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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미 Jun 15. 2022

one wave, one surfer

ep.111 bohuhmian - Hey-ya


one wave, one surfer

“한 파도에는 한 명의 서퍼만 탈 수 있다,

이게 서핑의 가장 기본적인 룰이자 매너예요.


그럼 바다에 있는 그 많은 서퍼들 중 누가 파도의 주인이 될까요?

가장 파도를 잘 타는 사람?

가장 서핑 경력이 오래된 사람?


파도의 주인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파도의 가장 높은 꼭대기, 피크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바로 그 파도의 주인이 됩니다.

좋은 파도를 잡는 것도 운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서핑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스포츠라고 생각해요.”




Push!

Take off!


파도가 보드의 꼬리를 힘차게 밀어낸다. 얼른 중심을 잡고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엉덩이를 들다가 이내 앞으로 고꾸라지고, 겁을 먹어 손을 떼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보면 파도를 올라타기도 전에 파도는 지나가 버린다.

뭍에서 연습할 땐 분명 여유롭게 잘 잡던 자세였는데 막상 물 위에선 빠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 자꾸만 마음이 성급해진다. 몇 번 물에 빠져 온 몸이 축 젖어 버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이번엔 발을 조금 더 중앙으로 당겨 와야지, 방금 전보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일어나야지,

다음 파도가 밀려 들어오는 짧은 2-3초간 머릿속으로는 앞서 우왕좌왕 보내버린 몇 개의 파도들을 되새겨본다.


Push!

뒤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맞춰 팔을 단단하게 뻗어 보드를 밀어낸다.


Take off!

두 발을 가슴으로 당겨와 보드 중앙에 놓고 일어선다. 어, 이번엔 느낌이 다르다. 어느새 두 발은 안정적으로 보드를 밟고 섰다. 발아래 미끄러지는 파도 위에 보드가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짜릿하다!





올해만 벌써 두 번째 양양. 목적은 오로지 딱 하나, 서핑이었다.

2년 전 처음 접해본 서핑을 올해는 제대로 배워볼 생각이다. 운 좋게도 괜찮은 서핑 샵을 발견해서 이번엔 동생을 데리고 양양을 찾았다. 파도와 하루 종일 씨름한 탓에 노곤해진 몸을 끌고 해가 지고서야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주말의 인구해변은 그야말로 핫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리, 이국적인 느낌이 들만큼 반짝반짝 거리는 불빛이 가득한 가게들. 그 사이를 걸으니 마치 다른 시간,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북적이는 거리를 지나 한 블록 뒤로 들어가니 큰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조용한 거리가 나타났다. 캠핑을 하는 차들이 모여있는 조용한 공터를 지나니 멀리 동떨어진 곳에 작은 가게가 보였다.


빈티지 샵과 맥주, 커피를 함께 파는 가게의 야외 테라스에는 사람들 몇 명이 모여 앉아 있었다. 테라스로 올라서자 야외 테이블에 손님처럼 앉아있던 청자켓을 입은 남자가 ‘안녕하세요!’하고 기분 좋게 인사를 했다. 뭔갈 더 먹기에는 배가 불러서 커피를 시켜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고 밤하늘엔 저 멀리 해변에서 쏘아 올리는 크고 작은 폭죽들이 가끔 펑펑 터졌다.


가게를 돌아보니 곧 이곳에 이방인은 나와 동생, 둘 뿐이라는 걸 알았다. 커피를 만드는 직원부터 기타를 치는 남자, 노래를 트는 디제이까지, 20-40대 정도로 보이는 이 젊은 사람들은 다들 서로 꽤 잘 아는 사이인 듯했다. 아마 다들 근처 가게의 주인이거나 지인들이 가게에 모인 것 같았다.


여유로운 토요일 양양의 여름밤과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람들의 모습. 저런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여행자의 시선에서 보는 단편적인 모습만이 그들의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이들이 이곳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한 면은 어떤 모습일까, 괜스레 잠시 상상해보기도 했다.


나무로 만든 작은 무대 위에선 한 남자가 기타를 튜닝하고 있었다. 공연을 하려나 하고 잠시 기다려보았지만 좀처럼 시작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이만 숙소로 돌아가려고 일어서자 청자켓을 입은 남자가 ‘이따 공연 보러 오세요’하고 다시 인사를 했다.


“아, 공연하시는 줄 알고 기다렸는데 안 하시는 것 같아서 가려고 했어요.”

“아, 정말요? 사실 공연이랄 건 없고 그냥 지인들끼리 놀려고 한 건데.

 그럼 30분 일찍 그냥 시작하죠 뭐.”


기타를 튜닝하던 흰 티셔츠의 남자가 서둘러 기타를 들고 무대로 올라갔다. 자신을 서핑을 하면서 노래를 하는 서퍼 뮤지션이라고 소개한 그는 무대 위에 맥주를 들고 철퍼덕 앉아 '하사이시 조'의 '여름'을 기타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청량한 여름밤, 바닷가의 작은 가게,

가게 앞 이 작은 무대에 모여 친구에게 즐겁게 환호를 보내주고 춤을 추는 친구들,

거기에 너무나 어울리는 기타 연주까지.

너무 자유롭고 낭만적인 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코가 찡했다.


여행자의 시선에선 너무나 완벽한 모습. 만약 그 이면의 다른 모습은 매우 현실적일지라도 가끔의 여름밤이 이렇게나 낭만적일 수 있다면,

나는 이 삶을 선택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여름밤은 아주 오래 기억에 남겠다.

물론 그건 두말하지 않아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l9NPZcXr4Y



우리는 바다에 길을 잃은 아이

이제는 파도가 길을 알려주네


hey-ya, hey-ya, hey-ya


파도가 내게 말해

한 곳만 너무 바라보면

주변을 볼 수 없다고


파도가 내게 말해

바로 앞에 있는 것도 모르고

평생을 찾아 헤맨다고






오늘의 수플레에서 소개할 곡은 서퍼 뮤지션 ‘bohuhmian(보허미안)’의 ‘hey-ya’입니다.

에피소드에서도 소개했듯이 서핑을 하러 간 양양에서 우연히 듣고 푹 빠져버린 노래예요. 항상 수플레에서는 원래 알고 있고 좋아하는 곡들을 주로 소개했었는데,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바로 지난주 우연히 알게 되어 요즘 제 최애 곡이 되고 있는 노래를 소개하게 되었네요.


아직은 파도를 잡기보단 올라타기에 급급한 서핑 초보지만 요즘 서핑에 정말 푹 빠져있어요. 그래서인지 이 노래를 들으면 출렁이는 바다와 여름밤, 그리고 이 노래를 듣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서 행복해져요. 고민이나 조급함은 내려놓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기타를 치고 파도를 타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삶이 그려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없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one wave, one surfer

남의 파도에 욕심내지 않고 내가 주인이 될 파도를 여유롭게 기다리는 삶.

언젠가 다가올 파도를 멋지게 올라타기 위해 지나간 파도를 곱씹으며 준비하는 삶.


왠지 이번 여름에는 파도 위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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