또한 멈춰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우파는 정치적 이념이나 사회 속에서 독재의 후신들로 밖에 지칭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우파는 결코 보수가 될 수 없다. 이미 그들이 지키고자 하던 사회질서나 정통 이념은 세계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대한민국 내에서도 이미 몰락한 이념으로 존재한다. 그런 대한민국의 우파들에게 보수라는 칭호는 너무 거창하다. 낡은 것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는 지킬 것이 있는 가치 있는 것을 보수라 한다. 그런 시각에서 진보와 보수의 사회적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사회는 이미 다양성을 인정한다. 다양성에 대한 인정 또한 이제는 보수적 시각으로 지켜야 될 사회 가치인셈이다. 그럼 지금의 사회 정치 경제에서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가?

미래, 또는 지금 시점 이후의 세계는 개인의 존엄성과 조직 전체의 복지와 시스템의 변화를 필요로 할 것이다. 특히 행동과 이념 사상에 대해서는 개인에 대한 존중과 가치가 중요시되고, 개인들의 삶이 영위되는 조직에서는 그들을 위한 안전한 시스템의 공급과 유지를 위한 사회 전체의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사회는 평가의 기준이 밴담과 밀의 공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전체 이익에 기점을 두고 정책과 시스템이 움직였다면, 앞으로의 사회 경제는 개인의 만족도를 최대로 올릴 수 있고 개별성을 보장하고 질적 향상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으로의 변화할 것이다. 즉 진보적 시각의 초점은 변화의 기준을 개인에 맞출 것이며, 보수적 시각의 초점은 기존의 공리적 입장에서 전체의 질적 향상을 위한 평균적 복지화 시스템의 보호를 목표로 할 것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좌파 진보, 우파 보수라는 수식을 절대 수식으로 삼아왔다. 이제는 이 수식의 변수인 보수와 진보의 값이 변화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몇 년간 정치계에서는 정치적 마이너스 성장을 해왔으나, 이는 전체 국민의 의식의 향상에 의해 민주주의가 가진 최대의 힘을 이용해 잘 극복해왔다. 이를 집단지성이나 집단의 힘의 결과로 보면 안 된다. 오히려 그 과정에 참여했던 개인들의 개별 적인 역량의 모집이지, 집단이나 대표가 개인의 성향을 이끌어 간 것은 아니다. 그 근거로 당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이유는 각 개인의 수만큼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연대라는 사회 시스템을 통해 촛불집회로서 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결코 촛불집회를 주도한 일부 단체나 정치인들의 목적을 위해 결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듯 미래에는 개인 각각의 생각과 개인을 위한 차별화된 복지 및 사회 시스템 구축에 대한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새로운 보수적 가치와 새로운 진보의 가치가 선의의 충돌로서 새로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하였으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 대한민국 진보와 보수의 이념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