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6 마마무-wow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았다. 아마 수플레가 아니었다면 일주일은 더 엄두도 못 냈을지 모른다. 10년이 넘게 써 오던 일기마저 3주 내내 손도 못 댔으니, 정말 정신없이 맞은 5월이다.
올해의 2분기가 시작하자마자 가장 큰 이벤트는 퇴사와 이직, 그리고 이사였다. 3년 가까이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곧바로 다음 주, 새 회사로 출근했다. 때마침 전세 계약이 끝난 탓에 6년 간 살던 동네를 떠나 아예 다른 동네에 집을 구했다. 하루 24시간을 보내는 집과 회사를 모두 옮겼으니, 그야말로 이동수가 폭발한 셈이다.
이사를 위해 부동산을 다니며 대출을 알아보는 동시에 새 회사의 면접을 보고, 합격 소식을 받자마자 다니던 회사에서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6년 동안 꾸역꾸역 채워 넣은 이 작은 집에서 나온 짐들은 뭐가 그리 많은지, 새 집에 쌓아 놓고 보니 걸어 다니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가구, 가방, 옷 더미를 몇 박스를 버리고 며칠을 겨우 치웠더니 겨우 걸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대형 이벤트가 줄줄이 연달아 터지다 보니 최근 1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혹시 누군가 이사와 퇴사, 입사를 1주 안에 끝내려고 한다면 제발 한 번 더 생각하라고 기어코 뜯어말릴 생각이다. 조상님이 꿈에 나와서 지금 움직여야 대운이 터진다고 귀띔이라도 한 게 아니라면, 아니 만약 그랬더라도 조상님을 설득하는 편이 낫다고 말해줄 예정이다.
어느덧 3번째 이직이었다.
연차에 비해서는 그리 적지는 않은 횟수다.
다만 이번 이직은 이전과는 살짝 달랐다. 다니던 회사의 환경이라던지, 업무에 불만이 있어서 떠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브랜드 마케팅을 오래 담당하다 보니 살짝 정체되는 느낌이 있던 찰나, 좋은 제안이 온 덕에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어 선택한 곳이었다. 매번 아예 직무를 바꾸던 예전과 달리 제대로 된 첫 경력직 이직이었다. 그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에게 나를 바로 증명해내야 하고, 곧바로 꽤 날카로운 평가를 받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 긴장감이 설레기도 했다.
새 일터에 대한 기대와는 별개로 오래 머문 곳과 사람들을 떠나겠다고 입을 떼는 건 어려웠다. 특히나 팀원이 5명일 때부터 함께했던 팀장님들에게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퇴사를 말하던 날, 다들 못내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마지막 출근 날, 나와 어울릴 것 같아 골랐다며 건네 준 노란 꽃다발과 선물, 편지, 3년 여를 보낸 사무실에서 나온 짐까지 다 담고 나니 양손이 가득 차서 택시를 타야 했다.
익숙한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짧지만은 않은 3년 여의 시간을 곱씹어보았다. 몇 번의 회사를 거쳐 스물일곱에 만난 새로운 일, 이십 대의 마지막을 보낸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던 스타트업. 그곳에서 여기가 내 자리가 맞는지 스스로 고민하며 흔들리던 꽤 긴 시간들, 그 불안함을 버텨보기 위해 시작한 사이드 잡, 그리고 그렇게 버티다 보니 어느새 업무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몇 단계를 훌쩍 넘어와 있던 걸 실감했던 순간들.
사람이 든 자리는 티가 안 나도 난 자리는 티가 난다던데, 내가 떠난 자리도 조금이나마 티가 날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좀 더 집중하지 못했던 시간, 손을 내밀지 못했던 관계들도 떠날 때가 되니 못내 아쉬웠다.
한참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선물 가방 안에 들어있는 팀장님의 편지가 생각났다. 떠나는 오랜 동료에게 남기는 마지막 응원의 문장들을 몇 번이고 읽으며, 나도 누군가에게는 난 자리가 티가 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더 욕심을 내어보고 싶다. 솔직하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타미는 늘 든든하고 같이 일하면 웃음이 나는 사람이었어요.
다들 저와의 미팅에선 힘든 얘기를 많이 꺼내 놓는데, 늘 ‘할 얘기요? 따로 없어요~’ 하고 웃으면서 넘기는 타미와의 미팅이 저한테는 위로가 되기도 하더라구요.
타미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릴때면 일하다가도 기분이 좋아졌어요.
사실 어느 날은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아니, 동료를 이렇게나 애정 할 수 있다고?'라고 생각한 적 있었다는 고백도, 이 편지에서밖에 못 말할 것 같으니 그냥 말해 버릴게요.
https://youtu.be/SdD-rXFC5e4
든든하고 고마운 응원을 안고 새 직장으로 출근하던 첫날. 아직은 낯선 새 집을 나서 새 직장으로 가는 길. 출발지부터 도착지까지 모든 게 새로운 아침의 출근 송으로는 이 노래를 골랐어요.
왠지 자신감이 가득 필요한 날, 새로운 시작에 겁먹지 않고 싶은 날. 이 노래를 들으면서 걸으면 괜히 좀 더 당당해지는 발걸음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