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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 p Jul 01. 2024

병을 얻었다

쓰고 싶은 글은 생동감있는 학교 현장의 이야기인데 그러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학교폭력책임교사 4개월만에 병을 얻었기 때문이다. 병명은 정확히 모른다. 아직 병원진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6월 중순에 정신의학과에 가려고 전화하니 가장 빠른 예약날짜가 7월 중순이어서 아직도 기다리는 중이다. 


증상은 이렇다. 

일단 심각한 두통. 병원에서 편두통약을 처방받아 왔지만 효과는 없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받을 때에만 머리가 아프더니 지금은 주말에 집에 누워있을 때에도 머리가 아프다. 

근육통. 세게 두들겨맞은 것처럼 온몸이 아프다. 종일 쉬어도 차도가 없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어지러움. 순간순간 어질어질하고 머리가 멍해진다. 

심장 두근거림. 처음에는 학부모에게 전화가 올 때 그렇더니 지금은 학생이 찾아올 때도 그렇고 집에 있을 때도 학교 생각이 나면 수시로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런 증상들로 인해 일단 현저히 업무능률이 낮아졌다. 10분이면 끝낼 수 있는 일을 한시간씩 할 정도로 업무속도가 느려졌다. 오랫동안 모니터를 들여다보거나 생각을 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수업에 들어갈 때도 기운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보니 일단 무표정한 얼굴로 수업을 시작한다. 그나마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로부터 기운을 얻는다. 주로 재미있는 활동 위주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수업 시간은 활력이 넘치고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즐거움을 얻는다. 다만 체력과 에너지가 소모되는 수업이어서 수업이 많은 날은 몸이 지친다. 그래도 정신적으로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서 차라리 수업시간이 낫다. 

교무실에 돌아오면 숨이 막힌다. 해야 할 일이 끊이지 않고 남아있고 언제 어떤 사건이 터질지 모르고 언제 누구로부터 전화가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마음의 근육이 약해져서 작은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3,4월에는 의욕적으로 해결했던 문제들이 모두 버겁게 느껴진다. 


나를 이렇게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 

일단, 너무 많은 학폭 사안 때문이다. 4개월 동안 30여 개의 사건이 있었다. 하나의 사건이 들어오면 대면으로든 전화로든 소통해야 하는 사람들이 피해학생과 학부모, 가해학생과 학부모, 담임교사, 교육청 조사관, 최소한 여섯 명이다. 최대한으로는 스무명 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사건도 있었다. 하나의 사건에 평균 8명 정도라고 해도 240여 명의 사람들과 이야기했다. 한 사람을 한 번만 만나는 것도 아니다. 그 중 기억나는 것만 해도 10여 명 정도의 학부모는 나에게 불만을 얘기하고 찾아와서 항의하기도 했다. 밤중에 전화가 오기도 했다. 

두번째는 동료교사의 무관심 때문이다. 함께 업무를 나눠맡아야 하는 동료교사가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지난주에는 참다못해 폭발해서 '이대로는 못하겠다'고 쏟아냈고 결국 업무 일부를 넘겼다. 하지만 그 뒤로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 것을 보니 이미 임계점을 넘어버린 것 같다. 당분간은 이 증상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세번째는 제도 자체이다. 학폭 사안이 법적 싸움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절차 자체가 지나치게 세분화되어서 업무량을 늘리는 측면이 있다.

네번째는 갈등해결에 미숙한 학교 자체이다.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학교도 갈등해결에 미숙하다. 학생들은 관계맺는 것부터 미숙하기도 하고 갈등이 일어날 경우 해결하지 못하고 학폭 신고까지 오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학부모가 갈등을 더 키우기도 한다. 학교는 더이상 학교 공동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파편화되어 있다. 

다섯번째는 학교를 이렇게 만든 사회이다. 학교만 공동체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을에도 사회에도 국가에도 공동체성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관계맺기에도 갈등해결에도 미숙하다. 어쩌면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남은 한 학기를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순간순간 숨이 막혀온다. 이런 어려움을 전국의 많은 교사들이 겪고 있겠지. 비단 학폭 담당교사만 겪는 어려움이 아닐 것이다. 작년에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교사들의 죽음들 또한 이런 풍경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로부터 우리는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있나. 나아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모아졌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정말로 나아지는 방향으로는 아직 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지금도 머리가 아프다. 겁이 난다. 남은 시간들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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