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나에게 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색다른 충격을 주었다.
나는 보수주의자라고 이야기한다. 스스로가 평가해서 내린 결론이다.
보수란 시대의 가치를 지키는 것, 나는 이 시대가 가진 지킬 가치에 대해 예찬하고 찾아내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나의 삶의 기준이다. 올 대법원 판결에서 낙태를 범죄화 한 현재의 형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를 내린 헌법 재판소의 결정에 나 개인은 반대한다. 물론 사회 전체가 이제는 개인의 자유와 과거 '장자크 루소' 가 이야기했던 "자유권"과 "근본적 소유권"에 대해서 개인의 결정권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시대가 왔다는 것은 축복하지만, 그 과정에서 낙태가 권유되는 사회로 흘러가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낙태를 허용하는 듯한 결정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물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위배하게 만드는 낙태의 범죄화 또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낙태를 여성의 "자기 결정권" 속에 포함시키는 것은 생명에 대한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낙태에 대해서 "자기 결정권"이라는 기본적 권리에 대한 침해 여부를 다루어야 하는 현재의 사회 풍토와 분위기에는 정말 안타 까움을 느낀다. 우선 낙태란 문제는 누군가의 결정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다. 낙태의 문제는 낙태를 하는 여성 자체가 그 행위 자체가 자신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사회적 또는 자기 상황의 문제로 낙태를 결정하고 진행하게 된다 해도 그 내면에는 그로 인한 자신의 태아에 대한 잊지 못할 기억이 남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나는 여성에게 내면적이고 현실에서 가해지는 형벌보다도 더 아픈 처벌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생각일 뿐이다. 내가 낙태를 허용하는 듯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없더라도, 당연히 그것은 사회에서 가져야 할 자신의 결정이다. 그런데 그것을 법을 통해 형법화 하고 대법원을 통해 인정받는 사회가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나는 보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여성의 기본적 소유권 및 자유권인 "자기 결정권"에 대한 위헌적 판결을 한 대법원의 판단은 생명의 무게에 대한 가벼움을 가져다 줄 결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반대한다. 차라리 입법에서 낙태죄에 대해서 없애는 것이 바람직 하지, 기본권에 대해서 법리적으로 인정을 받는 형태는 반대다. 생명의 소중함이 그리고 그 무게감이 사라진 듯해서 싫다.
그런 나는 보수 주의를 주장한다. 그리고 진보적 시각의 사회 변혁이나 또는 역사적 가치를 현대의 잣대로 재서 판단하는 진보주의 자를 싫어한다. 그렇다고 내가 친일 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중도 보수적 성격에서 나의 스펙트럼은 좌 우의 넓이가 굉장히 넓다고 판단한다. 특히 책이나 다른 사람의 이해를 받아들이는 넓이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넓게 그리고 깊게 받아들이며, 이해를 하지는 못해도 그 상태로 인정은 한다. 비록 나와의 이해와 시각이 달라도 나의 관점에서 비판과 독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틀리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시각이 다른 것과 틀린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절대적 옳음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나와 다른 견해나 반대의 이해되지 않는 견해와 내용도 나는 수긍하며,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비록 동조하거나 그것을 새로운 가치로 삼지는 않더라도,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 나에게 "반일 종족주의"는 사람의 생각과 이해의 폭이 어떤 넓이를 가져야 하는가의 문제를 주었다. 그리고 인정이라는 부분을 어디까지 할 것인가? 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책이란 형태와 모양으로 결정을 하는가? 아니면 그 가지고 있는 내용으로 책이라고 불러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져준다.
반일 종족주의는 책이라고 부르기에 몇 가지 사항이 빠져있다.
첫 번째로 반일 종족주의 책의 기본 전제는 우선 일제 식민시대 공식적 자료가 없는 한 당시 벌어진 사건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반일 종족주의에서 반일 감정을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으로 비하하면서 반일 감정과 항일 감정에 대해서 종교적 시각으로 편향시켰다. 세 번째로 반일 종족주의의 대부분의 근거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만들어놓은 자료와 내용을 가지고 논리를 증명한다. 네 번째로 반민특위나 이후 반일을 주장하거나 행동하는 단체들의 일부의 실수를 전체 논리를 파괴하는 형태로 침소 봉대 하는 논리 전개를 하였다. 즉 네 가지를 압축하면, 책이란 객관적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 자체가 객관적이지 못하면 내용이나 논리 자체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럼 일제 강점기 시대 객관이란 무엇인가?
우선 전제할 조건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이영훈 교수가 이 책에서 인정한 정치적 동화는 강제성을 띄고 있다는 부분이며, 당시 조선은 일본과의 정치적 합병을 원하지 않았으나 이 부분은 일본이 강제에 의해 진행되었다고 인정한 부분이다. 그럼 일제 강점기 30년간 일본이 강제성을 동원한 정치적 합병 통치 당시 자료나 행위에 대한 근거가 과연 제삼자의 눈에서 객관적이라고 할 만한 근거가 되는 자료일까?라는 문제다. 이영훈 교수는 이 책에서 현재 주장되는 여러 가지 일본의 만행이나, 당시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례에 대해서 일본이 가진 자료와 공개적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이영훈 교수는 결국 일본이라는 통치자의 자료에 자신들의 잘못이나 부정이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한국에 대한 경제적 수탈이나, 강제 징용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 어느 역사를 뒤져보아도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식민지배 시절 자신들의 잘못을 자신들이 기록한 역사는 없다. 잘못이나 부정은 당하는 자들이 기록을 하는 경우가 대 부분이다. 당연히 이영훈 교수는 그런 관점에서 일본의 공식 기록이나 공개 자료 이외에 지역의 이야기나 민간의 이야기 또는 숨겨진 자료들 또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두 가지를 비교하고 자신의 논리를 주장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자료를 제시함에 있어 그 자료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만한 근거 또한 제시해야 한다. 단지 기존의 역사에 대해서 몇 가지가 부정되었다고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경험론의 귀납법이든 인식론의 연역법이든 이영훈 교수의 논리 주장은 주장의 흐름이 근거를 신뢰할 수 있는 자료로 믿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식민 통치를 받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료의 출처가 일본 식민시절 공식 자료라는 것 자체가 신뢰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신뢰할 수 없는 자료를 기반으로 몇 가지를 증명했다고 해서 전체의 내용이 부정된 것처럼 하는 것은, 이영훈 교수 자체가 기존 역사학자들이나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했던 논리를 그대로 가져다 책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할 수 있는 자기 오류에 빠지고 만다. 그런 것을 책이라 하고 싶지 않다. 설령 잘못된 또는 사회적으로 악에 가까운 내용을 싫더라고 그것을 근거하기 위한 주장에는 필히 신뢰라는 바탕이 있어야 한다. 과거 "토마스 홉스"는 근대화와 인간의 조직이 이전의 혼돈의 사회이고 악한 존재였던 인간이 조직이라는 시스템을 통화 순화되고 좋아졌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근거로 제시하는 여러 가지 사유는 인정할 만한 연역적 사고의 범위에서 논거를 제시하고 증명했다. 그리고 그런 인간을 악한 존재로 개선의 여지를 부여한 논거는 많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종족을 악하다고 이야기하고 그것을 객관적 근거를 통해 논거하고 증명한 여러 훌륭한 책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 책들의 특징은 왜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한가? 에 대한 의문을 자신의 눈이 아닌 객관적 사실과 근거를 통해 주장했다. 그리고 그 책들은 하나같이 깊은 사유를 주고 발전의 여지를 주었다. 만약 이영훈 교수가 반일 종족주의에서 일본의 통치가 한국의 경제적 근대사를 촉진시키고, 사회 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발전시켰다고 증명하려면 당시 일본의 공개 자료가 아닌 자신이 근거를 찾고 통계를 하여 증명하여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논거에 신뢰를 싫는 방법이다. 만약 이 책에서 객관적 근거와 자료를 첨부하였다면, 필자는 지금쯤 이영훈 교수의 논거에 동의는 하지 않지만, 책이 새로운 눈을 가져다준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새로움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들은 사실을 비꼬기는 하지만, 사실을 근거로 매개를 해서 주장을 싫는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반대할 논거가 부족함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 책에 있는 자료만으로 충분히 반박이 가능함을 느낀다. 책은 편향되어도 좋다. 책은 잘못을 기록하여도 좋다. 그러나 책의 주장에 대한 논증은 객관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이 책은 책으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에 권하고 싶지 않다.
참고로 나는 이 책을 37분 만에 속독으로 읽었다. 정독할 필요가 없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