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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ora Apr 07. 2020

21세기 시사 교양을 위한 교향곡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 시사 교양의 교향곡 두 번째 악장은 현재와 미래이다. 

EPISODE2.

1. 과학의 지금 위치와 역할?

1923년 시카고대학의 아서 콤프턴 교수가 X선을 산란시켰을 때 빛의 파장이 길어지는 ‘콤프턴 효과’를 발견한 것. 그러자 물리학자들은 더 이상 빛의 입자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처] 빛이 입자임을 증명한 콤프턴 효과|작성자 옥구슬 누이

광자 하나의 에너지가 중요하다. 진동수가 길어 일정 에너지보다 작은 광자들은 많은 양을 쏘아도 전자가 튀어나오지 않는다. 즉, 빛을 아무리 밝게 비추어도 특정 파장 이상의 파장을 가진 빛은 전자를 방출하거나 전류를 흐르게 만들지 못한다. 따라서 고전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가한다고 광전 효과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각 빛 입자인 광자가 특정한 에너지 이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전효과 [Photoelectric effect] (물리학백과)

1919년 런던 왕립 학회는 기니 만에 있는 프린시페 섬에서 있었던 관측에서 그해 5월 29일의 일식을 촬영하였는데, 일반상대성이론에서의 예측이 검증되었다고 발표하게 된다. 이로써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고전역학적 세계관을 마감한 인물로서 범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그리고 1921년에는 광전 효과에 대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인슈타인 [A. Einstein] (물리학백과)

고전역학 이후 과학사의 두 흐름,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관계

  고전물리에서 현대 물리로 넘어오는 과정 중 가장 큰 요인은, 힘에 대한 설명중 입자가 아닌 자기력장 전기력장 등 힘을 장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빛의 속도는 어떤 경우든 일정하다는 사실과 <마이컬슨 몰리의 실험(주석 1)> 빛의 정체가 입자 - 파장 - 입자(주석 2)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원자의 세계에 대한 실험적 근거들이다.

  2) 지금을 이야기해주는 현대 과학

  -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앏머트 아인슈타인(상대성이론)
닐스보어(양자역학)

  19세기 말 20세기 초 서구 유럽은 원자의 세계를 다루게 되었고, 그동안 불변이었던 뉴턴의 세계는 아인슈타인이라는 천재 과학자에 의해서 변화를 맞게 되었다. 우선 뉴턴의 법칙이 적용되는 세상은 변하지 않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고 했다. 첫 번째가 절대공간이고 두 번째는 절대 시간이다. 뉴턴 역학의 원리는 완전한 결정론적 시각과 관념 아래 존재했는데 과거 또는 현재 관측 대상의 위치와 운동량(시간과 속도)을 알고 있다면, 미래 또는 어떤 정확한 순간의 입자의 운동과 상태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는 물리법칙이었다. 결국 이는 시간과 공간이 절대 불변할 경우 적용할 수 있는 공식이었고, 당시 사람들에게는 공간(측정된 길이)이나 시간(측정된 시간 간격)이 변하거나 관측자나 관측계에 따라 다르게 측정될 수 있다는 상상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뉴턴의 세계에서 힘은 물질의 발생과 동시에 작용하며, 힘이 주어지고 사건이 발생하는 시간은 특정 공간에서는 전 우주적으로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또한 전자기학에서는 맥스웰의 방정식(주석 3)으로 전자의 움직임과 전기의 원리를 이해하고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절대 불변이던 뉴턴의 거시 세계와 미시세계의 전자와 광자의 운동과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과학은 더 이상 세상의 규칙들을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고전 물리학은 19세기 말까지 뉴턴의 3법칙과, 전자기학의 맥스웰 방정식으로 단단하게 구축되었다. 더 이상의 새로운 물리법칙과 역학은 발견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과학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전자기의 발견으로 전부 밝혀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원전부터 19세기까지 서구 유럽 과학의 발전과 업적의 총량을 100이라고 가정했을 때, 뉴턴 이후 200년의 시간 동안 밝혀낸 과학적 이론과 법칙이 50%를 넘을 정도의 성과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전자기학의 발전은 보이는 거시 세계 이외에 신의 영역으로 생각이 되었던 번개 즉 빛과 전기에 대한 이론을 마무리 함으로써 인간은 우주의 비밀을 전부 알아낸 것만 같았다. 고전 물리학계는 창조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자만과 착각에 빠져있던 시기였다. 고전물리 세계의 탄탄함은 과학자들 스스로 매너리즘과 관성에 빠져서 새로운 걸 추구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냈으며, 교부 중세시대를 탈피하고 르네상스를 거쳐 인간과 자연중심의 세계를 탐험하던 과학은 새로운 걸림돌이 과학 자신이 되었던 시기였다. 뉴턴의 3법칙과 뉴턴 세상에 대한 반대 이론이나 결함을 증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뉴턴의 세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년 3월 14일, 독일 - 1955년 4월 18일)은 뉴턴 이후 20세기 천재 과학자이자 과학의 혁명을 주도한 중요한 인물이다. 아인슈타인은 독일 올름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른 천재나 수재와는 다르게 거의 평범한 성장기를 거쳤으며, 유명 학교나 유명 대학을 나온 재원도 아니었다. 단, 숙부와 아버지의 전기 관련 사업으로 뮌헨으로 이사를 하면서 수학과 과학에는 남보다는 좋은 성적을 보였다. 대학은 취리히의 연방 공과대학을 나왔으나, 입학 시에는 1회 낙방을 하고 학장이 그의 수학과 과학 실력이 뛰어난 것을 알고서 1년간 아라우에 있는 자유로운 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배려했으며, 다음 해 연방 공과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졸업 시 그의 성적은 중위권에서 조금 위쪽에 있었으며, 당시 반유대주의 사상의 분위기와 아인슈타인이 가지고 있던 반항적인 성격으로 교수 추천이나 대학의 취업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 후 임시교사나 개인 가정교사를 하면서 어렵게 지내고 있었을 때, 친구 마르셀 그로스만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베른에 있는 특허국 심사관으로 근무를 하게 되면서 안정을 찾게 되었다. 특허 심사관은 당시 최첨단의 기술과 과학 이론을 대할 경우가 많았으며 시간적 여유 또한 충분해서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내용들에 대해 공부하거나 연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05년에 네 편의 중요한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다. 서구 유럽에서는 1905년을 두 번째 기적의 해(주석 4)라고 부른다. 당시 논문의 내용은 첫 번째로 정지상태 입자의 움직임과 관련한 브라운 운동(주석 5)이며, 두 번째는 빛의 광전효과(주석 6)에 관한 내용으로 빛의 입자라는 실험적 증거를 토대로 되어 있고, 세 번째는 역사상 위대한 발견인 특수상대성이론으로써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이며 , 네 번째 마지막 논문은 물체의 관성은 에너지 함량에 의존하는가?라는 논문으로써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설에 대한 것이었다. 발표 당시에는 센세이션을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과학계의 분위기는 상대성이론이나 에너지 질량 등가설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했으며, 광전효과에 의해 발생한 광양자 가설은 콤프턴(주석 7) 효과로 입증되어 빛과 전자의 정체에 대한 연구와 원자의 구조에 대한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1915년 10년 후 뉴턴은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발전된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게 되고,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중력과 별의 움직임 및 질량이 큰 물체 주변의 시공간의 왜곡을 이론적으로 법칙을 발견하고 발표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의 대상은 등속 운동하는 물체에 대한 관측자와 관측계에 대한 법칙이며, 일반상대성이론은 가속하는 물체에 대한 상대성이론으로 중력과 가속도(힘)의 등가 원리를 깨닫고 만들어 낸 우주에 대한 기본원리이다. 빛은 어떤 관측계나 관측자에게 일정한 속도를 가진 유일한 입자임을 증명하였다. 빛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속도를 가지며 1초에 약 30만 km를 간다. 세상의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빛의 속도이며, 에너지(E)는 질량(M)과 서로 전환된다는 법칙으로 우주의 모든 물질은 빛의 속도로 시간의 방향으로 운동한다는 법칙을 만들었다. 그 법칙이 E=MC^2으로 물질의 질량에 빛 속도의 제곱을 곱한 값이 에너지로 전환된다는 이론이다.


  상대성이론과 광양자 가설인 광전효과는 어떤 형태로 뉴턴의 고전역학과 물리 세계를 깨뜨리게 되었을까? 뉴턴 역학이 존재하기 위한 기본 공리는, 우리가 사는 거시 세계는 절대 시간의 흐름과 절대 공간을 가지는 세계이다. 시간과 공간은 연계되지 않으며 모든 물체는 똑같은 측정의 단위와 크기를 가지는 공간에 존재하고, 존재하는 공간에서 시간은 다른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절대 적인 흐름을 가진다. 그래서 뉴턴의 세계는 질량은 공간에 영향을 줄 수 없고 시간에 관계되지 못한다. F=ma에서 등속 하는 물체나 멈춰있는 물체의 등속 운동을 하는 물체는 외부의 힘에 의해 비례하고 물체의 크기인 질량에 반비례하는 것이다. 시간은 우주적 규칙에 의한 흐름으로 진행되고, 공간의 크기는 절대적 흐름의 똑같은 측정 단위에 의해 측정된 평면의 크기를 가진다. 뉴턴 역학의 공리인 시간의 절대성과 공간의 절대성은 아인슈타인에게도 특히나 조심스러웠다. 아인슈타인은 처음부터 뉴턴의 3법칙과 기본 공리를 배제하거나 부술 목적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장 궁금했던 건, 인간이 빛의 속도와 나란히 달린다면 그 눈에 보이는 세상은 어떻게 보일 것인가? 이 질문이 아인슈타인에게는 가장 궁금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맥스웰의 방정식에서 전자의 속도 또한 빛의 속도와 근접하다는 사실과, 많은 사고 실험 끝에 탄생한 특수상대성이론을 근간으로 '빛은 관측계나 관측자에 동일한 속도를 가진다.'라는 결론을 가지게 되었으며, 어떤 관측계든 관측자에 대해서도 빛은 항상 약 30만 KM로 동일하게 움직인다는 규칙을 알아내게 되었으며, 세상의 빛보다 빠른 물질이나 입자는 존재하지 않고 정보는 빛의 최고속도에 더불어 전파된다는 법칙을 알아냈다. 그리고 특수 상대론에 의해 등속 운동을 하는 모든 물체는 빛의 속도로 시간의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법칙을 발표했으며, 이로 인해 뉴턴의 절대 시간과 절대공간의 공리는 깨어지게 되었다. 

  특수상대성이론으로 뉴턴의 고전역학의 물리계는 어떻게 깨어지게 되었을까? 우선 결과를 말하자면, 공간과 시간은 관측자와 관측계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 뉴턴 역학에서 일어난 사건의 시간은 전 세계에 동일한 시간에 발생한 것으로 간주한다. 모든 세상의 물리적 시계는 동일하게 흐르기 때문에 A지점에서 A1지점까지 움직인 거리와 흐른 시간은, 세계 어떤 공간에서 진행되더라도 그 거리는 동일한 거리이고 흐른 시간은 동일한 시간으로 측정되며, 사건의 발생 시점이나 흐름이 관측계나 관측자에 대해서 다르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특수상대성이론의 법칙에서는 관측계의 상황과 관측자에 따라서 사건의 거리와 시간적 흐름은 변하게 된다. 예를 들어 관성이 동일한 관측계의 서로 다른 관측자에 의해서 관측되는 물체의 물리량이 서로 다르게 측정되어야 한다.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해서 고유하게 유지되는 값은 빛의 속도의 불변과 동일한 물리법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측자에 의해서 보이는 물리량은 관측자의 입장에 따라 변화되며, 시간 또한 물리량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 특수상대성이론의 한 예로 빛이 한 점이 관측자의 입장에 따라 변하지 않고 동일한 속도인 C를 가지기 위해서는 관측자의 움직임 여부에 따라 공간의 수축과 팽창 및 시간 속도의 변화가 필수 불가결하게 된다. 그리고 물체의 질량은 에너지의 크기와 비례하게 될 것이다. E=MC^2의 결과로 빛의 속도가 불변하기 때문에 에너지의 증가는 질량의 증가와 동일시된다. 그 결과 전 우주적 동시성은 깨어진다. 뉴턴의 세계의 규칙인 동시성의 붕괴에 대한 예를 들면, 관측자 W1은 기차의 총길이가 60만 KM의 정확히 중간인 30만 KM에 앉아있다고 가정하자.(W1의 물리계는 기차의 움직임과 동일시되는 기차 내부 관성계이다.) 관측자 W2는 움직이는 기차 앞쪽에서 30만 KM의 위치에 있다고 가정한다(W2의 물리계는 기차와 W1을 관찰할 수 있는 외부 관성계로서 관찰자를 포함한 관성계이다). 이때 기차의 양끝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W2는 빛의 거리의 1초 후에 기차 앞쪽의 사고를 인식하고, 이후 2초가 지난 후 기차 뒤쪽의 사고를 인지한다. W2의 사고 인지 시간은 발생 시점으로 P라고 하면, 기차 앞쪽의 사건에 대해서는 P+1S, 기차 뒤쪽의 사건에 대해서는 P+3S의 시점에서 인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관측자 W1은 P+1S의 시점에서 양쪽 사고의 발생 시점을 인지한다. 이것은 빛의 정보전달로써 관측자에 의해서 발생된 인지 시점이다. 결국 사건은 동시에 일어나지만 관측자의 위치에 따라 빛의 속도에 의해서 우주 내에서 동시간에 사건이 인지되고 발생한다는 뉴턴 역학의 절대 시간과 절대공간이 깨어지는 하나의 예이다. 시간이 흐름은 관측계와 관측자에 대해서 다르게 흐른다는 증거다. 동시의 개념은 관측계와 관측자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며 시간의 흐름이 변한다. 뉴턴의 우주적 동시성은 만약 태양이 지금 시점에서 사라지면 지구에서도 사라진 시점에 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태양이 지금 사라진다면 지구는 8분 20초 후에 그 영향을 받으며 사라진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였다. 당시 특수상대성이론은 획기적인 아이디어였고 뉴턴의 세계를 뒤집을 만한 생각과 법칙이었으나, 그렇다고 뉴턴의 세계가 깨지는 분위기가 고조되거나 높아진 것은 아니었다. 이후 10년이 지난 후 1916년에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게 되었다. 일반상대성이론의 기반은 특수상대성이론이 등속 운동을 하거나 멈춰있는 관성계에 대한 이론에 기반했다면, 이에 대해 전 우주의 가속하는 물체와 질량을 가진 물체들에 대한 관계 이론이었다. 즉, 운동하는 물체들과 질량이 있는 물체들 주변에 대해서 시공간의 왜곡이 일어난다는 이론이었으며, 이는 물체에서 발생하는 중력과 외부 힘의 작용에 의한 가속도가 같은 힘이라는 등가 원리(주석 8)에 기준을 둔 이론이었다. 이를 통해 별들의 움직임에 시공간 왜곡이 발생한다고 발표했으며, 일반상대성이론에 근거하여 별빛이 태양의 주의를 관통할 때 원래 위치에서 벗어난 장소에서 관측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발표했다. 1919년 런던 왕립 학회는 기니 만에 있는 프린시페 섬에서 있었던 관측에서 그해 5월 29일의 일식을 촬영하였는데, 일반상대성이론에서의 예측했던 빛이 질량이 큰 물체의 주변에서 휘는 것이 검증되었다고 발표하게 된다. 이로써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고전역학적 세계관을 마감한 인물로서 범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의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의 근거가 된 이론은 광전 효과에 대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당시 실험적 증명까지도 끝난 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나 특수상대성이론이 과학계에서는 주류로써 받아들이기는 아직은 미흡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전효과는 여러 실험적 증거를 수반하여, 과학계에서는 양자역학의 토대가 되는 이론의 하나가 되었으며 많은 물리학자들이 입자 세계에서 빛과 전자의 파동론과 더불어 하나의 입자물리의 세계를 이루는 양자역학의 기본이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는 상대성이론과 더불어 현대물리의 또 하나의 줄기인 양자역학을 만들어내는 공헌을 하였다.   

  현대물리의 문을 연 두 가지 법칙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세계이다. 먼저 상대성이론은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등속 운동을 하는 물체 또는 멈춰있는 상태의 물체의 관측자들에게는 빛의 속도는 똑같다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더 든다면, 광속과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기차에 탄 관측자 W1이 기차 내부에서 느끼는 빛의 속도도 30만 KM에 가깝고, 외부 관측자 W2에게도 빛의 속도가 30만 KM에 가깝다고 가정하고 W1이 기차의 이동 방향으로 내부에서 광자 하나를 발사한 후 광자는 1초 후에 W1에게 돌아온다. W1, W2가 이 광자의 속도를 둘 다 30만 KM로 느낀다면, W2는 광자가 발사된 기차 내부의 W1의 시간이(W2 관성계의 시계) 느리게 가고 길이가 줄어든 것을 확인하게 된다. W1은 자신은 기차와 같은 관성계에 존재함으로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하고 광자는 30만 KM의 속도로 1초간 진행했다가 다시 1초 후에 돌아오는 것을 측정하게 된다. 그것은 빛의 속도가 일정하고 W1이 발사된 방향으로 광속에 가깝게 움직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상대적 관측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은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중력가속도 g와 힘의 가속도 a는 같다는 등가 원리가 기본이 되어 질량이 있는 물체 주변에서 빛은 휘어지고 주변의 시공간 또한 왜곡된다는 것이다. 뉴턴 세계의 강력한 공리인 절대 시간과 절대공간의 법칙은 질량이 큰 물체 주변의 시공간이 왜곡되는 현상과 빛의 휘어지는 관측의 위해서 깨어지게 되었고, 이후 과학계는 시, 공간을 통합해서 하나의 차원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전까지 시간은 별개의 규칙에 의해 절대성을 가진 흐름이었으나 아인슈타인에 의해 공간과 통합되고, 기존 3차원이 공간 기준의 차원이었다면 시간이 추가된 4차원 시, 공간으로 부르게 되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일반 거시 세계에서 뉴턴 역학은 큰 오차 없이 동작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밀한 계산이 필요한 우주에 대한 작업과 정확함을 요하는 거시 세계의 일을 할 때는 상대성이론을 기반으로 한 작업을 진행한다. 상대성이론이 뉴턴의 기본 공리인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무너뜨리고 시, 공간을 하나의 차원을 통합한 우주의 법칙을 설계했다면, 양자 역학은 우리의 인지 밖에서 움직이는 입자의 세계와 그리고 뉴턴에 의해 정의된 빛의 입자설을 깨뜨리는 역할과 뉴턴의 법칙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과 세계를 보여주는 역할을 해왔다. 물론 양자역학은 상대성이론 하고도 또 다른 길을 보여주는 현대 물리학과 과학계의 자연에 대한 규칙을 발견한 영역이기도 하다. 양자역학은 우리의 인지와 직관을 깨고 봐야 하는 학문으로써 그 토대를 아인슈타인이 광전효과를 통해 만들었으나 결코 그 자신이 죽기 전까지도 인정하지 않는 분야였다. 결국 위대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으로 하여금 신을 찾게 만든 분야이기도 하다. 


* 고전물리의 세계를 지우고 20세기를 연 새로운 영역 양자역학


  양자역학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많은 과학자들은 닐스 보어(1885~1962)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양자역학의 탄생과 과정에 중요한 계기가 된 사건을 이야기한다면, 제5차 솔베이 회의(주석 9)를 이야기한다. 닐스 보어와 당시 솔베이 대전이라고 부른 제5차 솔베이 회의가 왜 중요한 사건이고 인물이냐는 질문을 한다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코펜하겐 해석을 이야기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왜 코펜하겐 해석이 중요하냐고 물어본다면,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의 시작의 기틀을 마련한 기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왜 코펜하겐 해석을 중요시할까? 물론 양자역학의 기준과 내용에 대해서 코펜하겐 해석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결과가 나온 양자역학에서는 기존 과학이 가진 귀납적 방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과학은 실험적 증거를 기반으로 이론적 규칙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기존의 법칙으로 A와 B를 충돌시킬 때 발생하는 결과가 항상 C가 나왔는데, 어느 날 충돌을 시키니 C 이외에 D와 E라는 모르는 물질이 나왔고 항상 알고 있는 이론의 규칙에서 벗어났다고 가정하자. 그때 이 결과에 대해 알기 위해서 대 부분의 과학자들은 충돌의 규칙에 대한 조건을 바꾸고 같은 결과를 내는 환경에 대한 실험을 통해 그 원인과 과정 결과를 분석해서 새로운 규칙을 찾아낸다. 양자역학이라는 분야가 나오기 전까지 실험을 통한 과학적 규칙과 법칙을 찾아내는 방법인 귀납적 증명은 정설이었고 거의 모든 현상에 대해서 맞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과학은 세상의 인과론을 찾는 학문이었으며, 세상은 인과론에서 벗어나는 현상이 벌어지지 않음으로 실험을 통한 증명이 가능한 학문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또한 처음 시작은 사고 실험을 통해서 시작을 했고, 몇 가지의 실험적 결과를 가지고 만든 이론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 이론의 증명은 실험적 결과와 자연에서 발견되는 현상을 가지고 그 법칙과 규칙이 맞음을 증명하였다. 질량이 큰 물체의 주변의 공간의 왜곡과 시간의 느려짐은 일식을 통해 발견되는 별들의 위치를 통해 증명되었으며, 높은 곳에 위치한 인공위성을 통해 시간 지연이 발생됨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렇듯 상대성이론 또한 그로 발생하는 현상을 실험에 의해서 증명하고 있으며 자연에서 발생하는 인과론을 위배하지 않는다. 이런 과학의 세상에 양자역학의 출현은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양자역학의 시작과 기본을 만든 코펜하겐 해석과 양자역학의 기반이 되는 과학적 사건들과 내용들을 확인해보자. 코펜하겐 해석은 닐스 보어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및 조지 가모프 등이 1921년 코펜하겐에 설립한 이론물리학 연구소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이 내용은 그동안 빛 입자의 정체성과 원자 내부의 구조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확인된 여러 사실들은 우리의 상식을 이반 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직관에 위배된 입자들의 행동에 대해서 이론물리학자들이 만든 여러 규칙과 법칙들이 잘 맞아떨어졌으며, 몇 가지의 공리 하에서 훌륭하고 거의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1921년 이론물리학 연구소를 설립한 닐스 보어를 중심으로 한 양자역학 옹호자들은 코펜하겐 이론물리연구소에서 이 새로운 과학의 영역인 양자역학에 대한 공리를 발표하게 되었고, 이를 제5차 솔베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는 코펜하겐 해석의 내용을 가지고 강하게 부딪치게 되었다. 양자역학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의 요약은 아래와 같다.


코펜하겐 해석 

1. 입자의 상태는 파동 함수에 의해 결정되며파동 함수의 제곱은 측정값에 대한 확률 밀도를 나타낸다.

2. 모든 물리량은 관측이 가능할 때만 의미를 가진다물리적 대상이 가지는 물리량은 관측과 관계없는 객관적인 값이 아니라 관측 작용의 영향을 받는 값이다.

3. 서로 관계를 가지는 물리량들은 하이젠베르크가 제안한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4. 전자와 같은 입자들은 입자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을 상보적으로 가진다.

5. 양자 도약이 가능하다양자 물리학적으로 허용된 상태들은 불연속적인특정한 물리량만 가질 수 있다따라서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하기 위해서는 한 상태에서 사라지고 동시에 다른 상태에서 나타나야 한다.  

[출처] 양자역학의 시작 - 솔베이 회의|


  물론 위의 코펜하겐 해석이 양자역학의 주류이기는 하나 절대성은 아니다. 이외에도 양자역학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나오고 있으며, 그 해석들 또한 코펜하겐 해석의 내용과 많이 다르지 않고 주류 과학의 인과론적 세계관과는 많이 다르다. 코펜하겐 해석을 살펴보면, 오랜 세월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빛과 전자와 같은 미시세계의 작은 입자들에 대한 성질을 규정하였다. 그리고 그 입자의 성질과 특성을 규정하고 이를 증명이나 실험적 근거를 통해서 입증을 할 수 없으나 하나의 현상과 공리로 만든 것이다. 

  양자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Quantum이라고 부른다.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물질의 단위인 입자가 연속적이지 않고 한 개 두 개 양으로서 존재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빛이나 전자등의 입자가 알갱이로서 양을 가지며 불연속적으로 띄엄띄엄 양자화되어있다는 의미이다. 양자역학은 이런 알갱이들의 운동을 관찰하고 규칙화하는 학문이다. 이런 특성을 기반으로 코펜하겐 해석은 만들어지고 발표되었다.

  첫 번째 코펜하겐 해석의 공리는, 양자 즉 미시세계의 물질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가진다. 이 이중성에 대한 입증은 토마스 영의 이중 슬릿 실험(주석 10)에서는 파동의 성질처럼 간섭과 회절이 일어났고,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에서는 알갱이처럼 다른 입자에 반응을 했으며, 콤프턴 산란을 통해 확증되었다. 현대 21세기에는 물질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가진다는 실험적 증거가 미시 원자를 넘어 거시 세계 물질까지 실험적 대상이 되어 있다.

  두 번째 코펜하겐 해석의 공리는, 미시세계 물질의 측정에 관한 것이다. 보이지 않은 미시세계의 물질인 입자의 물리적 측정은 정확하지 않다는 불확정성 원리이다. 불확정성 원리(주석 11)는 입자의 위치와 서로 관계를 가지는 물리량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것으로, 어떤 입자의 위치를 측정하면 속도, 방향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었고, 속도를 측정하면 정확히 위치를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 전자나 소립자들의 물리량을 측정하면서 나온 데이터로 정확하게 공리로서 작용한다.

  세 번째 코펜하겐 해석의 공리는, 첫 번째의 물질의 이중적 성질 중 파동과 관련된 공리이다. 관측대상이 되기 전인 입자나 물질은 전 우주에 파동으로 존재하며 중첩의 상태를 유지한 채 존재한다. 그러나 관측이 되면 파동이 붕괴되고 하나의 결과인 입자로서 양을 가진 상태로 관측이 된다는 것이다. 즉, 관측되지 않는 물질은 그 상태가 단순히 파동으로서만 우주 전체에 존재하며 우리가 인지하는 형태의 결과인 물질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스마트폰, 컴퓨터 모니터 등도 어느 누구도 관찰하지 않은다면 형태가 없는 파동으로서 우주 전체에 뿌려져 있다는 것이다. 관찰이란 행위가 파동의 붕괴를 가져와서 하나의 결과를 가진 물지로 만든다는 것이다.(이 부분이 우리의 직관과 가장 위배되는 양자역학의 공리이다.)

  네 번째 코펜하겐 해석의 공리는, 양자 도약이다. 입자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불연속적으로 이동한다. 예를 들어 원자핵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전자가 있다. 이 전자가 원자핵의 가장 가까운 괘도에서 에너지를 얻어 밖의 괘도로 이동할 경우 연속적으로 멀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안의 괘도에서 사라지고 밖의 괘도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전자가 에너지를 잃거나 얻어서 괘도를 바꾸는 과정이 연속적인 움직임의 형태가 아닌 전자가 가지고 있는 양에 따라 그 정수배의 괘도로 순간 이동을 한다는 것이다. 입자의 이동이 불연속적인 형태로 일어나는 것 또한 실험적 데이터와 결과로 입증이 되어 있다.

  코펜하겐 해석의 다시 종합해서 요약하면, "미시세계의 물질인 전자나 광자는 파동이자 입자이다. 그리고 에너지를 얻어 이동할 때 A의 괘도에서 사라지고 B의 괘도에서 나타나는 불연속적인 이동을 한다. 물질인 입자는 관찰하기 전까지는 파동의 상태로 관찰이나 측정이 일어나면 입자로 행동한다. 측정되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는 절대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 양자역학의 학문은 이런 공리를 인정하고 연구를 해야 하는 학문인 것이다. 그래서 양자역학이 처음 나오고 코펜하겐 해석이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많은 물리학자와 과학자들이 이해는 고사하고 인정을 하지 못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또한 이런 입자들의 특성과 정체를 직관적으로 인정하고 이해를 할 수 있는 독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나 전자기기 등이 이런 양자역학의 발전에 기대어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양자역학의 토대와 최초로 전자가 파동이 아닌 알갱이로 되어 있다고 '광양자 가설'을 발표하고 노벨상을 수상한 아인슈타인 마저도 코펜하겐 해석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못하였고, 제5차 솔베이 회의에서 닐스 보어와 대립하여 논쟁을 펼쳤다. 그 후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많은 논문과 말을 남겼다. '달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때도 여전히 하늘에 걸려 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및 EPR패러독스(주석 12)등을 통해 양자역학 자체를 강하게 비판하고 부정하였다. 특히, 불확정성 원리와 확률적 세계관인 물질의 파동에 따른 확률적 세계관 및 물질의 이중성에 대한 부정과 비판이 심했다. 그럼에도 양자역학은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주석 13)과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행렬 역학(주석 22)에 의해서 잘 계산되며 그 결과가 정확하게 나오고 있다.


- 주석 -

마이컬슨 간섭계를 이용한 빛의 속도 실험

(주석 1) // 마이컬슨 - 몰리의 실험 : 마이컬슨-몰리의 빛의 속도에 대한 측정 실험은, 에테르라는 빛을 파장으로 전파하는 물질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진행된 실험이다. 방법은 에테르는 이동하지 않는 고정된 물질이고 지구가 공전을 통해서 에테르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만약 빛이 에테르를 이용해 진행한다면 하나의 광원에서 발사된 빛이 거울을 맞고 되돌아오는 시간은 에테르의 흐름에 의해 차이가 생길 것이다. 결과는 빛이 같은 거리를 가서 되돌아오는데 차이는 생기지 않았고 에테르의 존재는 증명되지 못했다. 단, 빛은 일정한 속도를 가지는 것을 증명하게 되었다.//


(주석 2) // 과학계의 변화에 따른 빛의 본질에 대한 변화 : 빛의 본질은 뉴턴의 후광에 의해 18세기 말까지 입자가 정설로 자리 잡았다. 뉴턴은 프리즘을 통해서 빛은 여러 색깔들이 진동을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빛의 굴절 및 회절 현상도 빛 알갱이들이 모여서 진동을 한다고 설명을 했다. 이후 많은 실험적 증거들이 입자보다는 파동임을 보였고 전자기학의 발달과 여러 발견들로 빛은 파동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까지는 빛은 전자와 같이 파동이 정설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과 양자역학의 발견으로 빛은 알갱이로써 양을 가지는 양자로 이야기되었다. 현재는 빛은 입자, 파동의 이중성을 가지는 물질이다. //



(주석 3) // 맥스웰 방정식 : 마이클 패러데이를 기점으로 전기학과 자기학은 서로 통합이 된다. 자기의 움직임이 전기를 발생시키는 원리를 알아내게 되며, 이를 이론으로 집대성하여 전자기학의 기초와 빛의 본질에 대한 모티브를 제공한 사랍이 맥스웰이다. 맥스웰은 전자기를 통합하는 이론을 정리함으로써 인류는 보다 쉽게 전기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발전의 기반을 만들고 양자역학의 도입부를 열어준 과학자이며 고전역학이 가진 한계를 벗어나 현대 과학의 발전을 만들어낸 과학자이다. 맥스웰 방정식은 전기장과 자기장을 통합하여 빛이 전자기적 현상임을 밝혔으며, 더 나아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상대성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 맥스웰 방정식의 단출한 벡터 방정식 형태는 맥스웰이 처음 사용한 것이 아니라, 1884년 올리버 헤비사이드가 재정리한 것이다. 이런 식의 형태는 물리적 대칭성을 더욱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네이버 지식백과] 맥스웰 방정식 [Maxwell's Equations] (슈뢰딩거의 고양이, 2009. 1. 20., 에른스트 페터 피셔, 박규호)  //


(주석 4) // 1905년 기적의 해 : 1905년을 뉴턴 시대 이후 두 번째 기적의 해로 부른다. 아이작 뉴턴은 1665년 ~ 1666년 동안 이룩한 많은 일들이 인류에게는 과학의 시대를 열어준 첫 번째 걸음이며 큰 성과를 이룩한 해로서 기적의 해로 불렀다. 이후 과학은 뉴턴의 시대에 묶여 있다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 의해 고전물리에서 현대물리로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현대물리의 두 기둥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아인슈타인의 의해 만들어지고 모티브가 제공되었다. 그 모든 것이 1905년 발표된 4개의 논문에서 발생되었기 때문에 서구 유럽에서는 1905년을 두 번째 기적의 해로 불리고 있다. //


(주석 5) // 브라운 운동 : 아인슈타인의 브라운 운동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브라운 운동의 해석을 단순하게 기체나 유체에 있는 입자들의 운동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논문을 통해 미세한 원자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당시에는 원자의 실재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그러나 브라운 운동을 통해 원자의 실재와 그 운동을 확률적 요동을 통해 밝혀내고 실험적 증거를 제시하였다. //


(주석 6) // 광전효과 : 19세기 말 20세기 초까지 빛은 파동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이는 토마스 영의 이중 슬릿 실험에서 나타나는 간섭현상이 확인되었으며, 그 외에도 여러 실험에서 파장이 가지는 고유의 성질을 가지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금속판에 빛을 쪼으면 광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실험하게 되었는데, 진동수가 길어 일정 에너지보다 작은 광자들은 많은 양을 쏘아도 전자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즉, 빛을 아무리 밝게 비추어도 특정 파장 이상의 파장을 가진 빛은 전자를 방출하거나 전류를 흐르게 만들지 못했다. 따라서 고전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가한다고 광전 효과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각 빛 입자인 광자가 특정한 에너지 이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튀어나오는 빛 알갱이는 빛의 파장에 따라 크기가 다르며 빛을 강하게 쪼아도 알갱이의 숫자가 많아 질뿐 광자 자체에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로 광양자 가설 즉, 빛 입자설을 밝혀냈다.//


(주석 7) // 콤프턴 효과 : 당시 과학계는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을 믿지는 않았다. 광전효과는 다른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빛의 입자설을 뚜렷하게 증명할 수 없었다. 1923년 시카고대학의 아서 콤프턴 교수가 X선을 산란시켰을 때 빛의 파장이 길어지는 ‘콤프턴 효과’를 발견한 것. 그러자 물리학자들은 더 이상 빛의 입자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란은 간섭현상이 나타날 수 없는 상태로서 입자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


(주석 8) // 등가 원리 : 등가 원리는 아인슈타인이 생애중 가장 행복한 생각이라고 이야기했던 사고 실험에서 나온 것으로 일반 상대론의 기틀을 마련한 원리 아다. 특수상대성이론 이후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거시 세계 전체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즉, 등속 운동 이외에 가속 운동을 하는 천체나 물체에 대해서도 상대성이론을 연구하던 중, 중력과 가속도는 같은 개념임을 깨닫게 된다. 그 원인은 단순하다. 원래 고전물리에 의해 중력이란 힘은 일반적인 힘과 운동과는 다르게 묘사되고 있었다. 만약 당신이 사방이 꽉 막힌 상자에 있는데 하나는 지구 위에 놓여 있고, 하나는 우주에서 위쪽 방향으로 초당 약 9.8m/s로 위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상자에 잠시 번갈아 탔다고 하자. 물론 이때도 당신이 탄상자가 무언 지는 당신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두 상자에서 아래 방향으로 9.8m/s의 등가속도를 느낄 것이다. 첫 번째는 지구의 중력가속도이고, 두 번째는 상장의 움직임에 의한 관성력이다. 그러나 느끼는 사람은 똑같은 상태로 느끼기 때문에 결국 중력가속도와 힘의 가속도 a는 서로 같은 힘이 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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