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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 p Jul 09. 2024

공중도덕

공중도덕이라는 단어가 있다.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다.

다른 학교 학생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일부는 공중도덕을 잘 지키지 않는다. 직전에 근무했던 학교는 고등학교였고 그전 학교는 여자중학교여서 이런 문제를 겪는 것은 거의 10여 년 만이다.


1. 새치기

급식을 빨리 먹고 싶은 아이들 중에서 자신이 힘이 세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새치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봐도 제지할 친구들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거의 매일 새치기를 한다. 그래서 급식실 지도교사의 첫 번째 임무는 새치기를 잡아내는 일이다. 우리 학교는 반별 순서가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몇 반인지 알아야 새치기를 잡아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이 몇 반인지 알기는 어렵기 때문에 점심시간마다 각종 실갱이가 벌어지고 교사를 속이고 새치기를 하는 학생들도 많다. 지난주 목요일에도 언제나처럼 새치기를 잡아내는 싸움을 하다가 참지 못하고 폭발해 버렸다.


지난주는 6반이 1등으로 먹는 날이었는데 4반 S군이 당당하게 첫 번째로 급식실에 들어가길래 '나와'라고 말했다. '뭐 나오는지 보려고요'라고 말하며 전혀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S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오라고!'

나는 사실 S와 친하다. 작년 담임 반 학생이었고 각종 규율을 어기고 사고를 치고 다니지만 의리가 있고 약한 친구들을 도와주는 모습 때문에 내심 아끼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표현도 많이 했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소리 지르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나와라~'라고 웃으며 말했을 거고 S도 몇 번 반항하다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주의 나는 스트레스로 폭발한 상태로 아픈 몸을 이끌고 거기 서 있었기 때문에 작은 자극도 참을 수가 없었다. 평소답지 않게 소리를 지르고 진심으로 화를 내는 나를 보고 S는 말없이 급식실을 나갔다.


그 이후로도 십여 명의 아이들과 '너 몇 반이니?', '쌤 얘 3반 아니에요', '아니에요 맞아요' 등의 옥신각신이 오가는 중에 한 아이가 '쌤 쟤 새치기예요'라고 제보를 했다.

새치기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남학생들이고 여학생들은 밥을 안 먹는 학생들도 많고 밥을 먹으러 뛰어내려오는 일은 잘 없기 때문에 새치기로 인한 문제가 잘 일어나지 않아서 여학생 줄은 거의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니 살짝 교사의 눈을 피해서 다른 반 친구들과 밥을 먹으려고 하는 학생들이 있다. 새치기를 했다는 학생은 여학생 A였다. A는 굳이 따지자면 모범생 쪽에 속하는 학생이다. 작년에 내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나를 알고 있고 반항하거나 선생님 말을 안 듣는 학생은 아니다. 뒤통수에 대고 '학생, 몇 반이야, 나와~'라고 말하는 내 목소리를 A는 애써 무시하고 앞으로 가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A는 못 들은 척하고 그냥 지나가고 싶었을 것이고 그게 나에 대한 심각한 반항은 아니었을 것이다. 평소의 나는 학생들에게 엄격하게 대하는 편이 아니고 새치기한 학생들에게 웃으며 말하고 학생들도 몇 번 앙탈을 부려보다가 줄에서 빠져나오는 식이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샘~ 여기 서면 되죠?', '그래, 그래라. 제발 새치기 좀 하지 마라. 민주시민 되자.'

그날은 그럴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A에게 화를 낼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몇 번을 불러도 뒤돌아보지도 않는 A를 보면서 마음이 무너졌다. 갑자기 힘이 쭉 빠져서 급식실 벽에 기대 섰다.

말도 안 되는 소리로 교사들을 어이없게 하지만 마음이 다정한 남학생 J가 다가와서 '선생님 그냥 포기하시는 게 어때요? 혈압 올라요.'라고 말했다.

'그래, 혈압 오른다.'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그냥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교무실에 올라와서 좀 울다가 K부장님을 찾아가서 힘든 마음을 털어놓고  울었다.


그리고 오후에 교감을 만나 병가를 내기로 했다.


병가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고, '우리 학교 학생들은 왜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가'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1. 새치기"로 시작한 건, 새치기 외에도 많은 사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학교 학생들을 사랑하지만, 아니 사랑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생각한다. 단순히 사춘기여서라고 말하기에는 양상이 좋지 않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2번 사례는 다음 글에서 이어 쓰겠다. 사랑스런 S와 A와 J, 그리고 그 외 얼굴이 떠오르는 많은 학생들이 좋은 사람으로 잘 자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의 기도가 아이들의 마음에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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