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학폭사건에 대한 조언을 구해왔다.
자신의 자녀가 학폭사안의 유일한 목격자인데 피해자로부터 진술서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것이다. 피해와 가해 양측 부모 모두와 아는 사이여서 난처한 상황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질문이었다.
나에게 직접 물어온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을 통해 물은 것이어서 더 자세한 상황을 알 수는 없었다.
학폭업무담당자의 입장이라면 당연히 진술을 해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그 사람이 업무담당자의 입장을 물은 것은 아닐 거여서, 해주는 게 좋지만 본인의 선택이라는 원론적인 대답만 전달했다.
유일한 목격자가 진술을 망설이는 상황이라면 피해 측에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불안해하고 있을 것이다. 피해와 가해의 주장이 다른 경우에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면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렵다.
사건의 양상은 여러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1. 목격진술로 인해 피해가 입증되고 가해자는 적절한 처벌을 받고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피해자의 피해는 회복되고 둘의 관계도 회복된다.
2. 목격진술로 인해 피해가 입증되고 가해자는 적절한 처벌을 받지만 반성과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아 두 학생의 관계가 악화된다. 혹은 두 번째 가해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3. 목격진술이 없어 피해가 입증되지 못하고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가해자는 반성과 사과가 없을 뿐 아니라 지속적인 가해가 일어난다.
4. 목격진술이 없어 피해가 입증되지 못하고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가해자가 죄책감을 느껴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두 학생의 관계가 회복된다.
모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4번 상황의 경우는 지나친 상상 아닌가 싶겠지만 요즘 접수되는 학폭 사안에 연루된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모두 악마 같은 아이들은 아니다. 친구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 상황이 학폭으로 전개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4번 상황도 충분히 가능하다. 단, 이 경우에 부모가 개입하여 2차 갈등으로 확대되는 경우에는 아이들끼리의 화해는 어려워진다.
위 상황 중에서 목격자의 부모가 두려워하는 상황은 아마도 2번 상황일 것이다. 2번 상황의 경우 보복의 불똥이 목격자에게 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학생 자신이 그런 상황을 두려워할 수도 있고 부모가 두려워할 수도 있다.
혹은 이 사안이 학교 안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복잡한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게 될 경우에 그 싸움에 연루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진술을 거부할 수도 있다.
두 상황 모두 목격진술에 반드시 따르는 상황이 아니며 절대다수의 상황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기 때문에 목격자에게 어떤 선택을 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교육적인 선택을 하려면 당연히 진술을 해야 한다.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를 돕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당연히 옳은 일에 대해서 당사자도 고민하고 부모도 고민하고 조언자도 고민하는 사회가 되었나.
안전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자녀가 겪는 학교폭력 사안에서 경제적, 물질적 손해까지 고려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평범한 부모들이 걱정하는 것은 자녀의 안전이다.
옳은 선택을 했을 때 안전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그 믿음이 없다.
그리고 그 믿음이 없는 부모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학교와 사회를 믿으시라'라고 말할 수 있는 확신을 가지기도 어렵다.
이 불신의 결과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아이들의 불신은 더 커지고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옳은 선택을 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