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 p Aug 05. 2024

윤리덕후 제자


병가에다 방학이어서 학생들과의 생생한 만남이 없다. 지난 추억들을 적어볼까 싶다가도 과거는 미화되게 마련이고 미화된 경험을 적고 싶지는 않아서, 여기에는 살아있는 진짜 현장의 이야기를 적고 싶어서, 떠오르는 얼굴들을 밀어두었다. 

오늘 있었던 학생과의 만남의 기록을 적어두려고 한다.

2년 전 수업에서 만났던 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다. 

나와 함께 '윤리와 사상'이라는 수업을 했는데 자칭 윤리덕후였다. 

사춘기 남학생다운 허세를 살짝 깔고 두꺼운 철학고전을 사서 읽으며 윤리교사가 되겠다고 항상 말하던 2학년 남학생이었는데 내가 그 학교를 떠나고 나서 결국 윤리교육과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덕후임을 공언한 것에 비하면 공부의 깊이가 그다지 깊은 편은 아니어서 다른 선생님들께는 애정어린 핀잔도 자주 듣던 학생이었고 사실 내신점수도 그리 높지 않아서 걱정했었는데 원하던 과에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들어서 멀리서 기뻐했었다. 

2학년 수업을 마친 이후에는 이 학생을 만나거나 연락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졸업 후 처음 연락이 온 것이다. 

자신이 윤리교육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임용시험 공부를 시작해서 교과서를 보다 보니 선생님이 생각나서 연락했다는 문자였다.

'임용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기본서 위주로 기초를 쌓고 있다'는 표현이 J다웠다.

J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순수하고 귀여웠다. 어떤 선배누나를 짝사랑해서 주변을 맴돌고 사랑고민을 에둘러서 털어놓기도 했는데 빙빙 둘러 말하지만 모두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는 순수함이 너무 재미있었다. 아직도 그 선배를 좋아하고 있을까? 

J에게 '너는 진지하게 공부를 좋아하고 성실하니까 꼭 잘 될거야'라고 덕담을 자주 했었는데 스무살의 J에게 다시 한번 덕담을 보낸다. J야 너는 잘 될 거야! 


이전 05화 교사로 사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