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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 p Jun 18. 2024

내가 학생들에게 초콜렛을 주는 이유

하루에 서너 명은 꼭 나를 찾아온다. 초콜렛이나 사탕을 먹기 위해서다. 계획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매 수업 시간은 아니지만 한 달에 한두 번은 모둠별 게임 같은 것을 하고 이긴 학생들에게 사탕이나 초콜렛 같은 것을 준다. 활동의 결과로 보상을 주는 것이 교육적이지 않다고도 하고 실제로 학생들도 재미있는 활동을 할 때는 보상을 바라지 않고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며 수업에 참여한다. 하지만 초콜렛, 사탕을 보며 눈을 반짝이는 학생들의 얼굴을 볼 때나, 혹시 이 활동이 별로 재미가 없으면 어쩌지 하는 소심한 걱정이 찾아오면 보상을 준비하게 된다. 

보상으로 주는 간식은 가능한 한 맛있는 것으로 준비한다. 요즘 아이들은 먹을 것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비싸거나 흔하게 살 수 없는 간식들을 먹을 기회가 없는 학생들이 있기도 하고 이왕이면 좋은 것을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내 주머니 사정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완급 조절을 한다. 

어쨌든 그러저러한 사정으로 내 교무실 책상이나 냉장고에는 항상 간식이 구비되어 있다. 작년에 근무했던 학년부 교무실은 학생들의 출입이 잦은 곳이었다. 각종 용무로 교무실을 방문한 학생들이 내 자리에 있는 간식을 보고 '선생님 하나만 주세요'라고 하면 나는 '그래 먹어'라고 하고 줬다. 

보통 선생님들은 아무 이유 없이 간식을 주시지 않는다. 뭔가 칭찬받을 일을 했을 때 간식을 주시거나 하다못해 심부름이라도 하고 와야 간식을 주시곤 했다. 그런데 나는 조건을 달아서 간식을 주는 것이 뭔가 치사하게 느껴졌다. 내게 나눠줄 수 있는 간식이 있고 먹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학생이든 누구이든 간에 줄 수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그래봐야 사탕 하나, 초콜렛 하나일 뿐인데 그걸 먹겠다고 일부러 교무실을 찾아오는 일도 꽤나 수고로운 일이다 싶어 그 수고에 응답을 해주고 싶다. 

내가 아무 조건 없이 간식을 주고 심지어 그 간식이 맛있는 간식 (그래봐야 미니초코바나 비스켓 정도이지만 마이쮸나 싸구려사탕이 아닌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무척 기뻐한다.)이라는 소문이 금방 퍼져서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졌다. 

간식이 다 떨어져서 없거나 수업에 써야 해서 모자란 경우가 아니라면 오는 손님을 내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점점 간식 손님이 많아졌다. 급기야는 같은 교무실의 선생님께서 '선생님 이제 간식 그만 주세요' 라고 하시는 바람에 몇 달간은 간식공급이 끊기기도 했었다. 학생들이 수시로 교무실을 들락거리며 선생님의 일을 방해하고 간식의 포장지를 복도에 함부로 버리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에 나도 흔쾌히 간식금지령을 받아들였다. "얘들아, 어떤 아이들이 쓰레기를 너무 버려서 더는 안 되겠다 당분간 금지다!"라고 하고 아이들을 내보냈다. 그 선생님께서는 내가 간식에 돈을 많이 쓰는 게 안쓰러워 보였던지 학년부 예산 일부를 사용해서 간식을 사서 보태주시기도 했기 때문에 원망은 전혀 없었다. 

해가 바뀌고 교무실도 바뀌었다. 새로 온 교무실은 학생부 교무실이어서 들락이는 학생이 별로 없지만 작년에 가르쳤던 학생들이 생활하는 교실 바로 옆이다 보니 작년에 이어 나를 찾는 단골손님들이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달라진 점은 작년에는 남학생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여학생들이 주로 오고 남학생들은 발길이 뜸하다는 것이다. 남학생들도 가끔 오기는 한다. 아마도 학생부 교무실에 오면 뭔가 혼날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차마 들어오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양심적으로 학생부 오면서 교복은 입고 와라'라고 했기 때문에 교복을 챙겨입기 귀찮아서 안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간식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일명 '노는 아이들'이다. 모범생 손님은 거의 없다. 한두 명 오는 아이들도 어쩌다 한 번 올뿐이다. 아마도 교무실에 초콜렛을 받으러 가는 일보다 바쁘고 중요한 일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분석을 하다 보면 더욱 '교무실에 찾아오는 수고로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정도의 수고로움을 들였다면 간식을 먹을 자격이 있다!' 

과한 해석일 수도 있지만 간식을 달라고 하는 아이들은 관심과 사랑을 달라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한 명쯤은 언제든지 가서 먹을 걸 달라고 해도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선생님 배고파요"

(웃으며) "그래"

"두 개 먹어도 돼요?"

"그래 많이 먹어라"

"아싸~"


그러고 보니 고맙다는 말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런 말은 듣는다.

"선생님 초콜렛 주세요"

"그래~"

"선생님 시험기간이라 그런가 힘들어 보여요"

"나? 하하하 나 좀 힘들어~~"


어제 이런 대화를 나눴다. 

그 학생이 복잡한 학폭 사안의 가해학생이었고 나의 힘듦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는 아이였지만 그런 건 상상하지 못하고 내가 시험문제를 내느라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재미있었다. 


나의 방식이 꼭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오는 손님을 내치지는 못하겠다. 거절을 잘 못하는 내 성격이 일조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학생들에게 언제든 찾아가면 웃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리고 마음이 힘들거나 외로울 때 편하게 찾아와 줬으면 좋겠다. 더 어려운 일은 해주지 못해도 사탕 하나 초콜렛 하나 주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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