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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Nov 12. 2023

디어 마이 송골매, 이경란

욕망하지 않으면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의미에 몰두하면 욕망을 잃어버린다

대학 다닐 때 몸담았던 동아리는 대강당 2층에서 오른쪽으로 복도를 돌아 막다른 지점에 있었다. 동아리는 대부분 접근성이 좋은 학생회관에 자리했는데, 대강당에 공간을 잡은 동아리는 이유가 있었다. 시끄럽거나 조용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시끄러운 동아리는 주위에서 견디지 못했고, 조용한 동아리는 학생회관의 생활 소음을 견디지 못했다. 대강당 2층에는 농악패와 관현악반이 양쪽에 자리 잡았다. 동서양의 협주를 일상적으로 듣고 다녔다. 때로는 울림이 있었고 때로는 정신없었다. 1층으로 내려오면 묵향이 짙었다. 동아리에 들고 날 때마다 마음의 울림과 고요함을 같이 경험했다. 폭넓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경험한 시기였다. 아니 세상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때였다.


이경란의 장편소설 <디어 마이 송골매>은 어린 시절 풍부했던 감정을 지우고 이제는 열망이라는 단어 하나 감당하지 못하는 여고 친구들이 송골매 재결합 콘서트로 다시 뭉쳐 생동하는 과정의 기록이다.  삶은 언제나 빈 오선지이며, 4분음표와 16분음표가 번갈아 파동친다. 메트로놈이 있다고 박자를 다 맞출 수 없고, 메트로놈이 없다고 박자를 놓치지 않는다. 그 시절 우리는 재미 속에서 의미를 찾았고, 의미가 있기에 재미는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우리는 다시 열광할 수 있다.


원하는 곳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방향과 동력이 필요하다. 둘 중 하나라도 틀어진다면 이름 모를 땅에 떨어져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외줄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길이라면 재미라는 존재의 욕망을 동력 삼고, 의미라는 존재의 이해를 방향 삼아 균형을 잡아야 한다. 몇 번 힘든 모순의 상황을 만나면 젊은 날의 사랑과 증오 같은 풍부했던 감정을 몽땅 지우고 기계처럼 살게 된다. 삶의 왜곡은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게 하고 스스로를 아프게 한다. 관계망은 부서지고 나는 홀로 남는다. 풀어야 할 문제들만 남은 내 인생, 풀릴까?


골방에 앉아 혼자서 풀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꿰뚫고 있다는 오만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어떤 문제를 그런 방식으로 겪고 있는 자신을 아는 것뿐이다. 사람은 사람 없이는 살 수 없고, 관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상대와의 관계를 무시한 채 나를 찾을 수 없다. 내가 지은 관계망에 나를 비추어야 온전히 나를 이해할 수 있.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은 자신의 진심을 하늘에 올릴 뿐, 풀이는 하늘의 몫이다. 천명을 기다리는 동안 멍하니 있을 터인가. 욕망하지 않으면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의미에 몰두하면 욕망을 잃어버린다. 그러니 만나서 놀아보자.


얼굴을 내리고

마음을 숨기고

어깨를 흔들며

고개를 저어라

너는 총각탈

나는 각시탈

소맷자락 휘날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자

한삼자락 휘감으며 비틀비틀 춤을 추자

탈춤을 추자

탈춤을 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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