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생각들이 나를 붙잡아 나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무엇인가를 붙잡고 있는 것. .
서울에서 4~5일을 묶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서울을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고 오는 것이었는데 숙소를 잡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한 친구 녀석이 나와 함께 하고 싶다면서 서울에 살고 있음에도 내 옆 옆방에 1인실로 방을 잡았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배웅에서부터, 헤어지기까지 약 이틀 동안 그 친구는 모든 길을 나에게 안내해주었고 맛집과 가야할 곳을 정해주었다. 나도 그 편이 편해서 순순히 그 친구의 말을 따랐다. 문제는 그 때 부터였다. 3일째부터는 오롯이 혼자 움직여야 했는데, 숙소의 위치부터, 버스정류장, 지하철역의 위치까지 나 스스로 찾아야 하다 보니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은 부지기수고 여러 거리를 헤매며 뛰어다녀야 했다.
강남, 홍대, 인천, 경기도, 수원.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친구들을 찾아가다 보니, 대부분의 시간들이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이동하는 시간이거나, 친구와 함께 안부를 전하며 혹은 함께 술을 마시는 시간,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오롯한 나 혼자만의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갈 생각에 설렘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술을 마시는 것은 너무나도 흥분 되는 일이었는데 문제는 그 뒤부터였다. 몽롱한 정신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숙소를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흥분이 가라앉고 혼자가 된 사실을 알았을 때, 쓸쓸함만이 남아 온몸의 솜털이 일어나 내 추위를 더욱 돋게 만들었던 것이다.
4년 전이었다. 진로를 고민함에 있어 너무나도 답답한 마음에, 신수를 보러 점집에 갔던 적이 있었다. 사주 철학관이 아니라, 신내림을 받은 무당할머니였는데, 새카만 눈을 동그랗게 내리뜨며, 나에게 제일 먼저 한다는 소리가 쉰 소리를 내며 ‘야이야, 외롭다!’였다. 아니 이 할머니가, .. 평정심을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슴에서 어떤 면면들이 우르르 내려앉는 기분이란 미칠 노릇이라 어느새 눈동자가 간질간질해졌다. 그땐 졸업도 했고, 동생은 군인이었고, 엄마는 타지에 있었고, 아빠는 거의 매일 보지 못했으며, 사랑하는 사람과도 헤어졌으니, 내가 있고 자란 고향이란 곳은 지독스럽게 나를 외롭게 만들어서 그 해 나는 당장 그곳을 도망이라도 치듯 떠났었다.
그러니까, 종종 이런 생각들이 떠올라 나는 그 숙소에 정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 뿐이면 오죽할 까, 서울을 떠나 다시 내가 있는 이곳에 돌아왔어도 아침 반나절, 오후 내내 나는 혼자여야 했다. 아르바이트도 구해보았고, 혼자 영화도 보러 갔다. 원래의 시간들을 길들이기 위한 조치였다.
분명 이 영화관에서 몇 번이나 혼자서 영화를 앉아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이 곳에 내려와 영화를 보았던 그 시작이 당신이라서, 당신이 항상 차로 나를 데려다 주거나, 택시를 탔던 기억 때문에 나는 하루 종일 우두커니 서서 어디로 버스를 타서, 어디에 내려야 하나, 영화관은 어디인가를 주구장창 검색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길들여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내가 만든 무인도에 내가 무엇을 붙잡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든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참 사치스럽게 깨닫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