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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 p Jun 24. 2024

꼽주는 아이들

학교폭력으로 접수되는 사안들 중 '꼽주는' 행위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들이 많다. 학폭 사안으로 올라오는 경우는 꼽주는 행위가 심각한 경우이고 보다 낮은 수위의 꼽주는 행위는 흔하게 일어난다.

'꼽주는' 행위는 공공연하게 누군가를 비아냥대고 조롱하는 행위이다. 보통은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아이들이 '꼽주는' 행동을 하고 이것은 심각한 폭력이 된다. 다른 친구들 앞에서 조롱을 당해도 대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꼽주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당하게 되면 학교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 행동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게 되면 복잡한 상황이 펼쳐진다. 소위 '꼽주는' 행동은 간접적인 표현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화장실에서 마주친 A와 B.

 A는 B를 쳐다보며 "와 XX 못생겼네" 라고 말하고 A의 친구들은 깔깔깔 웃는다.

B와 주변 아이들은 그 말이 B를 향한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알지만 A의 무리가 두렵거나 괜히 싸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대꾸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여러번 반복되면 견디지 못한 B가 학교폭력으로 신고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A를 조사하면 "걔한테 한 말이 아닌데요 걔가 오해한 거 같은데요" 라고 하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기도 한다. A의 친구들 또한 "그런 말을 들은 적 없는데요"라거나 "잘 모르겠는데요", 혹은 "걔한테 한 말이 아니고 저희끼리 한 말인데요"라고 하며 진실을 왜곡한다.

이런 상황에서 목격자가 없는 상황이라면 B가 너무 불리해진다. 목격자가 있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목격자들이 증언에 나서주지 않으면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어렵다.

겨우 증거들을 모아 심의위원회에 올리더라도 학생들 간의 미묘한 관계 속의 폭력성을 감지하지 못하는 심의위원들은 수위가 낮은 언어폭력으로 인지하고 작은 처벌을 내린다.

어떤 경우의 꼽주는 행위에는 욕설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피해자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는 경우도 있다.


왜 아이들은 꼽주는 행동을 할까. 요즘 그런 고민을 많이 한다. 언제부터 이런 문화가 퍼진 걸까. 공공연하게 누군가를 조롱하는 행동이 만연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학교와 교실을 안전한 공동체로 여길 수가 없다. 교사와 부모가 아무리 도덕적인 말들로 아이들을 가르치려 해도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말로 들릴 수밖에 없다.


인간은 원래 그렇다, 라고 넘겨야 할 일일까. 상대를 깔아뭉개고 짓밟는 문화, 그런 행동을 즐거워하고 서로 깔깔대고 웃는 문화, 이것은 정상적인 문화인가. 아니다.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 병들어 있다고 여겨진다. 그냥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이 가진 수단을 이용해 남을 괴롭히고 그 행동이 잘못임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이런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안에서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가 있을까. 어쩌다가 자신이 타겟이 되면 고통에서 벗어나기가 너무 어렵다. 어른들이 도와주려고 해도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가 않다. 한두명의 일탈하는 아이들이 가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연해 있는 분위기. 그 분위기를 바꾸기가 어렵고, 아마 아이들은 바꿀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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